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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Insight] 해외 패션쇼만 400회 이상‘한복 세계화’ 앞장서는 디자이너 이영희

중앙일보 2010.09.18 00:08 주말섹션 8면 지면보기
인정한다. 패션 담당 기자로서 한복 기사를 다루는 건 대부분 설이나 추석을 앞두고서다.


“프라다·아르마니도 한국 오면 내 한복 사갑니다”

한복 디자이너를 떠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한복은 멀리 있다. 한데 ‘한복장이’ 이영희(74)는 꿋꿋하다. 1993년 프랑스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서 ‘한국의 기모노’로 알려진 한복의 오명을 날려버린 이래, 지금껏 해외 패션쇼만 400번 넘게 열었다. 2004년엔 뉴욕 맨해튼에 한복을 전시하는 ‘이영희 뮤지엄’을 만들더니, 3년 뒤엔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한복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런 이씨가 최근 한국의 모시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나섰다. 지난 7월 파리에서 한산 모시를 주제로 생애 첫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행사도 열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메종 드 이영희’ 매장에서 만나 그 사연과 그녀의 한복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이번엔 ‘모시 전도사’



저고리 없이 치마만 입는 한복 드레스. ‘이영희’ 하면 떠오르는 트레이드 마크다. 말기수(가슴을 감싸는 천)에 수를 놓아 만든 디자인이다. 해외 패션계는 이를 두고 ‘바람의 옷’이란 별칭도 지어줬다. 간단하지만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콜럼버스의 달걀’이었다. 그리고 16년이 흘렀다. 그는 모시로 또 한번 콜럼버스가 되려는 것일까.







● 이번엔 ‘모시 전도사’네요.



“모시는 한복을 짓는 내내 가장 매혹적인 소재였어요. 입다 보면 가늘고 해지는 것 같은데 풀 한 번 매겨놓으면 다시 새것이 되는 게 신기했죠. 더구나 우리나라 모시는 세계 어디에서도 만들 수 없는 것이죠. 예전부터 한복만이 아니라 전통 소재도 꼭 세계에 알려야겠다 싶었는데 기회가 왔어요. 충남 서천군에서 ‘한산 모시 세계화’ 사업을 시작한다는 거예요. 모시로 디자인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지난해 4월 연락이 왔어요. 앙드레 김·이상봉 디자이너도 물망에 올랐는데 그래도 한복 하면 이영희라니까 만장일치로 나를 뽑았다네요.”



● 프레타 포르테가 아닌 오트 쿠튀르로 나선 이유는요.



“모시를 세계화하려면 파리 오트 쿠튀르에 나가야 한다고 고집했어요. 고급 소재에 맞게 맞춤복이 어울렸기 때문이죠. 송·죽·매·란(松·竹·梅·蘭)을 테마로 36벌의 옷을 만들었어요. 쇼 준비에만 1년이 넘게 걸렸어요. 일일이 소재를 염색하고 수를 놓고 붓으로 그림을 그리니 정신이 없었죠. 그래도 반응이 좋아 내년에도 또 나갈 생각이에요.”



● 모시는 여름 소재라 한계가 있지 않나요.



“모르고 하는 소리죠. 모시를 겨울에 목에 둘러보세요. 진짜 따스해요. 그리고 모시를 빳빳하게만 보지 마세요. 실크를 섞어 짜거나, 홍두깨로 천을 두들기는 작업을 거치면 충분히 부드러워져요. 여기에 천연 염색까지 하면 캐시미어 못잖은 고급 원단이 될 수 있어요.”



명품 디자이너부터 영부인까지 고객



지난 5월, 이씨의 한복은 ‘고소영 한복’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배우 장동건·고소영 부부가 혼수용 한복을 이씨에게서 맞춰 갔기 때문이다. 이씨는 “고씨와는 아무 친분도 없는데 그냥 찾아왔더라”며 “당사자들에겐 한복을 선물로 주고, 친척들 옷은 돈 다 받고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유행하는 ‘스타 마케팅’과는 선을 긋는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 조르조 아르마니도 한국에 왔을 땐 직접 매장에 와 내 한복을 사간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이씨의 한복을 입은 최고 명사는 역시 퍼스트 레이디들이다. 역대 영부인들이 그의 옷을 입었다. 이순자 여사의 한복은 절반가량, 김옥숙 여사의 한복은 거의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 입은 김윤옥 여사의 연두색 두루마기와 황금색 치마 역시 이씨의 작품이다.



● 역대 영부인들과 인연이 깊네요.



“김옥숙 여사는 경북여고 선배고, 김윤옥 여사와는 이화여대 대학원 동창이에요. 이순자 여사는 남편들이 군인 출신이라 영부인이 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고요. 손명순·이희호 여사는 청와대에서 처음 만났어요. 행사를 앞두고 연락이 오면 그분들이 매장에 오거나 청와대에 들어가 치수를 재죠.”



● 퇴임 뒤에도 계속 연락을 하나요.



“이순자 여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 팔순 잔치 때 옷을 해가셨어요. 김옥숙 여사는 요샌 노태우 전 대통령이 편찮으셔서 통 못 뵙네요. 예전엔 외국 나갈 일이 있다거나 하면 꼭 맞춰가셨죠. 예단 준비하는 친척들도 곧잘 소개해주셨어요.”



● 한복이 잘 어울리는 영부인은 누구였나요.



“김옥숙 여사처럼 한복이 그렇게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얼굴도 갸름한 데다 목이 길고 어깨가 좁아 딱이니까. 40대 영부인이란 점도 좋은 조건이었죠. 은은한 빛깔로 아래위를 통일해 입으면 기품이 느껴졌어요. 정치적으로는 말이 많지만, 어쨌든 제 옷을 빛내주는 분이었어요.”



● 다른 분들은요.



“이순자 여사는 화려한 디자인을 좋아했고, 손명순 여사는 채도를 낮춘 옷감에 원색의 자수 무늬를 즐겨 입으셨죠.”



여기까지 품평을 끝내려다 이씨는 작정한 듯 말을 이었다. “이희호·권양숙 여사가 한복보다 양장을 즐겨 입었던 게 한복장이로는 좀 아쉬웠어요. 아무래도 외국 나갈 때나 중요한 자리에서 영부인이 멋스러운 한복을 입으면 인상이 깊지 않겠어요.” 내친 김에 이 말은 꼭 써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했다. “김윤옥 여사가 한복을 더 자주 입으셨으면 싶어요. 솔직히 제가 보기엔 양장보다 한복이 더 잘 어울리는 분이에요.”



"한복도 샤넬 같은 명품 될 수 있다”



“루이뷔통 가방은 네 사람 중 한 명이 들고 다니고, 샤넬 제품은 세계에서 몇 초에 하나가 팔려 나간다. 나는 한복을 명품의 반열로 올리는 것이 꿈이다.” 이씨의 꿈은 ‘한복 세계화’ 그 이상이다. 한복으로 번 돈은 한복에 투자하겠다는 결심도 그래서다. 유럽과 한국에서 활동 중인 딸 이정우 디자이너가 이 길을 함께한다.



● 명품이 되겠다는 구체적인 전략이 뭔가요.



“80, 90%는 이미 여건이 갖춰져 있죠. 한복· 한식과 같은 우리 문화는 누군가 조금만 신경 써주면 금세 명품으로 발전할 수 있어요. 뻔한 말 같지만 정부 지원이 절실해요. 해외 패션쇼 지원처럼 일시적인 것도 좋지만 뉴욕·파리 등 패션 중심부에 매장이 필요하죠. 딱 3년 만 도와줬음 싶어요(이씨는 외환위기로 두 곳에 있던 매장을 철수했고 ‘이영희 뮤지엄’만 교민들의 도움을 받아 매달 2만 달러씩 내고 유지하는 중이다). 이영희는 다해서 봐줄 게 없다는 말이 제일 속상하죠.”



● 컨셉트는 있나요.



“너무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면 안 돼요. 동정·고름까지 단 한복을 외국인이 어떻게 입겠어요. 한복의 라인과 소재는 살리되 샤넬·프라다처럼 누구나 입고 싶어하는 옷이어야 하죠. 양단으로 조끼·재킷을 만들면 그게 한복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끼리도 한복이 일상생활에서 입기 힘든 것은 인정해야죠. 그렇다면 예복·파티복으로 거듭나게 하면 돼요.”



● 한복이 세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들도 많은데요.



“그들에게 되묻고 싶어요. 한복을 제대로 해본 적이나 있는지. 중국에서 가져다가 프린트 다 찍힌 원단으로 만드니 그렇게 느끼는 거죠. 직접 소재부터 공부하면 그런 소리 못해요. 특히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색깔 공부는 한복으로 하는 게 최고예요. 신발이든 가방이든 뭘 만들려고 할 때도 한복이 기본이 될 수 있죠. 전 당장 자동차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 한식 세계화에 비해 한복 세계화는 이슈가 덜 되죠.



“한식 세계화가 언론이나 정부에서 화두가 될 때마다 아쉬워요. 두 가지는 함께해야 시너지 효과를 얻는 건데…. 4년 전 미국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미국 기자 100여 명을 불러 한식을 맛보게 하는 행사가 있었어요. 문화원 측에 한복 패션쇼를 제안했죠. 먹고 끝나기보다 뭔가 볼거리를 보여주자는 생각에서죠. 파티가 익숙한 외국인들은 식사 뒤에 ‘쇼’가 나오자 재미있다는 반응이었어요. 어차피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라면 ‘먹고 입고’가 함께 가는 게 맞아요.”



● 요즘은 한국 패션을 세계에 알리려는 후배들이 많은데요.



“트렌드를 알아야 해요. 세계 패션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현재 명품 브랜드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시해야죠. 경제랑 똑같아요. 모시의 세계화도 세계 트렌드와 맞물려 있어요. 안 된 얘기지만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지 않나요. 세계적으로 얇고 안감이 없는 옷이 점점 많아지니 가능성이 있는 거예요.”



이씨는 한때 명품이 되겠다는 꿈 때문에 걱정도 많았다고 한다. ‘내가 죽어도 계속 이영희의 힘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해서다. 그때 해인사 정종 스님의 말이 현답이었다. “스님이 그러대요. 어차피 2·3세로 가면 옷은 변하기 마련이고 당신보다 더 잘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요. 건강이나 챙기라기에 요즘은 그냥 맘 편히 먹고 산답니다.”




이영희와 한복, 그 숨은 얘기들 "기모노 코레앙은 없다”



■ 첫 해외무대와 이방자 여사



1983년 6월 미국 워싱턴. 미국의 장관과 국회의원 부부들이 이영희씨의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섰다. 사진 속의 남자는 대감 갓과 도포로, 여자는 모시 한복으로 맵시를 뽐냈다. 난생처음 밟은 해외 무대. “한국 전통미를 맘껏 봬주리라 각오를 다졌죠.” 경탄하는 참석자의 모습에 이씨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때부터 꿈이 시작됐고 자라났다”고 했다.



그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한복 쇼는 사실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원래는 다른 디자이너가 쇼를 맡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최 측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울에서 이씨의 한복 쇼를 눈여겨봤던 인사가 다른 디자이너를 찾던 워싱턴 쪽에 귀띔을 해줬다. 절호의 기회였다. “50벌을 갖고 갔죠. 마침 만들어둔 옷이 있었어요.” 두 달 전 대한제국의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사는 창덕궁 낙선재에서 열린 자선 쇼에서 썼던 옷이었다. 1년 전 신라호텔 무대에 올렸던 한복도 요긴하게 보탰다. 대한제국 황가(皇家)와의 인연이 그에게 워싱턴행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바람의 옷’ 돌풍 … 사비 들여 한복쇼



“한복은 외국에서 ‘기모노 코레앙’으로 불렸죠.” 기노모의 짝퉁쯤으로 취급받았다는 소리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씨는 너무 화나고 기 막혔다. 1년간 연구에 매달렸다. 한복이 먼저라는 걸, 더 멋지다는 걸 보여주는 전시회를 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94년 프랑스 파리의 오랑제리 전시장에서 ‘바람의 옷’이란 타이틀의 한복을 내놨다. 저고리를 벗은 드레스풍의 새로운 한복이었다. 민소매로 팔이 보이고, 가슴이 보일 듯 말 듯 하며, 허리선이 적절히 들어간, 노방(실크)으로 만든 옷. 하늘하늘 날리는 치마는 바람 그 자체였다. 이씨는 행사 경비 3억5000만원에서 2억5000만원을 사비(私費)로 충당하고, 나머지만 협찬을 받을 정도로 애착을 쏟았다. “한복으로 번 돈은 한복에 쓴다는 생각이었죠. 안 되면 집이라도 팔지 하는 생각으로 물불을 안 가릴 때였고요.”



■ 판초에 화낸 부시 대통령, 한복은 챙겨 귀국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이씨에게 한복을 주문했다. 정상들이 입을 옷이었다. “뭘 입힐까 정말 걱정됐어요.” 그의 선택은 두루마기였다. 회담장인 누리마루를 찾아가 어떤 색이 좋을지 연구했다. “멋진 한국의 자연에선 자연색을 입어야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하늘·바다의 색인 쪽빛, 황토 흙의 황금빛, 기와의 회색, 소나무의 녹색 등 7가지 색을 정했다.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걱정됐다. “멋쟁이로 들은 데다, 언젠가 외국 방문 때 판초를 이상하게 입었다가 화를 냈다고 하더라고요.” 치수도 안 보내와 애가 탔는데 막판에야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그러나 모든 게 기우(杞憂)였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 중 제일 먼저 와서 자기 옷을 점검했어요.” 행사 뒤에 옷을 부칠 때도 부시는 직접 들고 가겠다고 했다. “각국 정상들이 제 한복 모델이 돼 줬으니 그 자부심이야 하늘을 찌를 것 같았죠.”



■ 700만원짜리 모시의 꿈



지난 7월 6일 이씨는 파리에서 오트 쿠튀르(맞춤복) 패션쇼를 열었다. 사진의 연분홍빛 드레스는 한산 모시로 만들었다. 여인의 나들이를 컨셉트로 잡았다. 낙화 직전의 매화, 사군자를 박아 넣었다. 머리엔 기녀들이 많이 썼던 전모를 씌웠다. 사실 쇼를 관통하는 주제가 한산 모시였다.



그 이유가 있다. “충청도의 한산 모시 맥이 끊겨 간다고 해요. 노인들이 돌아가시면 옷감 짤 사람이 없답니다.” 그는 원사(原絲)와 금사(金絲)를 섞어 짜서 모시 한 필에 700만원 나가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김준술 기자




j 칵테일 >> 한낮에 번쩍대는 다이아몬드는 좀 …



이씨의 인터뷰는 본래 ‘파워 스타일(15p)’로 예정됐다가 판을 키웠다. 그런데도 이씨는 애장품을 보여주고 싶다며 인터뷰 자리에 들고 나왔다. 공개한 액세서리들은 ‘빈티지’ 그 자체였다. 함 속에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반지가 24개 들어 있었다. 후배가 존경의 의미로 만들어 준 반지, 폴란드 여행에서 산 반지 등 각각의 사연이 함께했다. 하지만 그중 다이아몬드같이 값나가는 보석은 하나도 없었다. 자수정·은 등으로 만든 반지들뿐이었다. “한낮 햇빛 아래 번쩍거리는 보석을 걸치는 건 무식해 보여요. 조명이 어두운 이브닝 파티에나 어울리죠. 저도 파리 패션피플들에게 배운 거예요.” 이씨의 ‘파리지엔 감성’은 이뿐이 아니었다. 반지들의 알은 하나같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크고 두꺼웠다. “파리 예술가들이 큼지막한 반지 하나만 포인트로 끼는 게 보기 좋더라고요. 멋은 내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일하는 사람이다’는 걸 보여주는 의미죠.” 평소 무늬 없는 검정·베이지·갈색 등의 옷을 즐겨 입는 이씨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괜찮은 스타일링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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