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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방사선 쬐면 ‘방사능 오염식품’?

중앙일보 2010.09.06 00:10 건강한 당신 6면 지면보기
사건은 2008년에 시작됐다. 당시 한국소비자원은 시판 이유식 제품을 대상으로 방사선을 쪼였는지 여부를 검사했다. 그리고 16개 품목에 대해 양성 판정을 내렸다.



이 일로 식품의약품안전청 관련 직원들의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감사원은 행정처분 권한이 없는 소비자원이 식약청에 이들 16개 이유식 제품에 대한 확인검사를 의뢰했는데 식약청이 이 중 6개 제품만 검사했다며 칼을 꺼냈다. 또 식약청 직원이 양성인 1개 제품을 음성으로 잘못 판정했다는 것도 징계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식약청 직원은 소비자원으로부터 8개 제품 리스트만 전달받았고,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정한 시험법에 따라 검사·판정을 내렸으며, 판정 결과에 대해 영국 전문가의 자문까지 받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는 식약청 직원이 특정 업체나 제품을 봐주기 위해 일부 제품을 검사 대상에서 고의로 제외시키거나 거짓 판정을 내렸을 개연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기엔 주변의 눈과 관심이 너무 많았다.



이 사건은 방사선을 쬔 식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 여러 식품업체가 방사선을 쬐지 않는 재료만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식품회사들의 이를 ‘공포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은 더 굳어지게 돼 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국제식량농업기구(FAO)·미국 식품의약국(FDA)·미국의학협회(AMA)·미국질병통제센터(CDC)·미국영양사협회(ADA)·영국의학협회(BMA)등 내로라하는 기관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10kGy 이하의 방사선을 쬔 식품은 먹어도 안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사선을 쬔 인도산 망고는 미국에 수출된다. 2009년 6월 미국에선 비브리오 패혈중균을 없애기 위해 생굴에 방사선을 쬐는 것도 허용했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2009년 3~4월 서울과 수도권 거주 주부 275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방사선을 쬔 식품은 안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42.9%에 불과했다(한국식품영양학회지 2010년 39호). 또 “식품에 방사선을 쬐면 방사능 때문에 위험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아니요) 비율은 29.9%에 그쳤다. 이는 소비자 10명 중 7명가량이 방사선 조사 식품을 방사능 오염 식품으로 오인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식품에 방사선 쬐기는 식중독 예방, 유통기한 연장, 화학 훈증제 대체 등 유익한 측면이 많다. 그럼에도 국내에선 ‘천덕꾸러기’ 신세다. 식품업계나 식품 안전 문제를 다루는 학자들에겐 첨예한 관심거리이지만 바쁜 일반인에겐 ‘어렵고 골치 아프며 왠지 꺼림칙한 대상’일 뿐이다.



원자력발전소·의료용 검사기기와 더불어 식품에 방사선을 쬐는 기술은 원자력의 3대 평화적 이용 사례로 꼽힌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방사선 쬐기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국민 세금으로 지난 10여 년간 수백억원을 지원해 이룩한 성과다. 그런데도 소비자의 막연한 불안과 오해를 제대로 풀지 못해 기술 자체가 사장될 위기에 놓여 있다. 정부는 식품에 방사선을 쬐는 일이 방사능 오염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만이라도 국민에게 바로 알려야 한다. 그래야 이성적인 논의의 장이 펼쳐진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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