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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웅들

중앙선데이 2010.09.18 23:28 184호 31면 지면보기
10여 년 전 필자가 보스턴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밟을 때 일이다. 필자의 지도교수였던 A교수는 에이즈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하버드대학 석좌교수로 백악관 의학정책 자문위원으로도 일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신문에 칼럼을 자주 썼고 책도 여러 권 냈다.

어느 월요일 오후, 연구동 복도에서 가방을 챙겨 들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는 그와 마주쳤다. 새로 출판되는 책에 관해 ABC의 ‘굿모닝 아메리카’에서 생방송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 저녁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책이 나올 때마다 주요 방송·신문에 소개되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에 그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뉴욕에 있어야 할 A교수가 실험실로 출근하는 것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물었다. A교수는 허탈한 표정으로 “마돈나가 임신한 사실이 갑자기 알려지면서 ABC가 미리 잡혀있던 모든 아침방송 스케줄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마돈나 인터뷰 등 그녀의 임신 관련 특집들을 소화하기 위해서였다. A교수는 아까운 시간에 뉴욕까지 갔다 오는 헛걸음을 한 것이었다. 실험실에서 같이 연구하던 학생과 연구원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절대 마돈나를 넘어설 수 없구나….”

그렇다. 만일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돈을 벌고 인기를 얻는 것을 성공의 잣대로 삼는다면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은 결코 마돈나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며칠 전 기분 좋은 기사 한 편을 읽었다. 한국이 다른 선진국들을 따돌리고 볼리비아와 리튬 연구개발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 “특사 외교의 이면엔 이름 없는 수많은 산업전사의 땀과 눈물이 숨어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외교관들이 최선을 다했다 해도 볼리비아 현지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열심히 일해온 한국인들의 오랜 수고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볼리비아뿐만 아니라 미국 대학에서도 비슷한 현상들을 경험한 적이 있다. 교수들 중에선 유독 한국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심지어 하버드대학의 어느 유대인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인원 중 절반 이상을 한국 학생과 연구원으로 채웠다. 반면 한국인을 싫어하는 교수들도 있다.

이유를 알아 보면 십중팔구 그 교수들이 과거 함께 일했던 한국인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연구실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일한 한국인이 있었다면 그 교수는 계속해 한국 사람들과 일하기를 원한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아주 좋다.

미국 과학계를 이끌어 가는 교수들 중에서도 한국을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보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유학생과 연구원들이 민간 외교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영웅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나라나 기업의 흥망을 한두 사람의 공이나 과로 돌리기를 좋아한다. 물론 훌륭한 리더를 가진다는 것은 더 없는 축복이다. 하지만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맡은 일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는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그러기에 볼리비아에서 땀 흘리는 산업전사들, 어두컴컴한 실험실에서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는 이름 없는 과학자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소시민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주위를 한번 둘러 보자. 의외로 많은 영웅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크든 작든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할 때, 마돈나처럼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할지라도 우리가 속한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의미 있는 성공은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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