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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하기에 달렸다” … MB, 러시아서 보낸 ‘파격 메시지’

중앙일보 2010.09.11 01:50 종합 4면 지면보기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한 접근법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대치와 경색에서 관계 개선 쪽으로 방향을 트는 모습이다.


대북 정책 변화 오나

10일 공개된 국영 ‘러시아 24-TV’와의 인터뷰 발언이 뚜렷한 흔적이다. “북한이 천안함 사태에 대해 사죄하고”→“다시 정상적 관계로 가야 한다”는 남북 관계 정상화의 선후 관계는 여전했다. 파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제2개성공단 관련 발언에도 “북한이 협력 관계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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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체적으론 ‘북한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북 관계 정상화가 빨라질 수 있다’는 톤이었다. 이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남북 관계 정상화 시기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빨리 올 수도 있고, 어쩌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발언으로 진전됐다. 천안함 사건 이후 철저하게 막혀 있던 남북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 북한에 공을 넘긴 모양새다.



특히 “북한이 어느 날 붕괴돼 통일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에선 북한을 배려하는 뉘앙스가 묻어났고 “혹시 김정일 위원장 하고 만나게 될 때 옆에 같이 앉으면 김정은을 만날 수 있으니까…” 발언에선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열어 놓은 듯했다. 이 대통령이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의 연결 사업에 대해 “서로 이해가 맞기 때문에 아마 북한도 얼마 있지 않아 동의할 것으로 본다”고 희망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인터뷰는 이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기 전인 지난 7일 오전 청와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북한이 쌀 지원을 한국에 공식 요청했다는 사실이 공개됐고, 정부는 ‘긍정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이 대통령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 첫 월례 회동에서 “남북 관계는 건강한 관계가 돼야 한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으니 적절히 하려 한다. 적십자의 인도적 지원은 일보전진”이라고도 말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강력 대응을 천명한 5·24 담화 이후 3개월여 만에 나오는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 속에는 ‘남북 관계를 끝까지 경색으로 가져갈 수는 없고 천안함 사건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 청와대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이런 견해를 러시아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표출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청와대 관계자는 “천안함 사건 이후 동북아 정세가 ‘한국·미국·일본’ 대 ‘북한·중국·러시아’의 대립 구도로 전개되는 데 대해 정부가 부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러시아 매체를 통해 대북 메시지를 던진 건 이런 국제정치적 구도에 변화를 주겠다는 의지가 녹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이 대통령 스스로가 밝혔듯 천안함 사건을 묻어 두고 남북 관계 정상화를 모색할 수 없다는 생각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이 움직일 여지를 북한이 제공할 수 있느냐 여부가 꼬인 남북 관계를 풀 열쇠라는 의미다.



핵·미사일 실험과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천안함 사태, NNL(북방한계선) 이남 해안포 사격 등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대통령이 직접 개성공단의 필요성을 밝히고 제 2 개성공단의 조성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은 상당히 진전된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야로슬라블=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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