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칼럼]‘구원 투수’ 중국이 알아야 할 것은

중앙일보 2010.09.11 00:19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사실 이 사건은 21세기 초 몰아 닥친 ‘대침체(Great Recession)’의 지정학적 산물로 봐야 한다.



뉴스의 경제적 측면을 들여다보면 긍정적이다. 미국의 불량한 주택담보대출로 생긴 ‘금융 대란’이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같은 완전한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주요 이유는 중국의 대응 때문이었다.



유명한 대공황 분석가인 경제역사가 찰스 킨들버거는 “세계적 리더십의 실패에서 촉발된 것이 대공황”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영국은 19세기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막대한 전비(戰費) 때문에 채권국으로서의 지위가 심각하게 손상되고 말았다. 대신 미국이 세계 최대 채권자로 등극했지만 두 가지 약점을 갖고 있었다. 금융체계가 불안해 쉽게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었고, 정치 시스템도 미성숙해 대중영합주의와 국수주의로 흐를 소지가 컸다. 킨들버거는 “미국이 공황을 맞았을 때 시장을 더 개방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당시 미국은 ‘스무트 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만들어 빗장을 걸어 잠갔고, 다른 나라들도 연쇄적인 보복 조치로 맞섰다. 미국 금융회사들은 대출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물건 값 하락과 그에 따른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궁지에 몰린 빚쟁이들에게 계속 돈을 빌려줘야 마땅했다. 그러나 미국 은행들은 대출에 몸을 사렸고, 신용시장은 작동이 멈출 지경에 이르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킨들버거는 ‘마셜 플랜’을 입안하면서 이러한 교훈을 반영했다. 그는 미국의 상품시장과 돈 흐름이 다른 나라 경제를 떠받칠 수 있게 개방돼야 한다고 구상했다.



그러나 21세기의 모습은 어땠는가. 이런 교훈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돌아갔다. 만약 각국 지도자들이 킨들버거의 수업을 들었더라면 우등생은 중국 지도자들이었을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 국면에서 중국 경제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을 지속했다. 대대적인 부양책 덕이었다. 누군가 케인스 경제학의 경기부양 이론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궁금하다면 중국이 2008~2009년에 퍼부은 4조 위안의 진작책을 보면 된다.



2008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망한 뒤 대공황이 가까웠던 것처럼 느껴졌을 때 중국과 다른 신흥개발국들은 수출국의 회복을 돕는 역할을 했다. 놀라운 힘을 보여준 독일 경제를 보자. 최근 15년간 최고의 활력을 나타내는 이유는 중국과 신흥시장이 독일의 기계제품·럭셔리 소비재 등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들은 지금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중국은 킨들버거가 깨친 교훈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지난봄 유럽에선 정부가 떠안은 과다한 빚 때문에 50년간 조심스레 구축한 정치 통합 체제가 파괴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흔들리던 유로화는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지닌 국가들이 문제 많은 달러와 엔화의 대안 상품으로 간주하면서 회생의 전기를 맞게 됐다. 중국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의 국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위기의 진원지였던 그리스에서 저평가된 부동산 자산을 사들이기도 했다.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 중국의 은혜를 입은 것은 유럽뿐만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가 새롭게 탄력을 받는 것도 중국의 천연자원 수요 때문이다.



물론 킨들버거의 주장에도 약점은 있다. 킨들버거는 세상이 자신을 구해준 국가에 결코 감사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 지금 대만과 베트남 같은 나라는 그들이 중국의 첫번째 제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 역사를 볼 때 헤게모니를 쥔 나라는 다른 나라들한테서 사랑받은 예가 없다. 미국은 불완전하지만 다국적 기구를 통해 다른 국가들과 신뢰를 쌓았다. 나치의 폐해를 겪은 유럽도 무력 외교보다는 대화를 통해 인접국과 화해를 구축했다. 이런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아시아의 21세기는 ‘힘의 정치’가 화두일 것 같다. 지금 중국의 지도자들 앞에 놓인 진정한 도전은 국경 너머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일관된 시각을 보여주는 일이다.



ⓒProject Syndicate



해럴드 제임스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사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