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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송편 먹으며 책갈피 넘겨볼까요

중앙일보 2010.09.18 00:24 종합 22면 지면보기
한가위 연휴가 코앞입니다. 수확의 넉넉함을 이웃과 함께 즐기던 옛 모습이야 찾을 길 없지만 모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때입니다. 그리운 고향을 찾을 수도 있고, 가족과 정다운 시간도 가질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입니다. 더불어 책을 가까이 해 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꽉 막힌 귀성길의 답답함을 덜어주거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책들을 골라봤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강일구]
얼떨결에 의사 되어 좌충우돌

눈물 쏙 빠지게 웃기고 울리고



맨발의 완 선생

판샤오칭 지음, 이경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480쪽, 1만3500원




소설 제목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 할 듯 싶다. 완 선생은 소설의 주인공인 완취안허, 맨발은 중국 문화혁명기(1966∼76)에 존재했던 ‘맨발의 의사(赤脚醫生)’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맨발의 의사, 완취안허 선생’이 보다 친절한 제목일 게다. 나라 전체를 극좌 사회주의 체제로 급격하게 몰아가다보니 민중의 불만을 달랠 유화책이 필요했던 것일까. 문혁 시기 중국 당국은 의사가 되는 정규 과정을 밟지 않고도 어깨 넘어 배운 실력으로 사람을 치료하도록 한 이른바 맨발의 의사를 양산했다. 1975년에는 그 숫자가 16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완취안허는 그 중 하나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얼떨결에 맨발의 의사가 된다. 소설은, 똑똑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정직하고 인정 많은 완취안허의 일대기를 통해 수 십 년 저쪽 척박하지만 푸근한 중국 인민들의 삶을 실감나게 복원한다. 좌충우돌 눈물 나고 웃음 쏟아지는 완취안허의 의사 수련기, 그의 잇단 연애 실패담, 농촌 마을 공동체에 있기 마련인 숱한 기인(奇人)들에 얽힌 각종 에피소드가 소설의 주 내용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모옌의 『홍까오량 가족』,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등 빼어난 중국 현대소설들의 공통점은 어찌 보면 끔찍한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도 익살과 해학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 이 소설도 다르지 않다. 주사 하나 놓을 줄 모르는 완취안허가 마취도 없이 사람의 살을 짼 후 무릎뼈를 치료하는 장면은 끔찍하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가래가 기도를 막아 숨 넘어가는 환자를 ‘속이 뒤집혀 창자까지 튀어나올 것만’ 같은 가래 비린내를 무릅쓰고 인공호흡해 살려내는 대목은 진저리가 처질 정도다. 그가 미끌미끌 누렇고 진한 가래 덩어리를 빨아들였다 토해내는 모습을 보고 사귀던 여자가 도망간다.



저자 판샤오칭은 소설을 익살맞게 쓰려고 작심한 듯하다. 완취안허가 모처럼 공들인 여성 쉬친잉으로부터 딱지 맞는 장면이 압권이다. 겨울밤 홀로 쉬친잉 집을 찾아가던 완취안허, 개울에 빠져 동태가 된다. 정작 쉬친잉 부모와 맞닥뜨리자 입이 얼어 말은 안 나오고 옆에서 개는 짖는다. 마침 쉬친잉이 집을 비워 미래의 사위감을 알아볼 리 없는 쉬친잉의 부모, 완취안허를 거지로 여긴다. 민생에 둔감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교묘한 조롱도 묻어난다. 열 살 안팎의 꼬마들에게 쩔절 매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쩐지 홍위병을 연상시킨다.



좀 두텁지만 긴 추석 연휴기간 느긋하게 읽을 만한 소설이다.



신준봉 기자






금메달 보면서 속상한 은메달

4위 보면 행복해지는 동메달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

에카르트 폰 하르슈하우젠 지음, 박규호 옮김

은행나무, 475쪽, 1만7000원




엉뚱한 이가 지은 신선한 ‘실용적 행복론’이다. 지은이는 독일의 의사. 한데 대학병원에서 일하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카바레에서 공연을 하는 ‘카바레티스트’로 나서 웃음을 전파하는 괴짜다. 당연히 그의 행복론은 유쾌하고 독특하다. 행복의 정의, 철학적 의미 등 진지한 행복론을 벗어난다.



‘다른 사람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처럼 당연하지만 평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지적도 해주고, ‘사람은 불행을 원한다’처럼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말도 한다. 그중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를 줄 말은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란, 예전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이유가 그럴싸하다. 아주 아주 오래 전 매머드를 사냥해서 배터지게 먹고 마신 뒤에 행복에 겨워 천방지축 초원을 뛰어다니던 원시인은 호랑이의 먹이가 되었을 터이어서 우리는 그런 그런 이들의 후손이 아니란다. 행복이 금방 사라지는 탓에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 살아남은 조상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마냥 행복하도록 ‘저주받은’ 사람은 없다고 주장한다.



‘동메달을 노려라’란 조언도 한다. 은메달리스트보다 동메달리스트가 행복하기 때문이란다.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리스트를 보며 ‘조금만 빨랐으면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텐데’ 싶어 속상해 하지만 동메달리스트는 4위를 보며 ‘조금만 늦었으면 메달을 따지 못헸을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는 것이다. 행불행은 누구와 비교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는 설명에는 절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대예술가’가 쓴 책답게 곳곳에 슬며시 웃음을 자아내는 구절이 수두룩하다. 비만을 두고 ‘하느님이 창조하고 맥도널드가 살을 붙인’식으로 표현한 대목이 그런 예다. 행복에 관한 답은 다이어트에 대한 조언과 비슷하다는 대목도 그렇다. 만약 어떤 다이어트 방법이 정말로 그렇게 효과가 좋다면 온갖 다이어트 ‘비법’이 난무하지 않았을 거라나.



“만약 당신이 행복이라면 당신은 기꺼이 당신 자신을 찾아가겠느냐”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에필로그에서 “행복을 위한 완벽한 책이나 완벽한 방법은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행복해지기는 간단하다. 다만 간단해지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솔직해서 더욱 혼자만 읽기 아까운 책이다.



김성희 기자






인류 사라진 뒤의 올빼미 왕국

아이만 읽기엔 아까운 판타지



가디언의 전설 1~3권

캐스린 래스키 지음, 정윤희 옮김

문학수첩, 각 8500원




판타지 소설가란 능글맞은 이야기꾼임에 틀림 없다. 단 한번도 존재한 적 없는 세계를 ‘판타지’란 이름으로 능청스레 건설한다. ‘판타지’란 말 앞에 ‘아동’이란 말을 덧붙여야 마땅할 이 책은, 그 능청스러움의 수위가 제법 높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란 이런 곳이다. 이 세계에서 인류는 이미 사라졌다. 대신 올빼미·뱀·늑대·까마귀 등이 주체로 등장한다. 주요 무대는 올빼미들의 세상인 타이토의 숲. 이곳에서 태어난 주인공 올빼미 소렌이 우연히 악한 올빼미 무리에 납치되면서 좌충우돌 모험기가 펼쳐진다.



물론 많은 동물 판타지 문학이 그러하듯, 이 소설도 올빼미를 비롯한 동물의 세계에 인간의 모습을 포개놓았다. 그러니까 책에서 올빼미는 마치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를테면 전통적으로 눈먼 뱀은 올빼미 가족의 가정부로 일한다는 설정. 가정부인 뱀과 올빼미들은 먹는 음식도 다르다. 흡사 계급으로 나뉘어진 인간 세계를 빼닮은 듯하다.



이야기 전개 역시 인간의 역사를 흘깃한 게 적잖다. 주인공 소렌은 악한 올빼미들로부터 탈출해 기사 올빼미들이 산다는 ‘가홀 나무’로 떠난다. 이 시리즈 소설의 큰 줄기는 올빼미들이 왕국을 건설하는 과정인데, 왕국 건설이나 기사단 등은 실제 중세 역사에서 끌어온 부분이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에 나오는 왕의 연설이나 윈스턴 처칠의 연설을 슬쩍 흉내낸 듯한 대목도 나온다. 이 소설이 ‘아동 판타지’로 분류되면서도, 어른들이 함께 읽어도 좋을 만큼 묵직하게 읽히는 건 그래서다. 소설엔 가족애·우정 등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잘 녹아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주된 타깃은 아동·청소년이다. 해서 문장은 단촐하고, 각종 동물에 대한 묘사는 비교적 상세하다. 특히 올빼미에 대한 묘사는 조류 사전에 견줄 만큼 토실하다. 읽다보면 올빼미의 종류·습성 등에 대해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원숭이 올빼미인 소렌의 귀는 왼쪽이 오른쪽보다 높다. 귀의 위치가 짝짝이라서 오히려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것이다.(1권 p.258)’



이 소설은 모두 15권으로 이뤄진 대서사물이다. 그 가운데 세 권이 먼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10월엔 3D 애니메이션으로도 개봉될 예정이다. 하지만 굳이 3D 안경을 쓰지 않아도 그려질 만큼 책의 이야기 구성과 묘사는 촘촘하다. 미국에서만 500만권을 팔아치운, 출판계의 ‘판타지’를 실현시킨 소설이기도 하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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