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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어느 이방인의 슬픈 초상

중앙일보 2010.09.06 00:18 종합 39면 지면보기
나라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인물들이 있다. 인도의 간디, 터키의 케말 파샤, 이탈리아의 주세페 가리발디, 중국의 쑨원(孫文), 베트남의 호찌민(胡志明)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국은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을 비롯한 초기 대통령들과 벤저민 프랭클린, 알렉산더 해밀턴, 존 제이 등 미국 헌법의 기초를 놓은 지도자들을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로 받들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 당시, 우남(雩南) 이승만은 명실상부한 국부였다. 항일독립투사들의 으뜸인 백범 김구 선생도 “우리나라의 국부는 이승만 박사뿐”이라고 겸양했다고 한다(백범의 비서 선우진의 회고). 민주정치의 경험이 전혀 없었던 광복 직후의 극심한 좌우 대립 속에서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꿰뚫어보고 당시에는 낯설기만 했던 자유민주공화의 나라를 건설한 우남 등 건국 지도자들의 예지(叡智)는 매우 놀랍다. 불행하게도, 10여 년 장기집권의 독선과 부정선거로 국민의 지지를 잃고 하야(下野)한 우남은 국부는커녕 ‘친일파, 남북분단의 원흉’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우남이 혼자 세운 나라가 아니다. 북한의 김일성이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반탁(反託)에서 찬탁(贊託)으로 돌변한 뒤, 치욕적인 신탁통치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남한의 선택은 오직 단독정부 수립뿐이었다. 유엔 소총회도 1948년 2월 남한의 단독총선거를 결의했고, 그에 따라 실시된 5·10선거의 투표율은 95.5%에 달했다. 국제사회와 남한 주민 대부분이 대한민국 건국에 찬성했다는 뜻이다.



북한은 1946년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남한은 정부수립 후인 1949년 농지개혁을 시행했다. 북한은 1947년 이미 첫 화폐를 찍어냈지만, 남한은 1950년에야 화폐를 발행했다. 토지개혁과 화폐발행은 독립국가의 대표적인 주권행위다. 북한의 실질적인 단독정부체제는 남한보다 훨씬 먼저 갖춰진 셈이다. 단지 공식적인 정부수립 선포를 남한보다 불과 20여 일 뒤에 했을 뿐이다. 치밀한 사전준비가 없었다면, 단 20여 일 만에 나라 하나를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민족분단의 책임을 이승만 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가당찮은 ‘역사왜곡’이다.



문명국 프랑스는 전후(戰後)에 수만 명의 나치 부역자를 즉결 처형하는 핏빛 서린 반문명적 광기(狂氣)에 휩싸였다.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관용을 호소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를 강력히 비난하며 과거사 청산에 앞장섰던 알베르 카뮈마저도 나중에는 “모리아크가 옳았다!”고 후회했을 정도다. 물론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 일부 친일혐의자가 참여한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식민통치를 갓 벗어나 인재 풀이 몹시도 빈약한 때였으니, 파렴치한 매국노가 아니면 웬만한 흠이 있더라도 실무능력에 따라 일을 맡길 수밖에 없는 딱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전쟁 전부터 이미 우수한 행정관료조직이 건재했던 프랑스와는 사정이 달랐다.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샤를 드골은 1968년 학생혁명 당시 시위대원과 경찰관이 사망하는 비극 속에서도 특유의 독선과 권위로 1년이나 더 버티다가 국민투표로 불신임을 받고 나서야 사임했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은 그의 국부 자격까지 불신임할 만큼 모질지는 않았다. ‘독재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드골은 여전히 프랑스의 국부다. 파리에는 드골의 동상이, 그의 고향에는 기념관이 서 있다. 4·19 직후 사상자가 발생하자 6일 만에 스스로 물러난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동상도 기념관도 없이 쓸쓸히 잊혀져 간 우남의 초라한 위상과는 퍽이나 대조적이다.



평양 만수대 언덕에는 ‘민족의 태양’이 20m 높이의 금빛 동상으로 솟아 있고, 또 어딘가에는 ‘인민의 어버이’라는 아버지와 ‘위대한 령도자’라는 아들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세계에 둘도 없는 ‘부자(父子) 동상’이지만, 인민들이 굶주리는 동토(凍土)에서 핵무기를 만드는 현대판 세습왕조의 상징물이니 부러울 것은 없다. 건국대통령인들 어찌 허물이 없겠는가? 준엄한 사필(史筆) 앞에 떳떳하기만 한 지도자는 흔치 않을 것이다. 수십 년 세월에 어느 이방인의 얼굴처럼 낯설어진 우남의 슬픈 초상(肖像)은 이제 국민 곁으로 돌아와 안식을 찾아야 한다.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이 나라의 국부가 아닌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대한민국을 끔찍이도 미워하는 어떤 사람들이야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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