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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꿈꾸는 중년은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2010.09.18 00:11 종합 31면 지면보기
햇살이 눈부신 가을 숲길을 한 농부가 나귀를 끌며 가고 있다. 숲 속엔 한 짐 가득 실은 나귀와 농부뿐, 한가로운 풍경이다.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나귀가 걸음을 멈추고 목을 흔들어 방울소리를 낸다. 그러자 농부는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문득 나귀의 방울소리가 농부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지금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것인가요?” 인생의 한나절을 지날 때면 문득 그 나귀의 방울소리가 들리는가 보다.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느냐’는 또 다른 자아의 소리가 말이다. 그래서 중년에 접어들면 ‘나도 꿈이 있었는데…’라는 생각에 그 잊혀진 꿈을 떠올리게 되나 보다. 도대체 꿈이란 무엇일까.



기업의 중역들을 대상으로 개인 브랜드 통합관리(PI)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첫 순서에서부터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를 브랜딩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알아야 하는데 대체로 자신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나를 말하는 것은 나를 대변하는 사회적 기록, 즉 프로필 같은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떤 성향이고, 어떤 것에 가슴 뛰며, 나를 몰입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묻는 것인데 대개의 답은 “없다”거나 “생각해본 적 없다”로 일관한다. 그리고 ‘이런 것이 사는 데 뭔 대순가’라는 눈빛으로 답답해한다. 혹시라도 “꿈이 뭔가요?”라고 물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기세다. 그뿐만 아니라 후렴구를 붙이는 이도 있다. “꿈이 밥 먹여줍니까?”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런 얘기가 이어진다. “꿈은 있었지…” 혹은 “꿈꿀 여유도 없이 살았지…”라고. 도대체 꿈이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중년에게는 과거형으로 갇히거나 여유가 없으면 꾸지도 못하는 것이 됐을까.



한 포털사이트에서 ‘꿈’이란 단어를 검색하자 책 제목에 적용된 것은 5만 개가 넘고, 카페는 340만 개에 이르며, 웹페이지는 약 3000만 개나 나타났다. 많은 이들이 꿈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꿈을 가져야 성공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선 큰 꿈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왜 우리는 모두 큰 꿈 혹은 역전 드라마 같은 꿈 이야기에 취하는 걸까. ‘공장 직공에서 하버드 박사가 된’ 꿈 이야기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꿈의 모형이 된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적인 목표점을 꿈이라고 불렀다. 대통령, 장관, 판사, 혹은 억대 연봉자 등등. 그렇다면 목표했던 장관이 되면 꿈을 이룬 걸까? 그러면 그 다음은?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어야 할까? 대통령이 된 다음은? 이러한 목표는 꿈이 아니다. 꿈이란 정체성에 더 가깝다.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 같은 것이다.



내 안에 깃들어 사라지지 않는, 변하지 않는 느낌이다. 꿈이 의사인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들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따뜻함과 배려가 자신의 정체성으로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인 것이다. 그런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러한 따뜻함이 자신의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느낌으로 늘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느낌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은 스스로의 경험과 자기관찰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다.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은 어떤 때에 오는지, 경험을 통한 자기관찰을 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서 지난 궤적을 돌아보면 스스로 어떤 것에 내가 반응했는지, 가슴 뛰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이 바로 내게서 사라지지 않는 그것, 꿈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꿈은 마치 밤바다의 등대와 같아서 내가 갈 곳을 비춰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기로에 섰거나 선택을 해야 할 때에도 망설임이 없는 것이다. 기준이 돼주기 때문이다.



삶은 진행형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바라볼 때에도 그가 움켜쥐고 있는 것이나, 서 있는 장소가 아니라 그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지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중년들이여! 꿈이 없다고 하지 마라. 내 속에서 나를 지키고 있는, 나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그 힘, 그것이 당신의 꿈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200개 항목으로 구성된 ‘고위공직자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를 봤다. 질문지를 받은 예비후보자가 더러는 제출을 포기했다고 할 만큼 기막히게 꼼꼼한 문항들이다. 그런데 왜 나무 표피와 잎사귀 수, 그리고 수액의 양은 체크하는데 나무 전체의 건강한 기운을 체크하는 것은 안 보였을까? 그들을 지배하는 정체성, 꿈을 묻는 주관식 항목이 없어서였을까? 걱정이 더 되면 임명된 사람들에게 나귀를 붙여주면 된다. 길을 잘못 들 때마다 방울소리를 내주라고.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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