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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마이클 잭슨 “함께 춤추게 돼 영광이에요, 헬린”

중앙일보 2010.09.04 00:28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팝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주최한 파티 장. 음악을 즐기며 리듬을 타고 있는 헬린 필립스에게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다짜고짜 다가와 물었다. “당신이 헬린인가요?” 아들뻘 되는 톱스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네, 그런데요” 하고 짧게 대답하자, 팀버레이크가 두 눈을 반짝이며 외친다. “아아, 드디어 만났군요!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뭔가요? ‘댄스의 신’ 정도 되는 거예요? 댄서들이 온통 ‘헬린, 헬린, 헬린’ 해댄다고요!”



LA중앙일보=이경민 기자

사진=백종춘 기자



댄서이자 안무가인 헬린 필립스(Helene Phillips·53)의 존재감은 이 정도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셀린 디옹, 핑크, 어셔 등 웬만한 수퍼스타들의 콘서트 무대를 책임지는 안무가나 댄서들 중엔 백이면 백 그녀의 제자들이 있다. 댄서들의 대모, 안무가들의 우상인 그녀는 쉰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후배를 양성한다. “리듬이 변하고 템포는 달라져도 춤에 대한 내 열정만은 언제고 변함없다”는 ‘춤꾼 중의 춤꾼’ 헬린 필립스를 만나, 댄서로 살아 온 50여 년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헬린은 자신이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춤을 췄다. 다섯 살 때부터 전문적인 춤 트레이닝을 받으며 UCLA 댄스 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성장은 빨랐다. 워낙 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주 6일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춤 연습만 했어요. 끝나면 또 클럽에 가서 새벽 2시까지 신나게 춤을 췄죠. 힘들단 생각은 없었어요. 춤추는 게 그저 즐거웠거든요.”



헬린의 경력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버라이어티쇼 ‘솔리드 골드(Solid Gold)’의 고정 출연으로 이어졌다. 여기서부터는 탄탄대로였다. ‘솔리드 골드의 헬린’이라고 하면 모두가 끔뻑 죽었다. 덕분에 뮤지컬 영화의 고전 ‘코러스 라인’을 시작으로 ‘스테잉 얼라이브’ ‘파파스 에인절’ 등의 영화나 TV 시리즈, 각종 광고의 안무를 맡는 기회를 잡았고 존 트래볼타, 마이클 더글러스 등과 어울려 일을 했다. 춤으로 에미상도 받고,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의 안무도 맡았다.



댄스계에서 그녀는 ‘특A급’이었다. 모두들 그녀와 일하고 싶어 했다.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이클 잭슨과 헬린은 1986년 영화 ‘캡틴 이오(Captain EO)’에서 만났다. 뮤직비디오 형식의 영화인 ‘캡틴 이오’는 17여 분짜리 짧은 영상이지만 조지 루커스가 제작하고 프랜시스 코폴라가 감독했을 만큼 ‘대작’이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3D 영화이기도 했다. 헬린이 영화에서 맡은 일은 조안무(Assistant Choreographer). 현장에서 가장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위치다. 영화 작업 내내 헬린은 마이클 잭슨과 몸으로 대화했고 땀으로 교감했다.



“잭슨은 정말 수줍음이 많은, 하지만 너무나도 순수하고 지적이고 열심히 하는 최고의 아티스트였어요. ‘순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나 할까요?”



아무리 날고 기는 댄서였지만 수퍼스타 마이클 잭슨과 함께 작업하게 됐다는 데 적잖이 설렜던 헬린에게 마이클 잭슨은 먼저 다가와 “‘솔리드 골드’의 댄서였죠? 함께 하게 돼서 너무너무 영광이에요” 하며 흥분했었다고.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요. 안무를 구상하기 위해 음악에 맞춰 일단 자유롭게 춤을 춰보자고 했더니 ‘난 헬린 춤을 따라 추겠다’며 저를 그대로 따라 했죠. 수퍼스타였지만 정말 겸손하고 따뜻했어요. 항상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면 언제든 얘기해줘요’ 하는 스타일이었죠.”



비록 카메라 뒤 스타의 그림자 역할이지만 가끔은 그들을 어르고 달래기도, 친구나 선생님, 컨설턴트가 되기도 해야 한다. 마이클 잭슨과도 그랬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캡틴 이오’를 녹화하던 중간, 마이클 잭슨은 헬린에게 다가와 “음악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어쩔 줄 몰라했다. 문제는 스피커였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현장 음향시설을 최소화하다 보니 충분히 음악에 빠져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던 잭슨을 달래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수밖에 없었던 헬린은 잭슨에게 일종의 ‘쇼’를 제안했다.



“다음 테이크에 들어가자마자 춤을 추지 말고 그냥 멈춰서요. 그러고는 ‘음악이 느껴지지 않아요! 더 이상 못하겠어요!’라고 소리쳐 봐요” 잭슨은 아이같이 겁을 냈다. “정말요?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나만 믿어요. 그냥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두 사람의 게임은 시작한 지 2분 만에 성공했다. 잭슨이 춤을 멈추고 음향에 대해 불평을 하자 혼비백산한 스태프들이 콘서트 수준의 사운드로 촬영을 할 수 있게 온갖 장비를 공수해 온 것이다. 덕분에 잭슨의 춤은 한층 근사해졌고 두 사람 사이는 더욱 친밀해질 수 있었다.



또 다른 수퍼스타인 마돈나는 마이클 잭슨과는 퍽이나 다른 스타일이었다. 헬린은 마돈나와 ‘후스 댓 걸(Who’s That Girl)’ 월드투어를 함께 했다.



“(마돈나는) 매 초, 모든 박자에 완벽한 움직임을 안무해 줘야 하는 스타일이에요. 정말 열심히 연습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는 건 싫어하죠. 어떻게 보면 나르시스틱하다고나 할까요? 현장에서는 ‘모두 내 말을 따라라’ 하는 식이에요. 저한테만은 퍽 많이 의지했죠. 새벽 3시에 갑자기 전화해서는 ‘나 머리가 너무 아파. 어떻게 해야 해?’ 하는 식이었어요.”



현재 헬린은 전문 댄서들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주는 ‘마스터 클래스’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춤을 가르치는 데 있어 그녀의 철학과 기술은 많은 후배들에게 새로운 발전과 영감의 기회를 주고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의 댄서인 낸시 앤더슨, 한국계 입양아 출신으로 셀린 디옹·셰어·마돈나 등과 일하고 있는 애디 영미 등이 대표적이다.



그녀가 강조하는 것은 대략 세 가지 정도. 음악, 발레, 자신만의 스타일 찾기다.



먼저 음악. 춤을 제대로 추기 위해선 먼저 음악과 완전히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게 그녀의 신념이다.



“전 세상 그 누구, 그 무엇보다도 음악과 가까워요. 항상 춤을 시작하기 전에 아주 조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음악을 들어요. 그러면 음악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죠. 그 느낌을 잡아야 합니다. 거의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까지 반복하곤 하죠.”



모든 춤을 가르치기에 앞서 댄서들의 발레 기본을 탄탄히 하는 데도 총력을 기울인다.



“모든 건 발레에서 시작됩니다. 발레가 첫째이자 기본이 돼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기초 없는 바닥에 집을 짓는 거나 마찬가지죠. 재즈도, 힙합도, 탭도 발레의 기본 위에 뿌려져야 하는 ‘양념’입니다.”



댄서들에겐 항상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섹스어필만 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성별을 취해서 내 몸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라고 강조하죠. 다른 누구처럼 춤 추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 춤을 춰야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외모나 스타일 등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도 신경을 쓰라고 가르친다.



“키가 작아도 커 보이게 옷을 입는 법, 땀을 많이 흘리고 나서도 흉해 보이지 않는 헤어스타일 같은 것까지 챙겨줘요. 스모 선수에겐 육중한 몸집이 필요하듯이, 댄서들에게도 적절한 외모나 스타일은 직업적 필요조건이거든요.”



그는 자신이 트레이닝시킨 댄서들의 역량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쇼도 직접 제작하고 있다. 내년에 싱가포르 ‘크리스털 파빌리온’에서 막이 오를 예정이다. ‘제2의 태양의 서커스’ 수준은 되고도 남을 것이라며 자신감에 차 있다.



아직 한국 가수나 댄서들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8월 LA 지역에서 열린 ‘2010 할리우드 댄스 캠프’를 계기로 만난 한국인 전문 댄서나 댄서 지망생들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줄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타고난 댄서’들을 어려서부터 트레이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만큼 자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기본과 준비를 갖춘 학생이라면 아주 짧은 시간, 한두 번의 레슨으로도 그 수준을 껑충 높여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춤은 타고 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트레이닝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는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춤으로 먹고살 수 있는 정도까지 되긴 힘들죠. 하지만 좋은 댄서가 되고 싶단 꿈을 절대로 포기하진 마세요. 전 누구든 ‘못하겠다’ ‘힘들다’ 하면 당장에 ‘넌 해고야!’라고 하며 잘라 버린답니다. 하하”



그녀는 한국의 댄서 지망생 후배들에게 댄서로서의 자부심을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톱스타나 모델들은 댄서들보다 훨씬 적게 일하고도 더 많은 돈과 유명세를 얻죠. 하지만 그들에게 우리 같은 댄서는 또 다른 우상이자 동경의 대상이랍니다. 이 점을 잊지 말고 항상 우리가 ‘최고’라는 생각을 갖고 일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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