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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법률 지식, 정교한 구조 … 판사의 돋보이는 이야기 솜씨

중앙일보 2010.09.04 00:31 종합 27면 지면보기
“현직 판사가 아니라 신인작가로 평가 받았으면 합니다.”


도진기 헌법재판소 연구관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붉은 집 살인사건』(들녘) 등 추리소설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를 낸 도진기(43) 헌법재판소 연구관의 소망이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활약하는 판사 출신의 고진 변호사와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반장 이유현 콤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탄탄한 법률지식에 정교한 트릭 구조를 갖춘, 꽤 수준 높은 추리물이다.



“중학생 때 학교 도서관 책을 거의 모두 읽었을 정도로 독서광이었죠. 공부 때문에 한동안 책과 멀어졌다가 지난해부터 지하철 출퇴근 시간에 일본의 추리소설을 100권 이상 읽어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더군요.”



그는 『백야행』의 히가시노 게이고, 『점성술 살인사건』의 시마다 소지,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 등을 좋아한다고 했다. 수수께끼를 놓고 독자와 작가가 머리싸움을 하는 구조가 지적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어 집필을 시작한 것이 지난해 겨울. 그의 취향 대로 트릭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정통 추리물이다. 코난 도일의 추리 고전에 나오는 ‘홈즈-왓슨 콤비’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하고 여기에 살을 붙여가는 식이었는데 좋아서 하다 보니 하루에 200자 원고지 180매를 쓴 일도 있어요.”



정식으로 문학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그로서는 대단한 일이다. 올 초 한국추리작가협의회 신인상을 받아 ‘계간 미스터리’ 여름호에 단편 ‘선택’이 실리며 정식 작가로 등단했다.



“장편은 자신이 없었는데 아내가 『붉은 집 살인사건』원고를 밤새워 읽는 것을 보고 출판사와 접촉했죠.”



탄력이 붙어서인지 세 번째 작품은 이미 집필에 들어갔고, 네 번째 작품도 구상을 마쳤단다. 트릭 관련 아이디어만 해도 40~50개가 있다고. 풍부한 아이디어를 반영하듯 『붉은 집 살인사건』에는 크고 작은 트릭이 겹쳐 있다. 3대에 걸쳐 4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하나 하나가 의문을 자아낸다. 하지만 작품의 모티브인 ‘살인유전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독자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디어를 채택할 때는 무엇보다 개연성을 중시합니다. 노래 잘 하는 부모의 자녀가 노래를 잘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정도로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도 판사는 신인상 공모에서 ‘장차 정통 추리작가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평을 받았다. 그가 한국추리소설의 지평을 넓혀갈지 주목된다. 남의 죄를 재단해야 하는 직업상의 이유로 얼굴 공개는 꺼렸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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