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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역사 속에 해답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탈출구

중앙일보 2010.09.04 00:51 종합 22면 지면보기
돌고 도는 것이라 해서 돈이라 한다죠. 한데 단순히 도는 것이 아닌 듯 합니다. 오히려 현실을 보면 돈을 중심으로 인간이, 세상이 돌아가는 맞지 싶습니다. 그 뿐입니까. 문화며 예술이라도 돈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번에 그 돈의 위력을 보여주는 책들을 골랐습니다. 세계 역사를 주무른 돈의 위력, 거기서 벗어나려는 개인의 노력을 보여주는 책들입니다.


‘미·중 양강체제, 언제 금갈지 모른다’40대 역사학자의 경고

금융의 지배

니얼 퍼거슨 지음, 김선영 옮김

민음사, 420쪽, 2만5000원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한창이던 지난해 봄, 한 하버드대 교수에게 언론의 관심이 모아졌다. 40대 중반의 젊은 교수가 당대 경제학계의 지존과 같던 폴 크루그먼 교수(프린스턴대)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일찍이 월가의 몰락을 예견해 2008년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은 크루그먼이다. 그런 그를 두고 “케인스의 노예가 공포를 조장한다”며 날을 세웠다. 준수한 외모에 경제학이 아닌 역사학 전공자란 이력도 눈길을 끌었다. 그가 바로 니얼 퍼거슨이다.



둘의 논쟁은 신문지면 상으로 이어졌다. 크루그먼이 뉴욕타임스 고정 칼럼을 통해 공격하면, 퍼거슨은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로 맞받아쳤다. 크루그먼은 그에 대해 “좋은 역사학자지만 경제학의 기본을 모른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퍼거슨의 생각은 달랐다. “모든 위기의 해법은 역사 속에서 나오며, 금융 역시 마찬가지”라고 역설했다.



이런 그의 생각을 담아 집필한 것이 이 책이다. 화폐가 어떻게 금속에서 탈피해 종이로 바뀌었으며, 신용은 언제부터 성장했는지, 향후 금융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등을 상세히 풀어 냈다. 특히 쑹훙빙이『화폐전쟁』에서 제기한 각종 음모론에 대해서도 영국인의 시각과 주류 학자의 입장에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유대계 금융 자본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동안 연방준비제도에 영향력을 행사해 세계통화를 좌지우지해 왔다는 게 쑹훙빙의 주장이었다. 가문의 이익을 위해 전쟁까지 불사했으며 이번 금융위기 역시 이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실은 이런 이야기처럼 흥미롭지 못하다”는 게 퍼거슨의 결론이다.



중국이 미국과 화합해 ‘차이메리카’로 갈 것인가, 아니면 대립각을 세워 신화 속 괴물 ‘키메라’로 갈 것인가는 세계사적 관심거리다. 사진은 5월 15일 중국 상하이 증권가에서 있은 청동황소상의 제막식 장면. 이 황소상은 뉴욕의 월 가에 있는 동상을 본뜬 것으로 떠오르는 중국 증시의 야망을 상징한다. [중앙포토]
물론 로스차일드가 나폴레옹 전쟁 등을 거치면서 큰 돈을 번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쑹훙빙의 말처럼 투기와 조작만으로 얼룩진 치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음모론은 상당 부분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흘린 루머 탓이라고 했다. 실제로 나치의 선전책임자 요제프 괴벨스가 출판을 허락한 『디 로트실트(Die Rothschilds)』를 보면 로스차일드가 영국의 승리를 위해 프랑스 사령관을 매수했다는 대목까지 나온다. 그런 다음 런던엔 영국이 고의로 패했다는 역정보를 흘려 시장에 쏟아져 나온 영국 채권을 헐값에 쓸어담았다는 것이다. 나치는 이런 루머를 통해 국제적으로 출세한 유대 가문을 비윤리적 집단으로 몰아세우려 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한편 퍼거슨은 앞으로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역사 속에 답이 있다고 했다. 위기가 닥치기 전만 해도 미국과 중국은 환상의 커플로 보였다. 동쪽에서 저축을 하면 서쪽에선 소비를 했고, 서쪽에서 채권을 발행하면 동쪽에서 사줬다. 동쪽의 싼 수출품 덕분에 서쪽은 인플레이션을 낮췄고, 동쪽의 풍부한 노동력은 서쪽의 임금비용을 내렸다. 이 두 나라는 사실상 한 몸을 이룬 소위 ‘차이메리카(Chimerica)’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사자 머리에 염소 몸통, 용 꼬리를 가진 신화 속 괴물 ‘키메라’일지 모른다는 게 저자의 우려다. 100년 전 처음 세계화가 진행됐던 시기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영국과 가장 역동적인 산업화 지역 독일이 공생과 반목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했던 것이다. 그러다 급기야 1914년 사라예보 암살사건이 터지면서 둘의 관계는 1차 세계대전이란 파국을 맞았다. 저자는 지금의 양강체제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라고 경고했다. 천연자원 경쟁, 상품가격 폭등, 대만·티베트 문제 등 어느 것이라도 도화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금융사를 통해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한다. 갈등 없이 지낸 평화시기가 길어질수록 위기에 대한 감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이는 위기를 맞았을 때 더 심각하게 무너지는 법이다. 현재 미국 금융업계 최고경영자의 평균 경력은 25년 정도. 아무리 오랜 기간 월가에 머물렀다 할 지라도 사상 초유의 원자재가 상승이 있었던 1983년 석유파동을 직접 기억하는 이는 없는 셈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앞두고 어떻게 월가가 근거 없는 낙관론에 젖어 있었는지, 그리고 위기 직후 어쩌면 그토록 급격히 붕괴됐는지 설명이 되는 대목이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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