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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환 장관 딸 특채 파문 … 불붙은 ‘공정한 사회’ 논쟁

중앙일보 2010.09.04 02:02 종합 4면 지면보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 파문으로 정치권을 중심으로 “공정한 사회론’을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깃발 든 사람 벌거벗으면 사람들이 깃발 보겠는가
행정고시 제도 바꾼 건 고려시대 음서제 부활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 등 8·8 개각에서 지명된 인사들이 낙마하는 과정에서도 그 잣대가 작용했다. ‘공정한 사회’를 향한 대통령의 의지는 여당으로도 확산됐다. 한나라당은 2일 성희롱 파문에 휩싸인 강용석 의원을 제명하고 횡령 혐의를 받는 민주당 강성종 의원의 체포동의안도 처리해 버렸다. 유 장관의 딸 문제는 이런 논란에 불을 붙였다.



원희룡, 홍준표(왼쪽부터)
민주당 박지원 비대위 대표는 3일 당 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부르짖는 대로 모든 국민에게 공정해야 공정한 사회”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원희룡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공정한 사회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끌어당기는 깃발인데 깃발 든 사람이 벌거벗고 있으면 사람들이 깃발을 보겠는가”라고 물었다. 원 총장은 “감정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합리적으로 다른 면은 없는지 살펴보고자 했던 것”이라며 “고심한 결과 특정인을 뽑았을 때 사회적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면 그 사람이 능력이 있든 없든 안 뽑는 게 맞다고 결론을 냈다. 그게 상피제(相避制)의 정신”이라고 했다. 상피제는 고려·조선시대에 일정 범위 내 친족이 연고가 있는 관청에 근무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특히 유 장관 딸 문제를 계기로 행정안전부가 최근 발표한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이 뜨거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선진화 방안의 골자는 내년부터 행정고시란 명칭을 없애고, 기존 고시처럼 필기시험 위주인 5급 공채와 각종 자격증과 학위를 가진 외부 전문가를 상대로 서류·면접을 보는 ‘5급 전문가 채용시험’으로 공무원을 채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외부 전문가 몫은 전체 선발 인원의 30%에서 시작해 2015년까지 50%로 늘린다는 게 행안부의 계획이었다.



당장 한나라당에서조차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자격증·학위·전문 분야 경력을 충족할 수 없는 지방이나 돈 없는 서민층 자녀가 소외될 수밖에 없지 않으냐”며 “공정한 사회의 기본이 기회 균등인데, 시작부터 이를 막는 방식의 공무원 선발제도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모의 계층적 차이가 자녀의 교육 격차와 ‘스펙’(구직자들 사이에서 학력과 학점, 그 외 관련 자격증 등 구비조건을 말하는 용어) 차이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직업 선택의 기회마저 박탈할 수 있다는 경고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상류층에 특혜를 주는) 고려시대 음서제가 부활하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반론도 적지 않다. 같은 당 신지호 의원은 홍·정 최고위원의 주장에 대해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일반화한 오류”라며 “현행 제도는 한 번의 고시 합격 여부에 따라 평생 이력이 보장된다. 기회 균등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중간중간에 공무원이 될 수 있는 복수의 문을 열어놓는 게 더 공정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박했다.



연세대 김성호(정치외교학) 교수는 “흑인을 우대하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소수자 우대정책)’으로 인해 일부 백인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만 미국 사회가 논의·토론한 뒤 그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라며 “이렇듯 공정한 사회는 ‘딱 이것’이란 게 있는 게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들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공정성에 대해 심각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정애 기자



◆음서제=고려·조선시대 귀족 또는 양반 자제를 시험 없이 관료로 채용하는 제도다. 일종의 특채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목종 당시 도입됐으며 5품 이상의 전·현직 관리의 자제를 대상으로 했다. 혈통을 중시한 신분제 사회의 속성을 반영한 제도다. 이와 대조적인 건 시험 성적에 따라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제다. 일종의 공채로 고려 광종 때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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