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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8인 1실이 더 좋을 때

중앙일보 2010.09.06 00:10 종합 37면 지면보기
모든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어느 특목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합격자 발표 이후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단다. 한 번도 집을 떠나본 적이 없고 어려서부터 혼자서 방을 써 온 아이가 ‘무려’ 여덟 명이 함께 쓰는 숙소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절반, 나름 좋은 학교라면서 기숙사 시설은 너무 열악한 것이 아닐까 하는 불만이 절반.



사정을 알고 보니 이랬다. 그 학교가 처음부터 8인 1실 방식을 택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2인 1실로 배정을 했었는데, 두 학생의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경우에는 둘 다 너무 힘들어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3인 1실로 배정을 했더니 두 학생이 가까워지고 나머지 한 학생이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현상이 생겼고, 4인 1실로 바꾸었더니 2대 2의 갈등 구도가 또 생겨났다. 5~6명을 한 방에 넣었더니 꼭 한 명쯤은 소위 ‘왕따’가 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결국 좀 복닥거리긴 해도 ‘그나마’ 가장 문제를 덜 일으키는 8인 1실 방식이 채택되어 정착됐다.



비슷한 일이 병원에서도 일어난다. 6인용 병실에서는 텔레비전 채널 선택권을 두고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자연스럽게 가장 다수의 환자들이 원하는 채널이 선택되거나, 여섯 환자들 중 ‘최고 권력자(?)’가 전권을 행사하고 나머지 환자들은 그냥 수용하거나 둘 중 하나다. 최고 권력자란 대개 가장 먼저 입원한 사람 혹은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 혹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텔레비전 채널 때문에 환자들이 싸우는 일은 주로 2인실에서 벌어진다. 6분의 1이라는 지분은 포기해도 크게 아깝지 않은 반면, 2분의 1이라는 지분은 그냥 버리기에는 좀 억울하기 때문이다. 여섯 명 중에서 1등 하기는 좀 어려워 보여도 두 명 중에서 1등 하기는 만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총원이 여섯일 때는 1등 외에는 모두가 공동 2등이지만, 단 둘만 있을 때에는 2등이 곧 꼴찌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사회 전체로 확대해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국은 국가의 전체적인 수준이나 위상에 비해 사회 내부의 갈등이 비교적 심한 편인 듯한데, 그 이유가 혹시 다양성의 부족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우리가 내려야 하는 결정들 가운데 상당수는 선택지가 두 개뿐이다. 개인의 가치관은 O·X 문제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도 한다. 하지만 얼핏 보아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선택지가 더 많은 경우도 허다하다. 알고 보면 더 좋은 ‘진짜’ 정답이 있는데도 둘 중에 반드시 정답이 있다고 맹신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문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스스로 출제한 문제도 많다), 당연히 선택된 답도 옳은 해답이 아니다. 찬성과 반대, 우리 편과 네 편, 승리와 패배, 모든 것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건 불필요한 긴장과 소모적인 논쟁과 필연적인 상실감을 유발한다.



때로는 2인 1실보다 8인 1실이 더 좋은 것처럼, 거의 언제나 2인용 병실보다 6인용 병실이 더 평화로운 것처럼, 우리가 ‘5천만 1실’, 더 나아가 ‘70억 1실’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재영 『청년의사』 편집주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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