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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도박하는 인간

중앙일보 2010.09.18 00:12 종합 31면 지면보기
“적어도 노름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은 노름엔 최고라는 말이 없는 줄 안다. 평생을 하루저녁에 잃을 수도 있고, 하루 만에 최고에서 최하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성석제 소설집 『홀림』 중 ‘꽃 피우는 시간-노름하는 인간’의 한 구절이다. 주인공이자 세계 최고 도박사 피스톨 송은 ‘노름 10계명’을 설파한다. 1번은 ‘걸면 안 되는 것을 걸지 마라’. 걸면 안 되는 것이란 식구·집·쌀·조국 등이다.



주색잡기 중 잡기(雜技), 즉 도박은 중독성 강하기로 술(酒)과 여자(色) 못잖다. 허영만 만화 『타짜』의 노름꾼들은 손가락을 잘리고도 남은 손가락으로 기어이 화투장을 쥔다. 한때는 도박중독을 윤리·도덕의 문제로 봤다. 요즘은 갈수록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쾌락중추 조절 실패 탓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독자들은 ‘패를 쪼는’ 순간의 스릴, 그 황홀경을 사랑한다. 발자크는 이를 ‘도박정신(spirit of gaming)’ ‘병보다 더 치명적인 열정’이라고 했다. 1000만 부 넘게 팔린 일본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인용하자면 ‘꾼’들의 뇌는 “보통의 자극으론 타오르지 않는다”. 이들은 “정말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쾌감은 정상(正常)을 벗어나야만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박이 사람들을 ‘우연의 세계로 뛰어들게 만드는 특별한 장치이자 제도’라는 흥미로운 시각도 있다. 『도박』의 저자인 영국 글래스고대학 교수 거다 리스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 모두는 도박자’라고 말한다. 매주 같은 날 같은 가게에서 로또를 사거나, 사무실에서 월드컵 경기 결과에 돈을 거는 식으로 도박적 행동은 우리 일상에 배어 있다는 거다. “우연의 경험에 매료된 사람들에겐 돈을 거는 초조한 순간이 게임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그가 만든 말이 ‘호모 알레아토르(도박하는 인간)’. ‘요행을 바라는(aleatory)’ 게 인간의 본성이란 얘기다.



최근 방송인 신정환씨의 해외 원정도박 의혹으로 연일 떠들썩하다. 대한민국 연예프로를 주름잡던 그가 모든 걸 팽개치고 잠적했다. “(노름을) 너무 오래 하지 마라. 최후에 웃는 건 카지노 운영자, 하우스(도박장) 주인장, 세월의 주인이신 조물주다.” 다시 『홀림』의 한 구절이다. 도박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의 문제는 너무 오래 한 것일 터다. 아니면 우연의 세계를 지나치게 사랑한 것이든지. 걸면 절대 안 되는 인생과 경력을 걸게 하는 우연의 마력이란 대체 무엇일까.



 기선민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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