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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91> 방송·연예인 출신 정치인

중앙일보 2010.09.06 00:18 경제 18면 지면보기
이순재·최무룡·최불암·신성일씨의 공통점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자 배우들”이라고 한다면 평범한 대답이다. 이들은 스크린이 아닌 현실에서 ‘금배지’를 단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가장 최근엔 7·28 재·보선에서 배우 최종원씨가 국회의원(태백-영월-평창-정선)에 당선됐다. 연예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높은 인지도를 지닌 연예인들의 정계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얼굴’ 무기로 진출한 정계 … 회의 느껴 떠난 이도 많아

이가영 기자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 1호, 홍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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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출신으로 가장 먼저 국회의원이 된 사람은 TBC 탤런트를 지낸 홍성우씨다. 그는 1978년 10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서울 도봉)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 후 내리 3선에 성공했고, 14대 총선에 낙선한 뒤에야 정계에서 은퇴했다. 11대 총선 땐 연기자협회 회장을 지낸 이낙훈(98년 작고)씨가 민정당 소속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정당이 문화예술계 인사를 전국구로 공천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경기고-서울대를 거친 이씨는 11대 국회 임기를 마치고 브라운관으로 돌아왔다. 50~60년대 톱스타 최무룡(99년 작고)씨는 13대 총선 때 고향인 경기도 파주에서 당선됐다.



14대 총선에선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아버지’로 분한 이순재씨가 높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당선됐다. 13대 총선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셨던 그는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당시 평민당 의원)과의 리턴매치에서 승리했다. 당시 ‘적’으로 만났지만 둘은 이내 가까워져 이씨가 이 전 장관의 후원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씨는 4년의 임기를 마치자 정치권을 떠났다. “국회의원 시절을 후회하진 않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긴 채.



14대 국회엔 이순재·이주일·최불암·강부자 등 4명



이순재씨가 등원한 14대 국회엔 연예인 출신이 모두 4명이나 됐다. 경기도 구리에서 당선된 코미디언 이주일(본명 정주일, 2002년 작고)씨와 전국구로 입성한 탤런트 최불암(본명 최영한)·강부자씨였다. 이 중 이순재씨만 민정당 소속이었고, 나머지 3명은 모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만든 국민당 소속이었다. 이주일씨는 코미디언 출신 1호 의원이었다.



15대 국회 땐 최희준씨가 가수 출신으론 최초로 금배지를 달았다. 최씨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 ‘엘리트 가수’로 통하던 인물이었다. 서울대 치대 출신의 배우 신영균씨도 같은 해 신한국당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다. 신씨는 16대 총선에서도 잇따라 비례대표가 되며 ‘비례 재선’의 기록을 지녔다. 서강대 출신의 탤런트 정한용씨도 15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서울 구로에서 당선된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한때 ‘동교동의 황태자’란 별명을 얻었다.



이주일씨, 여전히 코미디언으로 보는 시선에 마음 고생



연예인들의 정치 적응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주일씨는 적극적으로 의정활동을 했지만 자신을 여전히 코미디언으로만 바라보는 지역구민과 동료 의원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다. 4년간의 의정활동을 끝내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 그는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6대 땐 ‘미남 배우’의 대명사인 신성일씨가 대구에서 당선됐다. 삼수 끝에 얻은 금배지였다. 출마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고배를 마신 첫 선거 때 그는 ‘강신영’이란 본명으로 나갔고, 사람들은 “신성일이 나온다더니 왜 엉뚱한 사람 이름만 있느냐”며 표를 주지 않았다. 급기야 그는 16대 총선에서 ‘강신성일’이란 이름으로 출마, 당선됐다. 선거자금 제한이 없던 시절 치른 두 번의 선거에서 그는 전 재산을 날리다시피 했다. 하지만 어렵사리 된 국회의원도 임기를 끝낸 뒤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계파에 따라 줄을 서야 하고, 돌아서면 적이 되는 정치인 생활에 전혀 미련이 없다. 그건 정말 삼류생활이다”라고 회고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현 미래희망연대) 소속 비례대표로 당선된 김을동씨도 수차례 낙선했다. 92년 서울 시의원에 도전했다 떨어진 뒤 95년 시의원에 재도전해 당선됐으나 이듬해인 96년 자민련 후보로 서울 종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떨어졌고, 2000·2004년 총선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이덕화·김희라·김형곤씨, 낙선 뒤 한동안 침체기



96년 15대 총선에서 경기도 광명에 출마했다가 근소한 표 차(1400여 표)로 낙선한 탤런트 이덕화씨는 이후 수년간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당시 상당한 재산을 날린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낙선 후 방황하던 시절 가발 CF가 들어와 처음엔 거절했다. 그러나 결국 그 CF가 재기의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왕년의 액션스타 김희라씨도 90년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사업 실패까지 겹쳐 뇌경색을 앓는 등 침체기를 겪었다. 2005년 스크린에 컴백한 그는 올해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 감동의 영화 ‘시’에서 40년 만에 여배우 윤정희씨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2006년 별세한 개그맨 김형곤씨는 2000년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는 당시 자전거 선거운동으로 눈길을 끌었는데 낙선 이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음식점을 경영했다.



연예인 출신 장관·시장도 … 요즘엔 아나운서 강세



연예인 출신으로서 장관직까지 오른 사람도 있다.



탤런트 유인촌씨는 이명박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됐다. 전북 출신의 유 전 장관은 드라마에서 이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연기해 이 대통령과 친분을 쌓았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공직에 진출했다. 그는 30개월간 재임, 문화부 설치 이래 최장수 장관 기록을 세웠다. 이번에 신재민 후보자가 청문회 고비를 넘기지 못해 그의 장수 기록은 당분간 이어지게 됐다.



배우 김명곤씨도 노무현 정부의 문화부 장관(2006년)을 지냈다. 배우 출신으로 처음 장관에 임명된 이는 손숙씨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99년 5월 환경부 장관직에 올랐으나 전경련 격려금 2만 달러 파문으로 32일 만에 퇴진했다. 배우 출신은 아니지만 영화감독 이창동씨도 노무현 정부 때 문화부 장관이 됐다.



60~70년대 액션배우로 이름을 날린 이대엽씨는 3선(11~13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2002년 경기도 성남시장에 출마해 당선됐고 2006년엔 재선에 성공했다. 올 6월 지방선거에서 3선을 노렸지만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 무소속으로 출마해 떨어졌다.



가수 이선희씨는 26세이던 91년 서울 시의원에 당선돼 당시 최연소 시의원 기록을 세웠다.



아나운서들의 정계 진출도 늘었다. ‘명랑운동회’의 사회자 출신 변웅전씨는 18대 국회에서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다. 그는 전반기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장을 맡아 맹활약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에는 한선교(재선·용인 수지)·유정현(초선·서울 중랑갑) 등 두 명의 아나운서 출신 의원이 활동하고 있다.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재선에 성공한 이계진 전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로 출마했으나 민주당 이광재 지사에게 패했다.






해외에선

아놀드 슈워제네거 8년째 주지사 …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시장 2년 역임




해외에도 유명 연예인의 정치 입문 사례가 많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
대표 인물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다. 레이건은 가장 성공한 인물로 꼽힌다. 1911년생인 레이건은 37~64년 약 50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였다. 47년 영화배우협회장이 된 그는 처음엔 민주당을 지지했으나 이후 보수 성향으로 기울어 63년 공화당에 가입했다. 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된 그는 80년 대통령에 당선, 84년 재선에 성공한다. ‘강하고 풍족한 미국’을 구호로 내건 그는 퇴임한 지 5년 만인 94년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10년간 투병하다 2004년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지금도 미국 국민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인공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재임 중이다. 그는 고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혼해 4명의 아이를 두기도 했다.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86년부터 2년간 캘리포니아주 카멜시의 시장으로 활동했다.



아시아에선 필리핀의 조셉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이 배우 출신이다. 마닐라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60년대 최고의 액션스타였다. 그는 69년 정계에 입문, 98년엔 3개 야당 연합체의 대선후보가 돼 필리핀 역사상 가장 큰 표 차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부패 혐의로 탄핵돼 2001년 불명예 퇴진했다.



유럽엔 그리스의 미녀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가 있다. 그는 60년 출연한 ‘일요일은 참으세요’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67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에 반대하다 국외로 추방돼 망명생활을 하며 민간정부 수립운동을 벌였다. 74년 군사정권 붕괴와 함께 귀국해 77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81년 설립된 사회주의 정권에선 문화장관에도 임명됐다. 유럽연합이 지정한 도시에서 1년간 각종 문화행사를 전개하는 ‘유럽문화수도’는 그가 85년 처음 제안했다.



소설가인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는 드골 정권하에서 초대 문화장관으로 10여 년간 재임했다. 드골의 신임을 받은 그는 정부 예산의 1%를 문화예산으로 편성하는 정책을 펴 프랑스가 문화대국이 되는 초석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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