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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가 공화당원 된 까닭

중앙선데이 2010.09.18 23:27 184호 31면 지면보기
터미네이터가 왔다 갔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1박2일의 방한을 마치고 15일 출국했다. 고작 30시간 머무르면서 그는 엄청난 일정을 소화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유인촌 문화부 장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등을 잇따라 만나고 이명박 대통령까지 면담했다. 8년차 주지사는 파산 직전의 캘리포니아주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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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보디빌더였고, 할리우드 액션 배우였던 그는 2003년 주지사 소환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에 승리하고 2006년엔 재선에도 성공해 입지를 굳혔다. 한창 인기가 좋을 땐 공화당 대선 후보로도 언급됐다. 할리우드에서 드문 골수 공화당원인 그는 왜 공화당을 지지하게 됐는지 얘기한 적이 있다.

2004년 8월 말, 공화당 전당대회였다. 그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지지 연설자로 나섰다. 슈워제네거는 “주머니에 꿈만 채워 넣고 미국에 온 직후”를 얘기했다. 오스트리아 시골 출신 청년이 미국에 건너간 건 스물한 살 때인 1968년이었다. 미국은 대선이 한창이었다.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과 민주당 후보인 허버트 험프리의 대결이었다.

“TV에서 닉슨과 험프리의 연설을 봤을 때가 기억납니다. 친구가 독일어로 통역을 해줬는데 험프리의 연설은 사회주의자의 얘기처럼 들렸어요. 방금 내가 떠나온 나라와 다름없었죠. 그리고 닉슨이 연설을 했는데 그는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작은 정부, 감세와 강한 군대를 얘기했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닉슨은 공화당 소속이라고 친구가 말해줬습니다. 그 순간부터 전 공화당원이었습니다.”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갖고 기회의 땅에 찾아온 이민자는 닉슨의 연설에 솔깃했을 것이다.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건 영어 몇 마디 못하는 외국인이 통역된 연설을 듣는 것만으로 지지 정당을 정했다는 것이다. 두 정당이 정책 차이로 분명한 ‘색깔’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대척점에서 각을 세우기로는 우리네 정당만 한 것이 없다. 하지만 다투는 당을 보면서 국민들은 ‘초록은 동색’이라고 한다. 정책은 오십 보 백 보면서 이해관계에 따라 으르렁대다가도 찰떡궁합을 보여온 결과다.

여야는 또 호흡을 척척 맞췄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의원직 사퇴와 관련해서다. 임 실장의 사퇴서는 7월 20일 국회에 제출됐다. 10·27 재·보선에 임 실장의 지역구인 경기 성남 분당을이 포함되려면 이달 말까지 사퇴서가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 하지만 16일 본회의에서 안건에 상정되지 않았다. 여야는 다음 달 23일까지 본회의를 열지 않기로 했다. 분당을에선 내년 4월에나 선거가 열리게 됐다. 박 터질 공천경쟁이 골치 아파 미적대는 한나라당과 어차피 약세 지역이니 안 해도 그만이라는 민주당의 짬짜미다.

‘근육만 있고 뇌는 없다’는 인신공격을 받던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중도파로 변신하면서 정치인 나름의 ‘색깔’을 만들었다. 총기규제 강화나 낙태 지지 등 공화당과 다른 정책을 들고 나와 민주당 텃밭의 표심을 산 것이다. 색깔은커녕 한덩어리로 뒤섞여 ‘회색’이 된 여의도가 국민 마음을 사는 건 요원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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