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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는 전방위다 컴퓨터 접속한 당신도 경계 뛰어넘는 큐레이터”

중앙일보 2010.09.06 00:18 종합 28면 지면보기
10년 만에 다시 만난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42)는 국제 미술계의 거물이 됐어도 여전히 농담 잘하고 겸손하며 호기심 많은 신사였다. 2000년 제1회 서울국제미디어 비엔날레의 ‘디지털 비전’ 부문 큐레이터로 서울과 친숙해진 뒤 한국미술에 따듯한 시선을 보내온 그는 3박4일의 짧은 일정 중에도 서울 시내 주요 전시장을 둘러보고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의 ‘김수자 설치 프로젝트’와 광주 비엔날레를 관람했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9~1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가 개막 전 학술행사로 6일 오후 1시30분부터 코엑스 컨벤션 룸에서 여는 컨퍼런스에 기조 강연자로 온 그를 4일 인터뷰했다.


한국 온 ‘세계 미술계 파워 1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인터뷰 내내 메모지에 도형을 그려가며 높낮이가 큰 음악적 어투로 대화 상대를 설득함으로써 큐레이터의 생활 일부를 보여줬다.
-‘모든 인간은 큐레이터’라는 당신의 말이 화제다.



“큐레이터(학예연구사)는 19세기에 미술품 관리자로 출발해 200년의 짧은 역사를 지닌 직업이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상당히 미래지향적 전문가다. 내가 쓴 『큐레이팅의 간추린 역사』(송미숙 동아시아 문화학회장 번역으로 출간 예정)는 6개국에서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그만큼 큐레이터 또는 큐레이팅이 지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왜 21세기의 첫 10년에 그토록 큐레이팅의 영역이 확장되었을까. 인터넷 세상은 인간이 모든 경계를 뛰어 넘어 서로에게 침투하고 촉발하며 새로운 충족감을 얻는 쪽으로 가고 있다. 자발적이며 보다 위를 지향하는 창조 행위를 조직하고 다리를 놓아주는 연결자가 큐레이터다. 그렇다면 컴퓨터에 접속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현대인은 큐레이터요, 그의 일상은 큐레이팅 아닐까. 큐레이터의 영역은 앞으로 전방위적으로 더 확산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게 큐레이터의 매력이다.”



-예술을 하나의 규범,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스(상자) 형태에 가두는 것’을 깨는 것을 큐레이팅의 중심으로 삼아왔는데 그 바탕에 깔린 생각은.



“러시아의 발레 프로듀서 디아길레프는 발레에 과학·미술·음악 등 모든 걸 끌어들였다. 난 그가 한 일을 미술에서 하고 싶다. 낱낱 장르의 분리가 아니라 초학제적(trans-disciplinary)인 통합의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 난 건축을 좋아한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모여 융합의 미를 일구어 우리를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장르간 대화를 강조하는 것인가.



“우리가 흔히 ‘컨템포러리’라 부르는, 동시대 또는 당대의 예술 정신은 이런 조화와 통섭이 핵심이다. 20세기 미술사가 선언문의 시대였다면 21세기 미술사는 대화의 시대다. 삶을 즐겁고 창조적으로 만들기 위한 큐레이팅 동력을 늘 가동하는 것이 당신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누구도 생각 못한 신선한 시도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당신의 아이디어 뱅크가 궁금하다.



“1999년 나는 미술작가가 1주일에 한번 과학자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실행했다. 변화는 작가와 과학자 모두에서 일어났다. 2007년에는 ‘일 템포 델 포스티노(우체부의 시간)’란 기획을 영국 맨체스터에서 시작했다. 미술은 그동안 공간의 예술이었다. 그 제한을 시간으로 바꿨다. 작가들에게 15분씩 무대에서 실험작을 선보이게 했다. 새롭게 해볼 만한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큐레이팅은 세심하고 복합적인 설계안이다. 큐레이터라면 생각을 즐길 줄 알아야한다.”



-유럽의 미술사가와 큐레이터 중에서 몇몇이 20세기 컨템포러리 미술의 시기 구분을 1990년대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동의한다. 일례로 ‘일 템포 델 포스티노’를 함께 했던 매튜 바니, 더글러스 고든, 올라퍼 엘리아손, 알리 살라 등은 1990년대 세계 미술계의 판도를 바꾼 중요 작가들이다. 비디오 매체와 매스 미디어에 대한 폭넓은 인식은 이들을 90년대 이전 작가들과 확연하게 구분짓게 만든다. 90년대 이후 미술에 대한 개념 정의가 큐레이터들의 또다른 임무다.”



-한국 젊은이들이 가운데 큐레이터 지망생이 늘어나고 있다. 내일의 큐레이터는 뭘 해야 할까.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축적한 뒤 현실과 접속해 예술가들에게 적절한 지도를 그려 보이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급속히 그 숫자가 늘어난 비엔날레(격년제 국제미술전)와 아트페어(미술견본시)가 최근 들어 단순히 새 미술형식을 선보이거나 미술품을 사고파는 걸 떠나서 다양한 학술강연회와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큐레이팅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본다.”



-세계 미술계 파워1위로 뽑혔는데.



“지난 20년 동안 큐레이팅했던 비엔날레마다 매번 각기 다른 이슈, 방향, 방법을 실험했다. 실현되지 않은 꿈을 꾸고 우리 모두가 도달하고 싶은 유토피아를 그리는 예술가와 창조자의 곁에 큐레이터는 든든한 받침대이자 도우미로 서야 한다.”



글·사진=정재숙 선임기자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1968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부모 덕에 10대 시절부터 이름난 미술가들과 만나며 일찌감치 큐레이터의 소양을 길렀다. 세인트 갈랑 대학(HSG)에서 경제와 사회과학을 전공한 뒤 유럽 여러 도시의 미술관과 화랑에서 전시기획자이자 총감독을 지내며 12번의 비엔날레를 지휘했고 수백 건의 전시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09년 ‘아트 리뷰’가 선정한 ‘미술계 파워 100인’에 큐레이터로서는 처음 1위에 올랐다. 현재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공동 디렉터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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