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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만물의 영장’이란 자부심, 뿌리째 뽑아내다

중앙일보 2010.09.11 00:04 종합 24면 지면보기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이후

289쪽, 1만6000원




자율적이며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다른 동·식물에 앞선다는 인간 중심주의를 이토록 혹독하게 비판한 책은 흔치 않다. 그것도 정공법이다. 플라톤 이후 칸트·헤겔, 현대의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서구철학 전체를 완전히 거꾸로 읽어내는데, 자연스럽게 노장철학과 불교에 기댄다.



원서 제목이 함축적이다.‘Straw Dogs: Thoughts on Humans and Other Animals’.‘Straw Dogs’란 제사 때 쓴 뒤 버려지는‘짚으로 엮어 만든 개’란 뜻. 『도덕경』에 나오는 “천지는 인간의 생각처럼 어질기는커녕 세상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한다”에서 따왔다.



“(서구적 의미의) 도덕적 인간에게 좋은 삶이란 영속적인 분투를 의미한다. 그러나 도교에서의 좋은 삶이란 애를 쓰지 않고 (인간이 가진 동물적) 본성에 따라 사는 삶이다.”(152쪽) “플라톤은 유럽사상에 진선미라는 세 가지 유산을 남겼다. 이 세 가지 추상적 관념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폭압적인 전제정치가 생기고 문화가 약탈되고, 사람이 학살됐다.”(84쪽)



인간의 본래 모습을 감출 경우 명분과 이념으로 치달아 폭력이나 인간의 오만을 낳는다는 논리다.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인간만이 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근대철학의 전제조건마저 감히 부정한다. 이를 위해 인간의식이란, 감각이 만들어낸 허구의 다발이라는 불교 논리를 끌어들인다. 저자 존 그레이는 영국 런던정경대 유럽사상사 전공 교수. 노을 지는 서구문화의 한 징후인가, 오랜 불균형을 바로 잡는 탁월한 균형추인가? 좋은 읽을거리임에는 틀림없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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