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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View 정명훈의 ‘음식 교향곡’] ‘정명훈 식당’ 메뉴 공개합니다

중앙일보 2010.09.11 00:06 주말섹션 14면 지면보기
레스토랑 이름은 ‘아름다운 식당’이 어떨까. 내가 만들 레스토랑 말이다. 손님 한 명이 와서 먹으면, 전 세계의 배고픈 아이들 중 한 명이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부하는 레스토랑도 좋겠다. 내 머릿속에는 레스토랑에 대한 아이디어가 꽤 있다. 물론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그 메뉴를 살짝 공개한다.



#전채



채소는 굉장히 많이 들어갈 거다. 가장 좋아하는 루콜라 샐러드는 쌉쌀하면서도 고소한 특유의 맛을 살려줘야 한다. 드레싱은 올리브유와 적포도주 식초, 발사믹 식초와 마늘·앤초비를 섞어 만든다. 간단하고 건강에도 나쁘지 않은 드레싱이다. 시금치나 아스파라거스 샐러드를 만들 수도 있다. 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 생각이다.



캐비아도 전채 로 내놓고 싶다. 나와 캐비아의 인연은 깊다. 1974년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나가 공동 2위를 했을 때다. 당시 소련 돈으로 4500루블을 받았다. 미국 달러로 3000달러 정도 되는 큰돈이었다. 문제는 이 상금을 외국으로 전혀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한 소련의 규정이었다. 뭐라도 사야 했다. 일단은 당시 살고 있던 뉴욕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샀다. 그 다음엔 뉴욕과 카리브해 왕복 티켓 두 장을 샀다. 지금의 아내와 비밀 연애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 티켓으로 함께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래도 돈이 남았다. 캐비아 5㎏을 샀다. 콩쿠르가 끝나고 한국에 들어왔더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점심 초대를 했다. 부모님은 “뭐라도 선물로 가져온 것이 없느냐”라고 했는데 캐비아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가져갈 것을, 융통성 없이 전부 들고 갔다. 육영수 여사와, 식탁 맨 끝에 앉아 있던 박근혜씨가 기억난다. 그들이 캐비아를 조금밖에 먹지 않아 마음이 너무 아팠던 기억도 난다. 메뉴에 캐비아를 이용한 재료를 포함시키면 옛날 생각이 나 재미있지 않을까.



#파스타



그날 아침 가장 싱싱한 생선을 사 와 회를 조금 내놓는다. 그 다음에 그 생선으로 해물 파스타를 만든다. 토마토 소스와 양파, 이탈리아 고추인 페페론치노, 앤초비와 양파·마늘·파슬리와 케이퍼가 필요하다. 야채부터 넣고 볶다 생선을 넣고 케이퍼와 앤초비를 넣는다. 그 다음엔 토마토 소스를, 조금 끓인 후에는 파스타 삶은 것을 넣는다. 파슬리는 마지막이다.



#메인



페킹덕.
바깥에서 불을 지펴 생선을 굽는다. 내가 좋아하는 생선은 농어다. 아니면 한국 게나 랍스터도 좋다. 파프리카와 호박·양파·가지 등을 함께 꼬치에 꿴다. 생선은 간장에 생강·마늘·고추 등을 다져 섞은 뒤 밑간을 한다. 뜨거울 때 먹을 수 있도록 내는 게 중요하다.



요즘 들어 메인 요리에 포함하고 싶어진 것이 페킹덕(베이징 오리 구이)다. 우리 가족이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많이 가던 식당은 중국 레스토랑이었다. 89년 파리의 오페라 극장 일을 하면서부터 굉장히 자주 갔던 곳이다. 셰프의 이름은 쉐 왕이었는데, 몇 년 전에 봤더니 문을 닫았다. 정확히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장사가 너무 잘돼 더 큰 식당을 열었으리라 생각된다. 또 나의 첫째 며느리가 중국인이기도 하니, 페킹덕을 잘 만들어서 레스토랑 메뉴에 포함시키면 따뜻하고 의미 있는 테이블이 될 듯하다.



그 다음으로 빼놓을 수 없는 요리가 찌개다. 바비큐를 하고 남은 생선 뼈로 끓인다. 나는 매운 국물을 좋아하는 ‘찌개 대장’이다. 집에서 식사할 때도 내 찌개는 더 빨갛게 따로 끓일 정도다. 레스토랑 메뉴는 냄비에 야채를 듬뿍 넣고 끓인 물에 고춧가루를 풀어 한국식으로 만들고 싶다.



#입가심



디저트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특별한 마지막 식사는 누룽지다. 찬밥을 팬에 올리고 약한 불에 눌러 편 뒤 구워 누룽지를 만든다. 이걸 물에 넣고 끓인 간단한 누룽지에 짭짤한 멸치 같은 것을 마지막으로 먹는 걸 즐긴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도 이 누룽지로 입가심을 한다.



이처럼 내가 생각하는 메뉴는 ‘짬뽕 스타일’이다. 한국식과 이탈리안이 섞여 있다. 또 훌륭하고 완벽한 음식을 만드는 것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눔의 의미, 혹은 나의 스토리가 배어 있는 메뉴가 훨씬 좋을 거라고 본다. 크고 유명한 식당보다는 친구들끼리 들러서 간단히 즐기면서 먹는 편이 더 좋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레스토랑을 구상한다면 좀 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메뉴를 차려 낼지도 모르겠다. 나의 다음 세대는 어린 시절을 나보다 더 다양한 경험과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소박한 음식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런 음식들의 간단한 맛과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메뉴를 지금도 고르는 중이다. 몇 년 후가 될까, 나의 레스토랑이 완성되는 것은. 음식을 좋아하고 사람들 먹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는 그 미래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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