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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이번엔 상식 있는 인사 볼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0.09.06 00:02 경제 4면 지면보기
태풍 곤파스가 남기고 간 상처가 깊습니다. 주말 올랐던 근교 산엔 뿌리째 뽑히거나 밑동께부터 부러진 나무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고, 길은 크고 작은 부러진 가지들과 떨어진 열매들로 덮여 길을 잘못 들어선 느낌마저 줄 정도였습니다. 걷는 데 불편함보다는, 쉽게 아물 것 같지 않은 상처에 마음 편치 않았던 게 저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겠지요. 나라 안은 인사파동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청문회 파동이 겨우 봉합되나 싶었더니, 갑자기 튀어나온 외교부 채용 특혜 논란으로 장관이 경질되고 감사가 확대되는 등 한바탕 후폭풍이 몰아칠 분위깁니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거나 이른 성묘를 하느라 주말 고속도로가 붐볐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마음이 고향으로 쏠리는 것, 사람이라면 갖는 보통의 마음,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겝니다. 인지상정 중에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교육·취업·결혼에 이르기까지 자신은 힘들어도 자식이 잘되는 길이라면 모든 걸 해주고 싶어하는 마음, 이걸 나무랄 사람은 없습니다. 자녀를 위한 사교육비를 아끼지 않고,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를 가고, 기러기를 감수하면서까지 조기 해외교육에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 교육관에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남들만큼 해줄 수 없는 부모 입장에서 부러움이나 질투의 대상이 될지언정-이 또한 인지상정입니다만-그럴 수 있겠다며 접어주는 건 교육에 대한 부모의 열정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일 겁니다. 취업도 마찬가집니다. 요즘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니 대학까지 뒷바라지해주고도 취업에 보탬 되는 것이라면 비용도 대주고 알음알음 일자리도 알아봐주고 하는 것을 과잉보호라며 핀잔 주기도 쉽잖은 일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자녀를 위한 일이라고 모든 걸 인지상정으로 덮을 순 없습니다. 상정(常情)이라는 본능적·이기적 마음을 사회적 틀 안에서 스스로 제어토록 잡아주는 힘이 ‘상식(常識)’입니다. 나한테 불편하게 느껴지는 법규라 해도 사회 성원으로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게 상식입니다. 설령 법규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해도 사회 상규(常規)로 미뤄볼 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는 것, 이게 상식입니다. 위장전입처럼 명백히 법으로 금지된 행위를, 자식을 위하는 마음에서라는 ‘상정’으로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상식이 없는 일입니다. 아직 전말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만 누가 봐도 상규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려운 채용을 감행-방관이라도 마찬가집니다-하는 것 자체가 상식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일반 서민이라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한 나라 최고위 공직을 맡거나 맡으려 했던 이들이 일이 드러난 뒤에도 ‘물의를 일으켜 죄송스럽다’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더욱 민망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몇몇 사안이 엄중한 이들에 대해 내정 철회든 사표 수리든 빠른 결론을 내린 것이 다행입니다. 이번에 드러난 여론을 계기로 보다 높은 요구수준에서 더욱 철저한 인사 검증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도 합니다. 국민들 정서의 아주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이번 파문이 남긴 상처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번번이 덧나온 상처가 다시 아물어도 불신이란 딱지는 더욱 두껍게 앉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런 걱정을 기우로 돌릴, 상식 있는 인사를 이번엔 정말 볼 수 있을까요.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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