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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혁 원수’ 마오쩌둥 - 류사오치 40여 년 만에 ‘가문의 화해’

중앙일보 2010.09.06 03:00 종합 12면 지면보기
마오쩌둥(왼쪽)과 류사오치가 문혁 전인 1962년 10월 1일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누각에서 자리를 함께 한 모습. [중앙포토]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공산당 주석과 류사오치(劉少奇) 전 국가주석은 혁명 동지였으나 문화대혁명(1966∼76년)을 거치면서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돌변했었다. 그러나 문혁 초반 두 사람이 등진 이후 40여 년이 지나 그들의 후손이 화해의 손을 맞잡았다.


중국 언론 이례적 보도

이 같은 사실은 중국 인민화보(畵報)가 5일 공개한 한 장의 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보도에 따르면 류의 4남인 류위안(劉源·59) 군사과학원 정치위원 겸 인민해방군 상장(한국의 중장 격)은 7월 20일 마오의 유일한 손자인 마오신위(毛新宇·40) 소장(한국의 준장 격)에게 장군 진급 사령장을 전달하면서 악수를 나눴다.



군사과학원 원장도 아닌 류 상장이 마오 소장에게 진급 사령장을 전달한 것은 군 조직상 이례적인 것이며 이런 내용이 언론에 공개된 것도 드문 일이다. 따라서 이 장면의 공개는 양 가문의 화해를 의도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의 한 네티즌은 이와 관련, “류 주석의 아들이 마오 주석의 손자에게 장군 계급장을 달아주고 악수함으로써 ‘홍색 가문(혁명 가문)’ 사이에 역사적 화해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류사오치 전 국가주석의 아들 류위안(왼쪽) 중국군사과학원 정치위원과 마오쩌둥의 손자 마오신위. [인민화보]
다섯 살 차이인 마오쩌둥(1893∼1976)과 류사오치(1898∼1969)는 항일 투쟁과 국공 내전을 함께 겪은 전우이자 동지였다. 특히 두 사람은 ‘혁명의 고향’으로 불리는 후난(湖南)성 출신으로 마오의 고향 사오산(韶山)과 류의 고향 닝샹(寧鄕)은 불과 20여㎞ 거리다.



그러나 두 사람은 문혁을 계기로 정치적으로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당시 권력의 일선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던 마오는 국가주석이던 류를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주자파(走資派)로 몰아붙이면서 “자산계급(부르주아)의 사령부를 포격하라”고 대자보를 통해 혹독하게 공격했다. 결국 권력에서 밀려난 류는 모진 고문을 당했고 69년 11월 허난(河南)성 카이펑(開封)의 한 감옥에서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다.



76년 마오가 죽으면서 문혁이 끝나고 80년 류가 정치적으로 복권되면서 류씨 집안도 명예를 회복했다. 아들 류위안은 82년 공산당 입당이 허용됐고, 97년에 중장 계급을 달면서 군문(軍門)에 들어섰다. 지난해 7월에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직접 상장 계급장을 달아줬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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