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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머라이어 캐리, 제니퍼 로페즈 … “의상 부탁해요, 소연”

중앙일보 2010.09.11 00:08 주말섹션 2면 지면보기
LA 인근에 위치한 어느 TV 스튜디오. 한쪽에선 댄서들이 서성이고 또 다른 쪽에선 음악소리가 지나가는 이들의 귀를 울린다. 그 한구석을 가득 채운 옷걸이들과 그 위에 정신없이 걸려 있는 의상들을 헤치고 그녀, 안소연이 나온다. 이제 고작 스물여덟의 나이. 한참을 어려 보이는 외모. 틈만 나면 ‘헤헤’거리며 웃는 모습. 세 살 때 미국에 왔는데도 곧잘 구사하는 한국어. 까무잡잡해 건강해 보이는 피부에 척하니 턱을 괴고 조잘대며 말하는 모습이 후하게 쳐야 대학 초년생인 그녀는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는 ‘패션 천재(Fashion Genius)’로 불리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다 까다롭고 신경질적일 줄 알았다”고 하자 “다 그래요. 근데 전 안 그래요. 모두들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알고 있거든요. 전 그냥 좋은 사람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에미상 을 2년 연속 석권한 이 귀여운 여인 안소연은, 할리우드 패션의 미래다.


‘유캔댄스’ ‘아메리칸 아이돌’ 패션 전담
에미상 2연패에 빛나는 한인 디자이너

글=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사진=김상진 기자



안소연은 할리우드의 패션을 주도해 나가는 여인이다. 미국 TV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Television Arts & Science)가 보증했다. 그녀에게 올해까지 2년 연속 TV계의 오스카(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에미상을 수여한 것이다. 그녀가 수상한 분야는 ‘최우수 버라이어티/뮤직 프로그램 의상상’. ATAS는 매년 TV를 대표하는 에미상을 주최하는 단체다. 영화계로 치자면 안소연은 아카데미 의상상을 2년 연속 수상한 셈이다.



“좋아요. 오래도록 이 일만 해오셨던 분들이 ‘상 받을 만하다’고 인정해주신 거잖아요. 제 노력은 물론 함께 일해준 우리 팀 전체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해요. 요새 들어 TV쇼에서 저희만큼 창의적 의상 작업을 하는 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엄청나게 빠른 성장이다. 일러야 30대 후반, 40대 초반은 돼야 이 정도 자리에 오르는데, 그녀는 20대에 이만큼이나 왔다.



요새 업계에선 안소연의 이름 앞에 ‘TV가 가장 사랑하는’(TV’s favorite)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그럴 만하다. 그녀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폭스TV의 두 리얼리티쇼 ‘유캔댄스’(So You Think You Can Dance)와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의 의상 디자이너이자 스타일리스트다. ‘유캔댄스’ 시즌 4~7,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8, 9의 참가자 모두의 의상은 그녀가 만들거나 코디했다. 제이 레노의 ‘투나잇 쇼’(Tonight Show) 뮤지션들의 스타일링도 담당하고 있다.



리얼리티쇼는 그녀의 특기 중 특기다. 패션 센스는 물론 참가자들의 특징과 그들의 공연 스타일을 빠르게 파악하는 감각, 순발력, 카리스마를 두루 지녀야 하는 분야에서 안소연은 더욱 빛난다.



지난달 21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62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버라이어티/뮤직 프로그램 의상상’을 수상한 안소연. [AP]
그에게 에미상을 두 번 연속 안겨준 것도 최고 인기의 리얼리티쇼 ‘유캔 댄스’다. 전국의 무명 댄서들이 최고의 춤꾼 자리를 놓고 치열한 춤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힙합, 재즈, 컨템퍼러리, 볼리우드 스타일까지 온갖 장르가 나와요. 안무가들과 춤의 컨셉트, 스토리, 댄서들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 춤, 이 댄서엔 이런 게 어울리겠다’하고 옷을 만들어요. 댄서들이 춤을 추는 순간에야 비로소 살아나는 듯한 의상을 만들려고 해요. 춤과 의상은 공생 관계예요. 의상은 댄서들의 춤에 생명력을 주고, 그 댄서들의 춤 역시 제 옷에 생명력을 주니까요.”



날고 긴다는 댄서들이 매주 10여 명씩 출연해 춤 대결을 펼치는 만큼 돌발상황이 많다. 이번 시즌부터는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어 긴장이 더하다.



“머리 뒤로 다리를 올리는 안무처럼 별 기상천외한 동작이 다 있잖아요. 게다가 춤을 계속 추다 보면 근육이 점점 커져 옷이 뜯어지기도 한답니다. 방송사고가 날까 봐 항상 조마조마해요. 한번은 여자 댄서 어깨끈이 끊어져 놀라는 장면이 뉴스에까지 나왔어요. 혹시 몰라 테이프를 있는 대로 붙여 고정시켜 놓았기에 망정이지, 댄서들은 테이프 붙이기 싫다고 항상 투정을 하지만 어림도 없죠.”



수퍼스타를 꿈꾸는 재능 있는 가수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미국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 중인 ‘아메리칸 아이돌’은 그녀에게 ‘변신시키는 재미’를 준다.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소녀를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시키기도 하고, 자신감 넘치는 개성 강한 이에겐 직접 만든 전위적 의상을 시도해 보기도 한다.



“정말 보람돼요. 평범하고 이름 없던 이들을 멋지게 변신시키는 거죠. 참가자들이 추구하는 음악 세계와 맞는 패션으로 그들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고, 그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다는 건 너무나 재미있고 창의적인 작업이에요.”



옷감 사다 바비인형 만든 꼬마



안소연이 어린 나이에 패션에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검소한 부모님’ 덕이었다. 비싼 돈 주고 바비인형의 옷을 살 바엔 직접 만들어 입히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8살 때였어요. 엄마 아빠가 정말 검소하셨어요. 절대 20달러짜리 인형 옷을 사주실 분들이 아니었죠. ‘차라리 네 옷을 사주마’ 하셨죠. 그래서 용돈 1달러를 받은 걸 모아 직접 천을 사다 옷을 만들었어요. 바느질을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바지나 양말을 깁던 할머니를 곁에서 보고 배웠던 같아요. 한국 사람들이 원래 손재주가 좋잖아요. 그냥 한 색깔 옷을 보면 다른 색깔 옷도 만들어 입히고 싶었고, ‘대충 이렇게 만들면 되겠네’ 하며 지어 입혔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척척 바느질을 해대는 꼬마 소연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셨다.



“엄마 아빠가 보시더니 ‘넌 진짜 좋은 의사가 되겠다. 수술 하나는 정말 잘하겠구나’ 하시는 거예요. 제 반응이오? ‘맙소사’였죠.”



그녀가 본격적으로 패션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건 16세 때였다. 그때 그녀는 살짝 진로 고민 중이었다. 한쪽은 패션, 다른 한쪽은 놀랍게도 스포츠였다.



“배구, 축구, 육상을 두루 했어요. 마침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장학금 줄 테니 배구 선수로 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 무렵 LA에 있는 오티스 미술대학(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도 장학금을 주겠다는 거예요. 이럴까 저럴까 하다 ‘아무래도 아트를 해야겠다’ 싶어 결정했죠, 뭐.”



부모님은 노발대발했다. 패션은 미래가 없다며 반대하셨다. 오죽하면 선생님에게 사정해 부모님을 설득해 달라고까지 했을까.



“학교 다니는 중에도 부모님께서는 계속 부동산 학교 가라, 영구 문신을 배워 봐라, 비달 사순 가서 헤어 스타일링을 배워 봐라 사정하셨어요. 부모님이 LA 한인타운에서 미용실을 오래 하셨거든요. 그 뒤를 잇기를 바라셨나 봐요. 그냥 ‘네, 네’ 하면서 다녔더니 나중엔 제가 뭘 하든 상관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지금이오? 누구보다 이 길을 간 저를 자랑스러워하시죠.”



또래의 누구보다 성공의 길을 걷고 있지만 가끔은 벽에 부닥친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한다. 지치고 힘들 때, 혹은 아이디어가 고갈됐을 때다. 그럴 때면 그녀는 평범한 20대 여성으로 돌아간다. 여행을 가거나 그조차도 여유가 없으면 가까운 바닷가나 캠핑장을 향한다. 드라이브를 하고 잡지를 뒤적이고 웹서핑을 하고 음악도 듣는다. 그리고 그 일상에서 새로운 감각을 찾는다.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제 영감이 돼요. 세계 곳곳을 둘러보며 받았던 이국적 느낌, 어느 날 문득 눈에 들어온 나무의 색깔, 쉬면서 들은 인디록 음악의 감수성 같은 것을 모두 제 팔레트에 담아내는 거죠. 제겐 남자친구나 강아지들이랑 노는 시간조차 제 일을 위한 아이디어와 감각의 원천이 되는 것 같아요.”



성공을 향한 그녀의 신념은 의외로 간단 명료했다. ‘트렌드 팔로어(유행을 따라가는 사람)’가 아닌 ‘트렌드 세터(유행을 창조하는 사람)’를 만든다는 것이다. “기존의 패션 공식을 해체하는 게 전 가장 즐거워요. 여기에 다양한 ‘에지’를 더하고, 의상과 캐릭터에 재미난 변화를 주는 걸 즐겨요. 기존의 통념을 버리려는 걸 많은 분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고정관념에 덜 물든 어린 나이도 저에겐 유리했어요. 패션계의 ‘넥스트 제너레이션’이라 여기고 새로운 눈과 감각을 높이 쳐주신 것 같아요.”



레이디 가가와 함께 일하는 게 꿈



요즘 ‘유캔댄스’팀이 프로그램의 인기를 업고 아예 전국투어까지 나서 그녀의 일은 급격히 많아졌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마사지를 받아야 할 만큼 힘든 일정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단다. 모든 일이 하나같이 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도 당차다. 브랜드 설립도 준비 중이다. 몇 년 후엔 대중적인 패션과 함께 고객 주문 디자인만 하는 부티크도 운영하고자 한다. 가장 튀는 아티스트, 독특한 패션과 퍼포먼스로 유명한 레이디 가가와도 꼭 한번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원래 특이한 뮤지션들을 좋아하거든요. 레이디 가가와 함께라면 디자이너로서 제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남들은 저보고 이른 나이에 이미 많은 걸 이뤘다고 하지만 전 더 할 일이 많아요. 정말 최선을 다해야죠. 어느 날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느냐’고 물어봤을 때, 망설임 없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상대하기 힘든 유명 스타?



제가 보기엔 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안소연은 유명인사들의 스타일도 책임져 왔다. 머라이어 캐리, 제니퍼 로페즈, 에이브릴 라빈, 핑크 등이 그녀를 통해 변신을 거듭했다. 소연씨의 ‘착한 성격’은 이들과 함께 일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대부분의 유명인사가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이 있어요. 이 때문에 제 관점이 아닌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 왜 이 스타일을 시도해야 하는지, 왜 이 옷이 멋져 보이는지를 설명해주죠.” 상대하기 힘든 유명인사는 없었다. 이 명랑한 아가씨 눈엔 모두가 좋은 사람이었단다.



“맨 처음 맡았던 유명인이 머라이어 캐리였어요. 음악채널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을 위한 스타일링이었죠. 피팅하는 날 털 장식이 가득한 슬리퍼에 시스루 가운 차림으로 나타나 우아한 몸짓을 해대는 거예요. 취향도 어찌나 독특한지, 엄청 짧고 작은 옷만 골라 입더라고요. 그 엉뚱함에 웃음을 참고 칭찬하며 진지하게 일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그래도 정말 친절하고 재미난 사람이었답니다.”



드센 이미지의 스타들도 마찬가지였다. “핑크는 아주 공격적이고 요구도 많은 편이지만 그게 또 매력이죠. 자기 스타일이 확실한 거니까요. 섹시 톰보이룩을 시도했었는데 아주 반응이 좋았어요. 에이브릴 라빈은 결혼을 앞두고 이미지 변신을 위해 절 찾았어요. 펑크록 키드에서 여인으로 변신하고 싶던 때죠. 보기와 달리 아주 수줍음이 많아요.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인드가 정말 맘에 들었어요. 검은 드레스를 입어도 귀여운 부츠를 매치하고, 예쁜 스카프를 둘러도 해골 무늬를 그리는 식이었죠. 제니퍼 로페즈는 자신의 장단점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프로예요. 보기보다 작은 체구지만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몸매, 특히 엄청 가는 허리를 강조하려 노력했죠. 반짝이를 유난히 좋아해 스타킹 하나에도 일일이 반짝이를 달아줬답니다.”



요새 함께 일하고 있는 캐리 언더우드는 소연씨가 가장 좋아하는 유명인이다. 캐리 언더우드는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4의 우승자로 지난해 아카데미 컨트리 뮤직 어워드에서 최우수 여성보컬리스트상을 수상했다. “캐리는 모든 스타일리스트들의 꿈이에요. 제 의견과 감각을 정말 존중해 주거든요. ‘나는 뮤지션일 뿐이고 디자이너는 당신이니 모든 걸 믿고 따르겠다’고 하는데 뭘 더 바라겠어요. 거기다 이상적인 몸매, 아름다운 목소리, 뛰어난 재능까지… 모든 게 완벽하답니다.”






j칵테일 >> 살인적인 의상 제작 일정



안소연씨는 최고 인기를 얻고 있는 리얼리티쇼 ‘유캔 댄스’와 ‘아메리칸 아이돌’ 출연진의 의상을 책임지고 있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방송 일정에도 출연자의 개성에 잘 맞는 스타일을 완성해 내며 그 실력을입증해 왔다. 왼쪽 사진들은 안씨가 만든 무대 의상을 입고 열연하는 두 프로그램의 출연자들. [FOX TV 제공]
10주간 매주 10~12명의 댄서가 입을 40여 벌의 의상, 한 시즌에 총 400여 벌의 의상을 제작해야 하는 게 ‘유캔댄스’의 살인적 일정이다. 방송은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서부시간으로 오후 8시다. 수요일은 참가자들의 공연 내용이 방송되고, 목요일은 결과가 발표된다. 안소연씨의 업무 사이클은 매주 목요일에 시작된다. 다음 주 출연할 안무가와 댄서들이 정해지는 요일이기 때문이다. 이날 밤까지 각 참가자의 춤 장르와 특성을 파악해 컨셉트를 잡아야 한다. 금요일부터는 쇼핑에 돌입한다. 기성품을 사기도 하고 의상 제작에 필요한 천, 액세서리들을 구입해 제작한다. 토요일은 피팅이다. 댄서들에게 옷을 입혀보고 다양한 동작을 시켜본다. 안무가나 댄서가 의상에 아이디어를 보태고 싶다고 해도 이 시간이 지나면 끝이다. 이 다음부터는 무조건 ‘안소연 맘대로’다. 일요일이면 모든 의상의 최종본이 나와야 한다. 월요일에 최종 피팅을 하기 때문이다. 화요일엔 PD들이 의상 점검을 위해 출동한다. 드디어 수요일. 스튜디오에 ‘온 에어’ 불이 켜지고 ‘유캔댄스’의 막이 오른다. 소연씨의 역작인 40벌의 의상을 미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선보이는 순간이다.



>> 에미상이란



에미상(Emmy Award)은 영화의 오스카상, 음악의 그래미상, 뮤지컬의 토니상과 더불어 방송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저녁시간대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는 ‘프라임타임 에미상’과 낮 시간대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는 ‘데이타임 에미상’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에미상’이라고 하면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끈 TV시리즈를 드라마, 코미디/뮤지컬, 리얼리티쇼 등 분야로 나눠 수상하는 프라임타임 에미상을 뜻한다. 시상식은 각 방송사 프로그램의 새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인 8~9월에 열린다. 단 시상식의 TV 생중계 시간을 고려해 의상, 촬영, 음향 등 기술 부문에 관한 상은 ‘크리에이티브 아트 에미’(Creative Arts Emmy)로 다시 구분해 본 시상식보다 1주일여 앞서 발표·시상한다.



LA중앙일보 이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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