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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프리즘] 장인이 지역 발전 이끌어 가야

중앙일보 2010.09.18 00:18 종합 29면 지면보기
어디를 가나 유명한 전통음식점에는 ‘○○○할머니집’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왜 굳이 할머니일까?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아내는 할머니를 끌어들이면 정서적으로 고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땅의 할머니들이 보여주셨던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정성·기술 등 장인(匠人)정신이 할머니 손맛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이어진 것 같다. 지난날 우리 주변엔 음식뿐만 아니라 한지·방짜수저 등 각종 생활도구와 관련된 무수한 ‘할머니’(장인)들이 있었다.



일본이나 유럽에 갈 때마다 부러운 게 있다. 많은 ‘할머니’들이 향토산업의 주역으로 지역사회를 떠받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가. 그동안 경제성장에만 매달려 새까맣게 잊고 지내다 이제 와서 관광과 접목시킬 고유문화를 찾다 보니 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 요즘 시끄러운 ‘전통기법에 의한 국새(國璽) 제작’ 사기 사건도 이러한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글로벌 사회에서 지역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큰 기술보다 고유 기술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문화가치를 고려한다면 우선 전통장인을 살려야 한다. 하지만 지역에서 기업 수준의 활동을 하는 전통 장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분들은 기술 수준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사업 마인드는 거의 없다. 매우 영세하다. 양조업·장류제조업 등 초기자본 투자가 필요한 사업에 있어서 자본을 자체 조달할 능력이 있는 사업자는 기술력의 우위성으로 사업을 어느 정도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자본을 빌려 시작할 경우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시설보다는 인력이 중요한 방짜수저·한지 등 사업을 혼자 운영하는 장인은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매출 규모가 작은 탓이다. 기술력으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사업에서도 설비투자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마이스터는 ‘이론-실습-현장’이 연계되는 체계적 인력 양성·공급 시스템을 통해 배출된다. 마이스터는 정부가 규정한 임금을 받는 실습생을 데리고 작업함으로써 상품의 양과 질에서 안정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시스템이 거의 없다. 무형문화재·명인 등을 지정하는 제도가 있지만, 이는 명예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경제·산업 측면에 대한 고려가 너무 약하다. 전통 장인의 기능과 그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지역의 전통적·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또 지역의 인재와 자원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산업경제적 효과도 크다.



이들 장인과 상품이 사라지는 것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문제다. 이를 지역사회에서 의제화·정책화하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국가의 관심과 투자도 병행돼야 한다. 지역의 인적자원 개발에는 ‘시장실패’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역의 발전을 장인들이 힘차게 끌어갈 수 있게 하는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



염돈민 강원발전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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