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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현대그룹 금융제재 중단하라”

중앙일보 2010.09.18 00:35 종합 17면 지면보기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두고 벌어진 현대그룹과 채권단 간의 법정 공방에서 법원이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줬다.


“채권단 공동제재는 부당 … 경영위기 극복 방안은 기업 자율로 정할 사항”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최성준 수석부장판사)는 17일 현대그룹이 신규 여신 중단과 만기도래 채권 회수 등 공동제재를 풀어 달라며 채권단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이들의 공동결의에 대해 효력 중단 결정을 내렸다. 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조만간 협의회를 개최해 불복 절차를 진행할지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채권단은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 세칙의 규정이 공동 제재 조치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기에서는 주채권은행이 채권단의 간사로서 협의회를 운영한다고 정하고 있을 뿐 공동의 제재를 취하도록 강제하거나 공동제재가 허용된다고 명시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 “은행업 감독규정 등은 금융기관이 기업의 재무구조개선을 유도하도록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제재할 수 있게 하지만, 경영이 악화됐을 때 어떤 식으로 이를 극복할지는 원칙적으로 기업이 자유롭게 결정할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이 재무약정을 체결하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면 그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공동제재 결의는 개별 채권은행이 현대그룹의 재무구조에 대한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거래 여부나 조건을 결정할 수 없게 한 것”이라며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로 금지되는 부당한 공동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이 같은 판단으로 사실상 금융감독 당국의 지도에 따라 은행들이 운용하고 있는 재무구조개선약정 제도에 상당한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현대그룹처럼 약정 체결을 거부하는 기업이 나와도 이를 강제하기는 어려워졌다. 법원이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여부를 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정 체결을 거부하는 기업에 대한 채권단의 공동제재는 효력을 잃게 됐다.



그러나 감독당국과 채권단은 기존의 제도가 금융시장의 위험 관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이란 채권단이 매년 대기업그룹(주채무계열)의 재무상태를 평가해 문제가 있는 곳과 약정을 맺고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제도다. 사전에 구조조정을 추진함으로써 대기업의 부실이 시장에 큰 충격을 주는 일을 막자는 취지다. 기업들은 이 제도가 도입된 외환위기 때보다 상황이 크게 개선됐다며 획일적 평가와 강제 구조조정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침해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편 현대건설 인수 의지를 강하게 밝혀 온 현대그룹은 금융제재에서 풀려나 인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됐다. 익명을 원한 현대그룹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으로 금융제재의 악재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으로 비췄던 그룹 이미지도 바로 세울 수 있게 됐다”며 “무엇보다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신규 여신 중단 등 걸림돌이 제거돼 추진에서 탄력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지난 7월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거부한 현대그룹에 대해 신규 대출을 중단하고, 만기가 도래한 여신을 회수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내고 있는데도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을 부실기업으로 몰아 극단적인 제재를 가한 것을 수용할 수 없다”며 지난달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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