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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제빵왕 김탁구’ 빛낸 카리스마 연기 전인화

중앙일보 2010.09.18 00:11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영부인 고 육영수 여사(MBC ‘제4공화국’)와 악녀 장희빈(MBC ‘조선왕조오백년-인현왕후’)을 동시에 연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한민국 여배우, 전인화(45). 그녀는 시청률 50%에 가깝게 화제몰이를 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다시 서슬 퍼런 카리스마를 보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폭주한 ‘제2의 미실’ 서인숙을 만나러 간 날, 출연자 분장실엔 김밥과 만두로 점심을 때우는 연기자 전인화가 앉아 있었다.


“아유, 사람 사는 거 매한가지예요. 한 남자랑 20년 사는 거 안 지겹겠어요?”

강혜란 기자



‘제빵왕 김탁구’의 마지막 회가 예정된 16일. 스페셜 토크쇼에 출연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 나온 길이었다. 분장실 화장대에 형형색색의 목걸이·팔찌가 보석상 진열대처럼 널려 있다. 분장을 돕는 스타일리스트가 “오늘 착용할 팔찌만 4000만원짜리”라고 귀띔했다. ‘4억 명품녀’가 따로 없는 격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성그룹 안주인 서인숙의 치장일 뿐, 자연인 전인화와 거리가 멀다. 옅은 겨자색 니트에 흰색 면바지, 조리 샌들 차림으로 나타나 녹화 의상을 점검했다. 종영 소감을 물으니 “애들이 고3, 고2라 이제 엄마 노릇 좀 해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 결말, 그게 서인숙



● 착한 사람이 끝내 이기는 결말 속에 혼자 남겨진 장면, 어땠어요.



“그게 서인숙이죠. 마지막에 돌변했으면 그전까지 성질 못 됐던 거에 불과했겠지만, 이 여자는 영혼이 닫힌 가운데 끝까지 자존심을 지킨 거지. 29부에 나온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d rien)’ 그 노래처럼. 아유, 탁구(윤시윤) 같은 ‘남자 캔디’만 있으면 드라마가 무슨 재미겠어요.”



● 악역 카리스마로 받쳐주니까 탁구 같은 인물이 더 잘 살아난 것 같아요.



“중견들이 힘 있게 끌어줘야 신인들이 편하게 놀 수 있거든요. 시윤이·영아(양미순 역)·유진(신유경 역)이 다 예쁘고 기특해. 특히 내 아들 마준이(주원), 애가 자세도 됐고 발전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난 서인숙이 공감이 가. 1960~70년대 상류층에서 시집살이를 하면서 순종하지 않고 파워풀하게 산 게 매력적이기도 하고, 평생을 외롭게 산 게 안 됐다 싶기도 해요.”



● 단아한 이미지인데 연기는 독하게 하세요.



“나이 들수록 뭔가 터져 나오고 휘두르고 그런 데 끌리는 것 같아. ‘여인천하’ 문정왕후 때 의외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서, 나한테도 이런 색깔 나오는구나 알게 됐어요. 이번에도 평소 내가 못 해보는 행동들을 마구 하니까 (웃음) 이제야 연기가 일이 아니라 재미있게 느껴져요.”



일상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고3 엄마



극 초반 70년대 ‘재키룩’으로 우아한 복고풍을 뽐냈던 전인화는 시대 전개에 따라 과감한 스모키 화장과 고가의 스타일링으로 ‘워너비(wannabe) 미시’의 면모를 과시했다. 서인숙이 하고 나온 보석과 의상은 방영 때마다 매장 문의가 빗발쳤다. “워낙 몸매 관리가 잘 돼서 어떤 옷도 완벽하게 소화한다”는 게 스타일리스트의 평이다.



● 미모와 화려한 스타일로 화제를 모으셨죠.



“미모는 무슨(손사래). 젊었을 땐 다른 여배우들과 경쟁심도 있고 그랬는데, 정말로 난 지금이 제일 나은 것 같아(웃음). 예전엔 어긋난 거 못 참고 그랬는데 성격도 둥글둥글해지고. 눈·코·입 예쁜 게 뭐가 중요해요, 다 한때지. 2%가 부족해도 끌리는 게 있는 사람이 좋죠.”



● 동년배 여성들이 많이 부러워할 것 같아요.



“예쁜 옷, 좋은 거 하니까 여자로선 좋죠. 그러나 연기가 끝나면 바로 자신으로 돌아가요. 그러니까 25년을 버틸 수 있었죠(※1985년 데뷔). 다만 여배우로서 관리는 해요. 1년 전부터 아무리 바빠도 매일 두세 시간 규칙적으로 운동(피트니스)해요.”



● 가정적으로도 단란해 보이고요(※89년 9세 연상의 배우 유동근과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아유, 사람 사는 거 문풍지에 구멍 뚫어 보면 매한가지예요. 한 남자랑 20년 넘게 사는 거, 안 지겹겠어요. 그 남자도 지겨울 텐데. 그래도 소중한 내 가족에 늘 머물러 있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그게 중요하죠.”



배우로서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겠다



1년에 한 작품 정도로 과작(寡作)인 편이다. “일하는 동안은 가족이 나를 이해해주고, 그게 끝나면 바로 아이들에게 충실하다”고 말했다. 취미로 하는 도자기 공예가 수준급으로 알려져 있다. “촬영하는 동안 짬이 안 났는데, 다시 흙 빚을 생각에 들뜬다”고 했다.



● 다음 작품은 어떤 걸 생각하세요.



“화려하고 예쁜 역할만 하면 연기자로서 내 살을 깎아 먹는 거죠.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어요(옆에서 관계자가 ‘시트콤도 검토 중’이라고 귀띔했다). 젊을 땐 여배우가 무조건 벗어야 해서 영화는 안 했는데, 요즘은 다양한 역할이 많더라고요.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디테일하고 깊이 있는 걸 해야죠.”



● 모범적인 이미지가 부담되진 않으세요?



“모범적인 게 아니라 지루한 거죠. 화려한 연예인? 궁 속에 있는 공주도 외로운 법인데 궁 밖의 거지가 나아요. 팔봉 선생님 대사 있잖아요. ‘인생은 겪는 것이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인간은 들판에 피어난 꽃과 같은 것이다’. 저, 평범하고 별거 없어요. 그냥 애들한테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엄마이고 싶어요.”




j 칵테일 >> “예전에 악역 할 땐 길가다 욕도 들었어요”



데뷔 때부터 청초미로 주목받은 그녀지만, 세간에 연기자로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건 2001년 SBS ‘여인천하’에서였다. 정난정 역할의 강수연을 후견하는 문정왕후 역이었다. 위엄과 독기를 품고 싸늘하게 내뱉는 “뭐라?”가 유행어가 됐을 정도다. “남편(유동근)이 ‘왕비니까 품위 있고 좋잖아’ 하고 권해서 덥석 맡았는데, 그전까지 색깔이랑 너무 달라서 몇 날, 며칠 잠을 못 잤다. 눈짓, 손짓, 하다 못해 콧구멍 움직임까지 염두에 두며 연기했다”고 돌아본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 1순위에 꼽는 역할이다. 두 번째가 ‘제빵왕 김탁구’의 서인숙, 세 번째가 88년 ‘조선왕조 오백년-인현왕후’의 장희빈이다. “당시만 해도 극중 인물과 배우를 분간 못해 길 가면 욕설 퍼붓는 이들이 있었다. 같은 악역인데도 서인숙으로 사랑을 받으니 시청자 눈높이가 달라진 걸 실감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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