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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들러리 선 탈락자들 참담한 심정 헤아려봤는가

중앙일보 2010.09.06 19:35 종합 38면 지면보기
사퇴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혜채용 의혹이 행정안전부 감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규정을 어기고 면접위원으로 들어간 외교부 간부들이 장관 딸에게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어 원래 순위를 뒤집었고, 덕분에 딸이 최종 합격자로 낙점됐다. 응모 자격 요건부터가 장관 딸을 위한 ‘맞춤 공모’ 냄새가 짙었으며 심사회의에서는 “실제 근무 경력이 중요하다”며 외교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장관 딸을 위해 바람을 잡는 듯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통상전문 외교관의 꿈을 품고 응모했다가 한낱 들러리 신세로 전락한 다른 응시자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기나 했는가. 개탄과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행안부는 외교부가 특혜채용 과정에서 관계법령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징계처분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 채용 비리에 외교부 고위간부 어느 선까지 개입했는지 철저히 규명하고, 경우에 따라 사법처리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외교관 자녀 특채 경위 조사도 조속히 마무리해 결과를 투명하게 발표하기 바란다.



특혜채용 파문이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파를 가볍게 여기다간 앞으로 더 큰 쓰나미가 닥칠 것이다. 정부는 사태 수습은 이제부터라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우선, 비슷한 편법·특혜 채용이 외교부 외 다른 부처에는 없었는지 밝혀내야 한다. 마침 김황식 감사원장도 어제 “공무원 인사 전반에 관해 감사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주무 부서인 행안부도 인사 비리 규명에 바짝 나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태 재발 방지책이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어제 국회에서 민간인 전문가 특별채용 규모를 확대하는 내용의 행정고시 개편안 골격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간판 하나로 평생이 보장되는 고급공무원 채용 방식은 이제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고시 합격자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순혈(純血)주의로는 더 이상 공직사회의 활기와 경쟁 풍토, 전문성을 제고하기 어렵다.



문제는 개편안의 기본 취지를 어떻게 살리느냐에 있다. 유명환 장관 딸 채용 때처럼 서류전형·면접으로 이뤄질 민간인 전문가 선발의 객관성·투명성·공정성·신뢰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채용 방식이 특정 계층에 유리하다는 시비에 말리지 않고 국민 대다수가 결과에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개천에서 용 나는’ 통로를 보장해 채용 제도가 장기적으로 사회 통합과 역동성 제고에 기여하도록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고려를 앞세워 포퓰리즘의 샛길로 빠져서는 거꾸로 부작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장관 딸 특혜 파문은 공무원 채용제도 변화,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과 맞물려 온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낳고 있다. 행안부는 16일 국민 공개토론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할 계획이다. 가능한 많은 국민과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개편안에 반영하기 바란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립된 채용제도가 이번 기회에 마련된다면 특혜 파문도 나름대로 반면교사(反面敎師) 역할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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