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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속임수로 얻은 빵에 맛들이면 모래 씹을 날이 온다

중앙일보 2010.09.04 00:23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이 땅의 백성들은 또 한번 씁쓸함을 맛봐야 했습니다. 저 높은 곳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의 도덕성이 저 밑바닥 시궁창을 기고 있다는 사실을 또 한 차례 확인했으니까요. 낮은 곳에서 하루하루 바듯한 삶을 살면서도 혹여 구정물 묻을까 몸 사리던 소시민들은 배신감보다 더 큰 좌절감을 느껴야 했지요. 남다른 이력의 젊은 총리 후보자는 좀 나아서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 돼줄까 했더니, 허물 한 가지를 더 보태는 걸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거짓말 말입니다.



본인은 좀 억울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굴 탓할 것도 없겠습니다. 호메로스의 말대로 “죄악에는 허다한 도구가 있지만, 그 모든 것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게 거짓말”이니까요. 뭔가 숨기고 싶은 사실이 있으니 거짓말도 나온 게 아니겠느냔 말입니다. 아니면 17세기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코르네유가 훈수한 것처럼 “거짓말쟁이가 되려면 좋은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는 진리를 염두에 두었던가요. 자꾸만 말이 바뀌면 별것 아닌 거라도 별것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코흘리개 아이가 거짓말을 해도 회초리를 드는데, 한 나라의 정승이 되겠다는 사람의 거짓말을 허투루 넘길 수는 없겠지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말년운에 망신살이 끼인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블레어 총리가 어떤 사람입니까. 마흔한 살에 최연소 노동당 당수가 되고, 마흔네 살에 20세기 최연소 총리가 된 인물입니다. 이후 총선에서 세 번 연속 승리해 10년이나 다우닝가 10번지에 살았습니다. 지하철 타고 출근하는 참신함으로 기대를 모았고, 좌우를 모두 아우르는 제3의 길을 주창해 비전과 결단력을 가진 ‘영국의 케네디’란 찬사를 받았었지요.



하지만 거짓말 하나가 모든 걸 산산조각 냈습니다. 2002년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에 관한 영국 정부의 판단’이란 보고서가 문제가 됐지요. 거기에는 나중에 주워담을 수 없는 거짓말이 들어 있었습니다. 블레어가 보고서 머리말에 “이라크가 명령 하달 후 45분 내에 사용 가능한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다”고 했던 거지요. 이 문장은 결국 거짓으로 판명이 났고, 사람들이 블레어를 신뢰할 수 없는 증거가 됐으며, 블레어(Blair)를 ‘블라이어(Bliar)’라고 놀리는 구실이 됐습니다. 블레어의 전기작가 앤서니 셀던은 이렇게 쓰기까지 했지요. “블레어는 모든 사람과 친구인 지도자로 시작해 영국에서는 거의 아무런 친구도 없는 사람으로 끝났다.”



거짓말이란 게 그만큼 치명적인 겁니다. 커다란 코를 가졌기에 쉽게 눈에 띌 수밖에 없고, 짧은 다리를 가졌기에 멀리 달아날 수 없는 게 거짓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억력을 가졌더라도 거짓을 숨겨서 멀리 도피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더욱 다치듯, 지위가 높을수록 거짓말의 대가는 클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지만 거짓말이 더 위험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입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재미있는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두 유대인이 거리에서 만났습니다. 한 사람이 묻습니다. “어디 가니?” 다른 사람이 대답합니다. “크라코비아.” 그러자 질문한 사람이 버럭 화를 냅니다. “이런 거짓말쟁이! 너는 지금 크라코비아에 가면서 나로 하여금 람부르크에 간다고 믿게 하기 위해서 크라코비아에 간다고 하는구나. 왜 그런 거짓말을 하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남들도 자신처럼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들을 믿을 수 없게 되지요. 지도자가 아랫사람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떠한 현명한 조언도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요. 히틀러가 그랬잖아요. 자신이 거짓말쟁이다 보니 주위 사람을 믿지 못했습니다. 1940년 5월 히틀러는 폭풍처럼 전진하던 전차부대의 진격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부하 장군을 믿지 못했던 거지요. ‘전격전(Blitzkrieg)’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구데리안 장군은 섬멸을 눈앞에 뒀던 영불 연합군이 됭케르크 항구를 탈출하는 기적을 닭 쫓던 개처럼 바라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18세기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리바롤 같은 사람은 “신뢰하는 사람에겐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순간 그를 믿지 못하게 된다”고 말이지요. 하물며 백성에게 거짓말을 하다니요. 절대 그러지 마십시오. 당장 아플 순 있어도 정직 이후의 길은 평탄합니다. 달콤한 거짓말은 하는 순간이 절정이지요. 이후에는 추락하는 일만 남아있습니다. 성경 말씀 한마디 외워두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속임수로 얻어먹은 빵에 맛들이면 입에 모래가 가득 들어갈 날이 오고야 만다.”



이훈범 중앙일보 j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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