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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즐겁고 먹어서 기쁜 차례상을 위하여

중앙선데이 2010.09.18 22:30 184호 10면 지면보기
논밭을 쓸어버린 엉망진창 날씨에 9월 추석이라니, 이번 추석은 정말 최악이다. 며칠 전 엄마가 전화로 넋두리를 풀었다. 추석에 먹을 김치를 두어 포기 하는데 채소 값만 3만원이란다. 그래도 이런 날씨에 통배추를 살 수 있는 건 기적이라고 위로를 했지만, 사실 나도 시장에서 애호박과 시금치를 사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래도 엄마는 넋두리 말미에 “지난해 겨울에 곶감 몇 개 냉동실에 넣어놓길 잘했지” 하시며 웃으셨다. 어차피 추석이 이렇게 이르면 햇감이 덜 익은 상태다. 조상님께 먹을 수 없는 것을 드리는 것보다는 지난해 것이나마 곶감을 올리는 게 나은 것이다. 이 대목은 할아버지 살아계시던 때에 결정한 사항이었다.

이영미의 제철 밥상 차리기 <27> 추석음식, 먹을 것과 추억할 것

이 코너가 제철 음식을 이야기하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올 추석에는 제대로 된 제철 음식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그저 기후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후손들의 죄를 생각하며 자연을 정복하려 하지 말고 조화롭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편이 낫다.그러니 이 참에 제수용품을 유연하게 조정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차례상의 관습은 지역과 집안마다 다 다르며, 시대에 따라서도 조금씩 변화를 해 왔다. 중·고생 시절 민속박물관에 가서 안동 양반 집안의 차례상 차린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 집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도가 모조리 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과채탕적(瓜菜湯炙)의 일관성도 흔들려 있고, 맨 앞줄의 과일 괴는 방식조차 달랐다. 우리 집안은 배와 밤은 희게 깎고 사과는 깎지 않아 홍동백서(紅東白西)의 원칙으로 진설하는데, 박물관의 것은 깎지 않은 배였다.

하지만 나이 먹어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차례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동해안에서는 문어가 상에 오르는 것이 불변의 원칙이란다. 경상도에서는 부추(그쪽 방언으로는 정구지) 부침을 올린다는데, 어느 집안은 부추를 가지런히 부치는 것을 중시한단다. 가지런한 부추들은 부치는 과정에서 자꾸 갈갈이 흩어져 애를 먹는데, 그래서 며느리들이 명절만 되면 “나는 정구지가 무서워”라고 한단다. 개성 출신 서울내기인 우리 집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제수들이다.

지역의 차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집안에서도 시대에 따라 변화는 나타난다. 의례의 본질상 형식을 유지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일이지만 불변의 관행이란 없는 법이니 제주가 유연성을 발휘할 때에 전통도 바뀌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육적(肉炙), 어적(魚炙), 소적(素炙)의 삼적(三炙)과 세 가지 나물인 삼채(三菜)를 반드시 지키는데, 어적을 간편하게 통북어로 만든다. 그래서 남들처럼 명절 때 값이 뛰어 버리는 큰 조기나 도미 같은 것을 사지 않아도 된다.

또한 제사상에도 편(片·하얀 팥을 켜켜이 넣고 단단하게 눌러 찐 떡)을 쓰지 않는다. 증조부였다든가 고조부였다든가, 하여튼 20세기의 변화였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어느 해인가 편을 찌는데 계속 설거나 부스러져 애를 먹었고, 또 다른 어느 해에는 어적을 굽는데 계속 생선이 깨지면서 애를 먹었단다. 결국 제주 할아버지가 결단을 내려 편은 없애고 어적은 통북어에 양념을 묻혀 굽는 편안한 방식으로 바꾸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후 대대손손 여자들이 편해졌다.

그러니 유연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올해처럼 추석이 이르면, 대추 대신 씨 많은 포도를 올리거나 감을 빼고 참외를 올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만들기 까다로운 음식을 빼고 엇비슷한 종류의 편안한 음식을 만들어 식구들끼리 나누어 먹어도 괜찮은 것 아닐까. 관건은 어르신들의 유연한 판단과 결정이다.

물론 예전의 추석 음식들이 아무리 손이 많이 간다 할지라도 추억으로 계승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도 괴로운 일이라면 그 방식은 바뀔 수 있는 것 아닐까. 예컨대 내가 추석 때마다 가장 아쉬운 송편이 그런 음식이다. 모든 음식을 추석 전날 해치워야 하는데,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야 하는 송편까지 하려면 정말 죽을 노릇이다(이는 한 집안에 여자가 열댓 명씩 사나흘 모여 음식에 매진할 수 있었던 시절에나 가능했다). 결국 떡집의 송편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송편 소는 모두 달디단 깨와 콩가루 일색이어서 예전 송편 맛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떡가루를 딱 한두 되만 빻아 두었다가, 정작 추석 당일에 해먹으면 어떨까.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서는 사실 딱히 할 일이 없다. 텔레비전과 화투장이나 쳐다보느니 힘 좋은 남자들이 떡을 반죽해 아이들과 송편을 만들고, 바로 쪄내어 따끈한 떡을 나누어 먹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는가. 텔레비전을 보며 대화하기는 힘들지만 송편 빚기를 하면서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으니 그 역시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바쁜 추석 전날 떡집 뛰어다니는 짓을 하지 않아도 되고, 옛날 송편 맛을 볼 수 있으니 그것도 행복한 일이다.

내가 먹고 싶은 송편은 밤 송편, 콩 송편, 팥 송편이다. 통밤을 깎고 풋콩을 까서 소금과 약간의 설탕으로 간을 한 후 소로 넣는다. 잘 익은 통밤이 그대로 씹히는 맛이 일품이고, 풋콩의 풋풋한 냄새와 식감이 쌀떡과 어우러져 맛이 지루하지 않다. 팥 송편은 거피(去皮)한 팥을 하얗게 삶아 소금 간만 해 그대로 소로 쓴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아 첫 입에 그리 당기지는 않는데, 씹을수록 팥 특유의 고소한 향취가 그대로 살아나니 이 역시 일품이다.

하지만 아무리 추억의 음식이면 뭐하겠는가. 이런 걸 바쁜 추석 전날에 하라고? 절대사절이다. 추억의 음식에는 추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여유를 만들어 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그 배려는 음식을 만드는 여자들한테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대중예술평론가. 요리 에세이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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