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 Special 객원기자 이혜영의‘현장’] 대박 있기까지의 눈물, 천호식품 회장 김영식

중앙일보 2010.09.18 00:18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어눌한 경상도 사투리의 촌스러운 광고. 천호식품 김영식(59) 회장이 직접 출연한 CF가 폭발적 인기다. 다른 회사의 광고며 기업 마케팅에서 ‘패러디 문구’가 잇따라 등장할 정도다. 그러나 대박 뒤에 숨은 눈물과 고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외환위기 때 20억원의 빚 때문에 목숨을 끊으려 했다. 600원짜리 소시지와 소주 한 병이 끼니였다. 하지만 130만원으로 다시 일어서서 연 매출 800억원의 건강식품 회사로 키웠다. 10일 오뚝이 같은 인생반전(人生反轉)의 주인공을 j의 이혜영(영화배우·전 SBS 앵커) 객원기자가 만났다.


“산수유 받은 부시, 고맙다고 답장 … 로라가 효과 봤나 봐요”

정리=김준술 기자 jsool@joogn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장소 협찬=코엑스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



‘영업의 달인’다웠다. 김영식 회장은 인터뷰 직전 산수유·마늘·블루베리로 만든 건강식품을 탁자에 쭉 깔고 시식부터 권했다.



김영식 회장(이하 김)=마시고 하시죠. 컵에 따라 드릴까? 그냥 빨아 드시죠 뭐.



이혜영(이하 이)=와, 진짜 맛있는데요…. 사실 제가 새벽 2시까지 회장님을 공부했어요. 먼저 CF 얘길 빼놓을 수 없겠죠. 전에도 최고경영자(CEO)들이 CF 나온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인기를 끌진 못했어요. 비결이 뭘까요.



김=이렇게 대박을 칠지 몰랐죠. 산수유 제품은 원래 2000년에 처음 만들었어요. 그땐 산수유를 주 원료로 못 쓰게 돼 있었습니다. 제품에 49%만 들어갔죠. 아무튼 그걸 만들어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보냈어요. ‘대통령 된 것 축하한다. 세계의 대통령이 되려면 정력이 좋아야 한다. 한국의 산수유가 으뜸이니 먹어 보라’고요. 그런데 3개월 뒤 답장이 왔어요. ‘정말 고맙다. 우정이 오래 가길 원한다’고요. 부인인 로라 부시의 서명까지 붙여서요. 속으로 ‘로라가 효과 봤나 보다’ 생각했죠, 하하. 그 편지를 광고에 써먹었어요. 사람들이 ‘야, 부시도 산수유 먹는구나’ 하면서 많이 팔렸죠. 광고의 위력을 실감했어요. 그러다 지난해 10월에 법이 바뀌어 산수유를 주 원료로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직원들하고 회의하다 “이런 멘트 어때” 하고 아이디어를 냈죠. 옛날 제품보다 더 좋아졌다는 데서 착안했어요. 광고회사에서 진솔하고 가슴에 와닿는다고 흥분하더라고요. 광고 나가자마자 화제가 됐죠.”



이=통마늘·강화사자발쑥 같은 제품도 많은데 하필 산수유입니까.



김=우리 상품이 170가지예요. CF 하는 건 최고로 자신 있는 걸 내보내는 거죠. 산수유는 신장·방광에 도움이 돼요.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좋죠. 나이 들면 소변 볼 때 잔뇨감도 있고 허벅지·바지에 묻기도 하잖아요. 그런 분들이 1주일 먹으면 소변이 딱딱 끊어집니다. 보름 먹으면 아침이 힘있게 느껴지는 거죠.



이=식품회사 CEO로서 ‘나도 건강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많겠군요.



김=골프 칠 때 사람들이 “마늘의 힘 한번 보여주라”고 해요. 공이 조금만 나가면 “요즘 안 드십니까” 야유가 들어오죠. 저는 아침·저녁으로 매일 몸무게를 잽니다. 가장 싫은 게 배 불룩한 거죠. 지금 64㎏입니다. 제가 다이어트 식품은 안 만들어요. ‘먹으면 살 빠진다’고 하는데 사람은 먹으면 찌게 돼 있어요. 근데, 이혜영 선생님도 몸매 관리 참 잘했네요.



이=CF 모델로 뜨면 좋습니까.



김=안 좋아요. 공항에서 앉아 있는 것도 조심스럽고, 예쁘게 몸가짐을 해야 돼요. 목욕탕 갔는데 누가 계속 쳐다보더라고요. 그러더니 “산수유 회장님 아닙니까” 말 붙이는 겁니다. 다 벗고, 당황스럽더라고요.



이=모델 소질이 있었나 봅니다. 어릴 때 그런 꿈이 있었나요.



김=없어요. 제가 쓴 『10미터만 더 뛰어봐』(중앙북스)가 26만 부 넘게 나간 뒤 강의를 많이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무대에 서는 게 자연스러워졌죠. 얼마 전 어린이대공원의 2000명 앞에서 강의할 때는 청중이 앞으로 나와 “힘든 시절 얘기할 때 감동을 받았다”며 안아달라고 하더라고요.



이=저도 책을 읽었습니다. 이젠 완주했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김=아니요. 지난해 송년회 때 직원들에게 물었죠. “내가 성공한 CEO냐.” 그렇다는 답이 왔어요. 그러나 전 “아니다”고 손사래쳤죠. 직원들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월급 많이 받는 날이 제가 성공하는 날입니다.



이=일반인에게 ‘출산 장려 지원금’도 주고, ‘희망의 스위치’라는 사회사업도 하는데요.



김=책 인세와 강사료, 회사 이익금으로 5억원을 만들었어요. 제가 운영하는 ‘뚝심이 있어야 부자가 된다’는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kys1005)에 신청해 세 번째 자녀 낳는 대한민국 국민에겐 누구나 200만원을 줍니다. 지금까지 100여 명이 받았지요. 최근 1년간 벌였던 ‘희망의 스위치’ 운동을 통해선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20명에게 월 1000만원씩을 지원했습니다.



이=탤런트 이순재씨가 그 책을 읽고 ‘피눈물 나는 삶의 기록’이라며 ‘독자들에게 한 가지만이라도 건지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본인이 직접 한 가지를 고른다면 무엇인가요.



김=‘생각하면 행동으로 옮겨라’ 입니다. 언제? 지금. 당장. 즉시. 성공 못하는 사람들은 그걸 무덤까지 가져갑니다. 행동을 못하는 거죠. 이게 잘 안 되면 저는 ‘소리를 지르라’고 합니다. 소리는 척추로 이동해 행동을 유발한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이=평소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나요. 가장 믿음직스럽다는 동업자, 아내 얘기도 듣고 싶습니다.



김=자녀는 딸 하나, 아들 하나예요. 제가 원래 딸 때문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서른두 살 때입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4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살았죠. 어느 날 퇴근했더니 초등생 딸이 울더라고요. “왜 난 공부방도 없고 책상 하나도 없느냐”고요. 집에서 생일잔치를 했는데 친구들이 놀리는 걸 보고 애가 충격을 받은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죠. 사채업자에게 급전 300만원을 빌렸어요. 봉투에 넣어 갖고 와서 “현주야, 아빠 얼마나 부자인지 볼래” 하면서 방에 뿌렸어요. 그 조그마한 방이 만원짜리로 가득 찼어요. 그제야 딸이 “아빠도 부자”라고 했어요. 돈은 다음 날 다시 반납했죠 뭐. 그런 식으로 애들한테 행동으로 보여준 게 많아요. 아들은 제대한 뒤 유럽으로 두 달간 배낭여행부터 보냈어요. 선진국에서 괄시받고 오라고요. 후진국에 갔다 온 젊은이들은 우쭐하기 쉬운데 선진국은 그 반대죠. 지금 딸·아들 모두 우리 회사에서 일합니다.



이=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비전을 줬는데 정작 자신의 고통과 슬픔은 혼자 삼킨다고 들었습니다. 정신건강에는 좋지 않을 것 같아요.



김=1999년 초 하루 밥값이 1000원이었어요. 소주 한 병에 소시지 하나 샀죠. 첫날 그걸 여관방에서 먹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부산에서 현금 많기로 100등 안에 들었던 제가 3500원짜리 점심 하나 못 사먹고…. 나쁜 소식은 빨리 전달된다고 하던가요. 전 사람들에게 ‘잘되고 있다’고 말하곤 혼자 소화시켰어요. 대신 일기에 마음을 적었죠. 거기서 ‘10m만 더 뛰어보자’는 각오가 나왔어요. 100m밖에 못 뛰는 사람에게 200m 뛰라고 하면 어떻겠어요. 못 뛰죠. 그러나 10m만 더 가보라고 하면 110m를 갑니다. 거기서 또 10m 가고, 이러면 200m 목표를 채우는 겁니다.



이=그때는 이미 성공을 맛본 뒤 실패했던 시절이었죠? 성공하기 전에도 사업에 실패한 적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삭였습니까.



김=답답한 걸 얘기 안 하면 화병 나죠. 저는 택시 타고 “아무 데나 가자”고 해요. 제 얘기 들어주면 요금 더블로 주겠다고 제안하는 거죠. 기사한테 실컷 얘기하면 좀 나아요. 또 집에 14년 된 ‘뽀야’란 강아지가 있어요. 가끔 앉혀 놓고 “내 말 좀 들어보라”고 합니다. 잘 들어줘요.



이=조금 쉬고 싶진 않습니까. 아직 완주가 멀었다고 하니 회장님께 쉼이란 어떤 겁니까.



김=자, 제 휴대전화 화면을 보세요. ‘천호식품 미국, 일본 대박’ 이런 문구가 보이죠? 저는 성공하고 싶으면 자기 목표를 전화기 화면에 적으라고 합니다. 다만 목표를 적어야지, 꿈을 적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것 중 하나가 휴대전화 화면이에요. 끊임없이 목표를 보게 되면 행동으로 옮겨지는 거죠. 올해 우리가 일본의 편의점 9000곳에 제품을 공급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국내에 3만 평, 5만 평짜리 공장을 멋지게 지으면 그때 비로소 한 달간 여행을 갈 겁니다. 원래 성격도 못 쉬는 편이지만, 사실 사람이란 게 천석꾼이 되면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이면 만 가지 고민을 하는 것 아닙니까.



이=정치 쪽에서도 유혹이 많을 것 같습니다.



김=많이 들어와요. 부산시 남구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그러거든요. 하지만 사람은 태어나면서 어느 정도 밥그릇이 있어요. 그릇은 작은데 너무 많이 넣으려 하면 깨지죠. 젊은이들에게 건배 제의할 때 하는 말이 있어요. 잔을 가득 채우지 말고 70%만 채우라는 거죠. 정치하라는 유혹은 많은데 관심은 없어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김영식 회장이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저장해 다니는 문구를 이혜영 객원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중국·일본 시장에 진출해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회사의 미래에 대해선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요.



김=상상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디어가 나오죠. 저는 잠자기 전에 ‘나는 초능력자야, 내 공장엔 세계 230개국 바이어들이 몰려올 거야’ 이런 생각을 해요. 지금 9개국에 수출하는데 재구매율이 87%에 달해요. 국내에서 대리점 달라는 사람이 많아요. 그거 내주면 질서가 안 지켜져요. 우리는 대리점이 없어요. 공장에서 만들면 콜센터에서 전화 받아 고객에게 배달하죠. 그래서 가격이 쌉니다. 중간상이 없으니까. 싸면 고객이 좋아하죠. 지금도 공장엔 각 나라 국기를 크게 만들어 비치해 놓고 있어요. 어느 나라 바이어가 와도 환영을 해주려는 거죠. 고객은 아주 작은 것에 감동을 받습니다. 큰 것이 아니고요.



이=요즘 젊은이들은 ‘스타일을 먹는다’는 말을 합니다. 천호식품이 그런 층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셨나요.



김=제대로 짚으셨네요. 사실 우리 고객이 20대가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 ‘마늘 초코 우유’를 내놔요. 달달한 게 젊은이 입맛에 맞을 겁니다. 뭐든 두드리면 열립니다. 사람도 ‘임계점’이 있어요. 99도까지 갔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많죠. 1도만 더 가면 펄펄 끓을 텐데…. 안 되면 될 때까지 들이대야죠.”



김영식 회장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성공학



1. 체험은 성공의 열쇠다



김 회장은 ‘달팽이 엑기스’로 일어섰다. 1986년 여름 그는 차 사고로 다쳐 팔이 부러졌다. 깁스를 했지만 3~4개월이 지나도 뼈가 안 붙었다. 누군가 ‘달팽이를 먹어보라’고 했다. 경과가 크게 좋아졌다. 신기했다. 2년 뒤 어느 날 신문의 달팽이 사업 광고를 보곤 곧바로 덤벼들었다. 그에겐 간과하기 쉬운 삶의 경험이 곧 비즈니스 아이디어였다.



2. 고기 떼가 지날 때 낚는다



그는 낚시를 즐긴다. 배도 있다. 낚시꾼도 유심히 본다. 그러나 똑같이 낚시를 가도 실적은 다르다고 한다. 유능한 사람은 밑줄부터 열심히 준비한다. 그러나 노력 않는 이들은 줄부터 대충 맨다는 것이다. 이러면 눈 먼 고기 몇 마리 잡는 게 고작이다. 김 회장은 시장을 유심히 보고 금연파이프·마늘제품 등을 먹힐 흐름에 맞춰 내놓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3. 당신의 신념에 중독시켜라



김 회장의 승용차와 가방엔 통마늘 진액부터 천호식품의 각종 건강식품이 준비돼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즉석 시음을 권한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공항 직원들에게도 제품을 건넸다. 택시 기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동네 산을 산책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테니스를 칠 때도 ‘통마늘 대박’이라고 소리쳤다. 그는 “스스로 미치고 다른 사람들도 미치게 하라. 그러면 성공은 저절로 온다”고 말했다.



4. 팔려면 먼저 미쳐라



‘쑥 쑥 쑥자로 끝나는 말은, 이쑥 저쑥 들쑥 날쑥…’ 김 회장이 외환위기 때 직접 만든 쑥제품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르고 쑥을 팔러 다녔다. 일기장·수첩·메모장 등 보이는 곳엔 모두 ‘쑥을 못 팔면 죽는다’고 써놓았다.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을 뒤져 공부해 쑥에 관한 강의를 세 시간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지식을 갖췄다. 영업사원들도 그에게 감화됐고 돈다발이 들어왔다.



5. 김 회장 별명은 ‘15분 전’



부산의 한 호텔을 자주 이용하는 김 회장. 어느 날 지배인이 다가와 “회장님이 성공한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 항상 약속시간 15분 전에 온다는 것이었다. 그는 먼저 도착해 화장실에서 매무시를 가다듬는다. 밖에 나갔다가 회사로 돌아와 사내를 둘러볼 때도 늘 스킨을 바르고 머리를 빗고 나간다. 김 회장은 그런 마음가짐이 ‘신뢰’를 쌓는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밑천의 하나가 바로 고객, 직원들과의 신뢰였다.




j 칵테일 >> 그의 성공 밑천은 가족애



1998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어느 전당포. 중년의 망해가는 사업가 한 명이 들어왔다. 손엔 사업이 잘될 때 아내가 격려차 선물한 반지(사진)가 들려 있었다. 이윽고 사내는 반지와 맞바꾼 130만원을 들고 나왔다. 남자는 김영식 회장, 현금은 재기 밑천이었다.



그는 돈으로 전단지를 만들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지하철 역과 식당을 돌며 ‘쑥 제품’을 사달라고 애원했고 결국 일어섰다. 그때뿐만이 아니었다. 김 회장은 “아내는 늘 나의 ‘동기 부여자’였다”고 했다. 생각도 못했던 공장을 짓고, 집을 살 때도 아내의 직관이 그를 움직였다.



따뜻한 가족애는 늘 그를 일으켜 세웠다. 외환위기 때인 98년 3월이었다. 그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어음 막을 돈 2000만원이 없으면 최종 부도날 운명이었다.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진 다섯 형제가 보낸 용돈을 20년간 모아두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진 다음 날 아무 말 없이 돈을 보내왔다. 김 회장은 “경찰관이던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 새벽 4시에 일어나 찬밥에 물 말아 드시고 나가기도 했다”며 “ 아버지의 모습이 나를 오뚝이로 단련시켰다”고 말했다.



>> 비행기 탑승 횟수 1746번





인터뷰 날 김영식 회장은 부산 공장에 들렀다 비행기를 타고 왔다. 오자마자 대뜸 비행기 표의 ‘탑승 횟수’(사진)를 보여줬다. 1746번. 20년 전 ‘달팽이 엑기스’를 개발하면서 비행기를 타기 시작한 뒤 달성한 기록이다. 옆의 마일리지엔 130만이란 수치가 선명했다. 서울과 부산, 해외를 쉴 새 없이 오가는 그의 바지런함·현장주의를 웅변하는 숫자였다.



실제 그의 인생이 그랬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그는 군을 제대한 뒤 고향에서 ‘일일 학습지’ 사업을 했다. 아버지를 졸라 받은 20만원이 종잣돈이었다. “하루 100㎞ 넘게 회원 확장을 위해 다니는 뚝심으로 두 달 만에 90부를 550부로 늘렸어요.” 이후 신발 깔창을 만들어 팔다 서른 살인 80년 큰돈을 만진다. “그때가 세계 금연의 해였죠. 금연 파이프를 만들면 돈이 되겠다 싶었는데 반년간 6000만원 이익이 났죠.”



하지만 호사다마였다. 욕심이 생기고, 씀씀이가 헤퍼졌다. 장난감·주방용품으로 발을 넓혔지만, 무리한 확장 탓에 무일푼이 됐다. 84년 천호식품을 세워 저주파 치료기로 재기의 발판을 다지다 신문에서 ‘달팽이 사업’ 광고를 보고 엑기스 생산에 나선다. “하루 한두 박스 판매가 고작이었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PD들을 발이 닳도록 찾아가 방송에 출연했어요.” 이후 제품은 잘 팔렸다.



다시 치명타를 맞은 건 외환위기(IMF) 때였다. 대기업에 납품하던 기능성 식품원료 공급이 중단되고, 하청업체에 건넨 어음의 만기가 돌아왔지만 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순식간에 20억원 빚 더미에 앉았다. “서울 서초동 사무실 9층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했죠. 그때 세무서 직원이 세금 내라고 독촉 전화를 하더라고요. 오기가 발동했죠. 세금 낸다고 기다리라고 했어요.” 이후 쑥 제품으로 승부에 나선 그는 비행기 안에서도 전단지를 돌렸다. 2005년 마늘 제품을 내놓은 뒤엔 서울~부산의 520㎞ 사이클 행진으로 제품을 홍보하면서 매출에 불이 붙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