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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포츠머스 조약의 교훈

중앙일보 2010.09.06 00:09 종합 37면 지면보기
한 나라의 국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군사력, 외교력, 경제력, 인구, 지정학적 요인, 자원 등 수많은 잣대가 있다. 우리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는 과정을 곱씹어 보면 일본은 한국의 외교력을 치밀하게 무력화시킴으로써 국권을 강탈했다. 특히 1905년에 연쇄적으로 이루어진 태프트-가쓰라 밀약, 포츠머스 러·일 조약, 을사늑약을 통해 일제는 한국이 한·일 관계의 실상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권리를 철저히 박탈했다. 이 과정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은 특히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왜 일본의 손을 들어 주었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일본 외교·안보라인의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복잡한 퍼즐의 조각이 어느 정도 맞추어진다.



우리는 이토 히로부미의 특사로 포츠머스 회담의 시작에서 끝까지 막후에서 종횡무진한 가네코 겐타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네코는 일본인 최초로 하버드 로스쿨을 수학했으며 대학총장, 농림부 장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거물이었다. 러일전쟁의 마무리가 지지부진하자 이토 히로부미는 가네코를 대미특사로 투입했다. 1904년 백악관 오찬에 초대된 가네코는 루스벨트와 자신이 하버드대 동창이라는 점을 내세워 접근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러일전쟁 종전의 중재자가 돼줄 것을 요청했다. 루스벨트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첫 번째 단추가 채워졌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시대의 강대국들은 약소국의 운명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주물러도 된다고 믿었고 그 논리적 기저에는 진화론이 있었다. 루스벨트도 약육강식을 주장한 다윈주의를 신봉했으므로, 아시아의 신흥 강국인 일본에 호감이 있었다. 루스벨트는 당시 동북아에 대한 두 가지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해 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만주를 개방하는 것이었다. 이를 간파한 일본은 자신들이야말로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한국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말썽 국가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요컨대 “한국을 (러일)전쟁 후에 그냥 내버려 두면 이전에 했던 것처럼 다른 나라들과 조약과 협약을 체결해… 또 다른 전쟁과 갈등을 불러올 것”이라며 루스벨트에게 일본이 한국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일본 외무성의 극비문서에 따르면 회담 중 일본이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해 회담이 결렬될 위기에 처하자, 마지막 순간에 루스벨트는 가네코를 만났다. 밀담이 있은 며칠 뒤 포츠머스 조약은 성사됐다. 러·일 합의문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정치·경제·군사상의 우월한 권리를 가지고 이를 러시아가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못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미국·영국·독일 등의 암묵적 지지까지 얻어냈고, 3개월 뒤 아무런 국제사회의 제재 없이 을사늑약을 밀어붙였다. 외교권의 박탈은 제대로 된 전면전 한번 치르지 않고도 한·일 강제병합을 가능케 했다.



우리가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동안 일본은 영악하고 치밀한 외교전략을 세워 루스벨트가 ‘일본이 미국의 게임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실제로 포츠머스 조약 체결 이후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추락했고 일본은 사실상 만주까지 지배하면서 팽창했다. 결국 루스벨트가 원했던 동북아의 세력균형은 그가 오판했던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105년 전 오늘 미국 뉴햄프셔주의 항구도시 포츠머스에서 러·일 조약이 체결됐다. 당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 조약이 앞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이 피눈물 나는 역사의 시련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영원히 달라질 수 없다. 여전히 중국·러시아·일본에 둘러싸여 있다. 10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외교력이 일본·중국·러시아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역사는 외교가 때로는 총칼보다 위력적이며 외교 없이는 국가도 없다는 서늘한 현실을 말해준다. 국가 지도자는 물론 그 실무를 담당하는 외교통상부는 그 어깨에 국가의 안위와 미래가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평화가 공짜가 아니 듯 외교도 거저 이뤄지지는 않는다.



김정원 세종대 석좌교수·전 외교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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