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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인천 60년 만에 다시 본 승리의 바다

중앙일보 2010.09.16 00:53 종합 8면 지면보기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라.”


인천상륙작전 재연 현장

1950년 9월 15일 당시 미 제1해병대대의 상륙작전을 지켜보고 있는 맥아더 장군 및 미군 지휘부(위쪽 사진)와 당시를 재연한 모습(아래 사진).
15일 오전 11시10분 인천 월미도 해안. 작전 개시 명령과 함께 백발이 성성한 한 노병이 통제단 단상에 올랐다. 60년 전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 등대를 탈환해 상륙작전의 신호탄을 올렸던 최규봉(87) 전 KLO부대장이다. 감개무량한 표정의 최씨가 버튼을 누르자 하얀색의 폭죽이 10여 초간 가을 하늘을 수놓았다.



1950년 9월 15일 새벽에 펼쳐졌던 인천상륙작전이 그때 그 바다에서 대규모로 재연됐다. 한국·미국·호주 등 3개국의 해군 함정 12척과 항공기 16대가 참가한 가운데 200여 명의 한·미 해병대원들이 34척의 상륙용 주정을 타고 월미도 해안으로 돌진했다.



상륙돌격에 앞서 해안 정찰 및 수중 장애물 제거를 위한 수색부대의 작전이 시작됐다. 헬기 2대에서 바다로 뛰어든 대원들은 고무보트를 타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월미도 해안으로 접근했다. 이어 이순신함과 전남함, 호주 와라문가함에서 5초 간격으로 함포 1문당 24발씩 쏘아대자 해안 곳곳에서 10여m 높이의 물기둥이 솟았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상륙돌격이 시작됐다. 동양 최대의 강습 상륙함인 독도함, 미해군의 상륙함인 덴버함 등 9척의 함정에서 고속상륙정·상륙장갑차·상륙주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독도함에서는 해병 1사단 소속 상륙장갑차 16대가, 덴버함에서는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해병대 소속 상륙장갑차 8대가 빠져나와 3열 횡대를 지으며 해안으로 돌진했다. 동시에 하늘에서는 UH-60·CH-46 등의 한·미군 헬기 5대가 파상적인 공중돌격을 감행했다.



15일 오전 인천시 월미도 앞 해상에서 인천상륙작전 60주년을 기념하는 재연 행사가 열렸다. 한·미 해병대원들이 월미도에 상륙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마침내 월미도 방파제 밑 해안에 도착한 한·미 해병들은 밧줄 사다리를 타고 “와” 하는 돌격 함성과 함께 육지로 올라왔다.



한·미 해병대를 대표하는 2명의 해병대원이 맥아더 장군으로 분장한 미 해병대 장병 앞에서 상륙목표 확보 신고를 했다. “목표를 성공적으로 확보하였습니다. 계속해 서울로 진격하겠습니다.” 순간 비둘기 모양의 풍선 2000개가 월미도 하늘로 날아오르고 60년 전 한국 해병대원들이 불렀던 ‘나가자 해병대’가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던 강태룡(82)씨는 “ 월미산 전체가 피로 물들다시피 했던 그날의 상황과 전우들이 생각난다”며 감개무량해했다.



상륙작전 재연에 앞서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송영길 인천시장, 참전국 해군·해병대사령관 및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등은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과 팔미도 해상에 헌화를 했다.



60년 전 한국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뒤바꿔 놓은 인천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노르망디·북아프리카·일본 이오시마 상륙작전과 함께 세계 전사상 4대 상륙작전으로 꼽힌다. 당시 작전에는 8개국 261척의 함정과 7만5000여 명의 한·미 해병대 및 유엔군이 참전해 북한군 1만4000여 명을 사살하고 7000여 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국방부와 인천시는 앞으로 매년 재연 행사를 열어 프랑스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축제에 버금가는 국제 이벤트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인천=정기환·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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