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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에 듣는 임신·육아 이야기 ⑤·끝

중앙일보 2010.09.06 00:27 종합 26면 지면보기
1980년 7월, 당시 해외 진출을 앞둔 국가대표 축구선수와 인기 최고였던 여성 MC의 결혼 소식은 라디오에서 속보로 전할 만큼 대단한 화제였다. 허정무(55) 전 월드컵대표팀 감독과 최미나(56)씨 부부 얘기다. 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때도 화제가 됐다. 2008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월드컵 최종 예선전에서 이근호 선수가 첫 골을 터뜨린 뒤 허 감독 앞으로 달려가 펼친 ‘요람 세리머니’ 때문이었다. 허 감독이 며칠 전 쌍둥이 손자의 할아버지가 된 걸 축하하는 의미였다. 2일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의 허 감독 자택을 찾아 최씨로부터 손자들에 푹 빠져 사는 요즘 이야기를 들었다. 경원대와 서울시·중앙일보가 함께 펼치는 ‘세살마을’ 운동의 확산을 위해 이 시대에 맞는 조부모 역할을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외손자 태어난 후 우리 부부 더 활기차고 젊어졌어요”

<관계기사 S3면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



결혼한 지 30년 된 허정무 감독과 최미나씨 부부는 2008년 쌍둥이 손자(왼 쪽 강하준, 오른쪽 예준)의 할아버지·할머니가 됐다. 지난 2일 서울 서래동 자택에서 최씨를 인터뷰할 때 최근 인천 유나이티드 사령탑으로 K-리그에 복귀해 여념이 없는 허 감독도 손자들과의 사진 촬영에는 기꺼이 응했다. [최승식 기자]
“할머니가 된다는 걸 알았을 때 정말 기대됐어요. 병원에서 딸의 출산을 기다리면서는 눈물이 날 뻔했죠. 책임감이 더 커진 것 같으면서, 딸들을 낳을 때의 설렘과는 또 다른 기쁨이 느껴졌어요.”



최미나씨는 외손자가 태어나던 때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그에게 “아직 50대인데 ‘할머니’ 소리를 듣는 게 싫을 때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최씨는 서슴없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튼튼하지 못한 편이라 손자들을 좀 더 봐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죠. 사실 아이들 봐주는 건 남편이 훨씬 더 잘해요.”(최씨는 지난해 4월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실제로 손자들 장난감이나 간식용 과일 챙기기는 허정무 감독이 도맡는다고 한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을 향한 예선전 막바지 무렵 태어난 쌍둥이 외손자 강하준·예준은 어느새 똘망똘망한 얼굴로 외갓집 구석구석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허 감독이 1980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입단해 활동하던 시절 낳은 큰딸 화란(29)씨의 아이들이다. 최씨는 쌍둥이를 임신한 딸을 위해 출산 한 달 전에 집 근처로 이사 오게 했다. 출산 준비와 산후 조리를 돕기 위해서였다. 화란씨는 “덕분에 산후 우울증 같은 건 모르고 지났다”며 “아이들에겐 할머니·할아버지를 자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최씨 부부의 최대 즐거움은 쌍둥이 손자들과 함께하는 저녁 산책이다. “엄마 품 안에만 있던 녀석들이 어느새 할머니·할아버지를 알아보고 같이 뛰어다니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다”며 “손자들을 통해 우리도 더 젊어지고 활기 있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자를 돌보면서 새로운 사실도 많이 깨닫는다고 한다. 그는 “아이를 먼저 키워봤다고 해서 육아를 더 잘 하는 건 아니다”며 “큰딸이나 유아교육과를 나온 둘째 딸에게서 손자 다루는 법을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잘못을 해도 스스로 행동을 고칠 때까지 조용히 몇 번이고 아이에게 타이르며 기다려주는 큰딸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 적도 있단다.



최씨는 “딸들만 키우다가 손자가 생겨서인지 은근히 하나는 운동 선수로 키우고 싶은 욕심도 든다”며 “남편도 공원에서 공을 내주고 ‘할아버지가 뭐 하는 사람이지?’라고 물으면 손자들이 뻥뻥 차는 모습을 흉내낼 때 흐뭇해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그건 우리의 바람일 뿐”이라며 “그저 지금처럼 밝고 깨끗하고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씨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손자들에게 더 건강한, 정신적으로 젊은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란다.



글=김정수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세살마을=아기 울음소리 나는 사회, 사회가 아이를 함께 돌보는 육아공동체, 창의적 리더로 키우는 조기 교육을 목표로 벌이는 범국민운동. 탄생축하사업단과 영·유아 뇌 연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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