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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12명의 사상가, 사람과 부딪혀 불꽃을 일으키다

중앙일보 2010.09.11 00:08 종합 23면 지면보기
 씽커스(Thinkers)

헤닝 리터 지음

이지혜 옮김

21세기북스

358쪽, 1만5000원




“어떤 역사서도 읽지 마라. 전기만을 읽으라. 그것만이 공허한 이론 없는 삶이다.” 이 책 뒤쪽에 인용된 19세기 영국의 수상 벤자민 디스레일리의 이 말이야말로 신간의 성격을 잘 압축해준다. 이 책에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등 20세기 사상가 12명의 삶을 수록했는데, 생애와 업적 등을 단순 요약한 인터넷 식 정보 대신에 인문적 향기가 풍부하게 살아있다. 놀랍게도 이 글의 출처는 모두 신문이다.



독일의 권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각 꼭지가 ‘미니 전기’로 유감 없는 이 글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인물평론’. 국내 신문에는 없지만, 인물평론은 특정 지식인에 대한 평가와 예찬의 글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유행했으며, 현재는 문학 장르의 하나라는데, 호흡도 생각 이상으로 길다.



흥미로운 건 사람과 사람, 시대와 사람이 부딪치면서 나오는 강렬한 스파크다. 영국의 자유주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의 경우 본디 책상물림. 상아탑에서 벗어난 계기는 2차 대전 전 영국 정보부에서 근무하면서다. 미국 여론을 체크해 매주 보고하는 업무를 맡으며 현실에 눈 떴지만 나중에 수상 처칠이 풍기는 비범함에 완전 매료됐다.



“처칠이 대영제국의 위대한 과거와 몽상적 미래 목표를 강조하며 영국의 집단 에너지를 하나로 끌어모으는”(321쪽) 걸 보고 자신의 자유주의 사상을 키워갔지만, 훗날 처칠에 관한 인물연구도 했다.



세계적 작가이자 정치가였던 앙드레 말로(오른쪽)는 본래 좌파였으나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드골(왼쪽)을 만나 의기투합해 우파 드골주의자로 전향한 후 문화부 장관까지 지냈다. [중앙포토]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도 마찬가지다. 본래 그는 좌파였다. 그러다가 드골을 만나 우파 드골주의자로 전향했다. 처음 드골을 만나 “나는 프랑스와 결혼했다”라며 자신있게 애국심을 드러냈는데, 이후 오랜 우정을 쌓는 계기였음은 물론이다. 드골은 훗날 말로에게 문화부 장관 자리를 주며 서로를 키워줬다. 문제는 말로의 고약한 습관. 자신의 삶을 과장해 스스로 신화 만들기에 열중했다. 때문에 저자는 “말로에 관한 새로운 전기가 하나 탄생할 때마다 그 주인공은 조금씩 키가 작아진다”고 따끔한 지적을 한다.



학자 비트겐슈타인의 경우 독재자 히틀러와의 관계가 흥미롭다. 동갑(1903년생)인 둘은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는 실업학교 동기생. 단 같은 반은 아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성적은 너무 좋고, 히틀러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훗날 독일에 광기가 번지자 비트겐슈타인은 쫓기듯 영국 시민권을 얻어야 했으니 둘은 악연에 속할까? 이들 외에 책에 등장하는 사상가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뿐인가? 더 중요한 인물은 정작 빠져있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으나, 그건 저자의 고유한 영역으로 접어줘야 할 듯 싶다. 저자는 이들을 미지를 탐험한 진정한 정복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1943년생. 지난 85년 이후 2008년까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에서 근무했다. 모든 글에 조금은 보수주의적 색채가 묻어나는데, 큰 흠은 아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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