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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아프간 안정, 오바마 특사에 달렸다

중앙일보 2010.09.04 00:21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길에 들어서는 것은 쉽지만, 발을 빼기란 그렇지 않다.’ 지금 미국에 딱 어울리는 격언이다. 미국은 3개 전쟁을 치르느라 허우적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및 테러와의 전쟁은 어쩔 수 없이 발을 담갔다. 이라크 전쟁은 이상과 자만심에 눈이 멀었던 미국 정부가 불필요하게 시작했다. 아프간이건 이라크건 미국이 군사적 승리를 쟁취할 것 같지는 않다. 이뿐만 아니라 전비(戰費)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왔고, 안방의 정치적 지지도 시들해지는 판국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은 철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철군으로 미국과 동맹국·서방이 치르게 될 대가에 대해서는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라크에선 미군 최후의 병력이 철수했다.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취했는데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이 얻은 것은 불안한 국내 입지뿐이었다. 그동안 미국은 긴급한 정치 현안에 많이 개입했다. 시아파와 수니파를 비롯해 쿠르드족과 아랍권, 이라크 바그다드와 다른 지역의 권력 분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해법은 도출되지 못했다. 이라크는 여러 민족·종파로 구성된 국가다. 특히 이라크는 인접국의 상충하는 이해관계에 얽혀 전장(戰場)이 될 수 있는 위협을 받고 있다. 수니파를 대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의 이란이 걸프만의 헤게모니를 놓고 다투면서 이라크가 내전을 포함한 전쟁터로 바뀔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시리아와 터키도 즉각 개입할 것이다. 미국의 철수로 생긴 ‘진공 상태’가 폭력으로 번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프간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이라크 상황과 정반대다. 아프간은 민족·종파는 단순하지만 국가로서 정체(政體)를 갖추지 못했다. 이곳에선 분리주의가 위협으로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로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가 지금 아프간에서 목격하는 것은 단순한 내전이 아니다. 아프간 내 동맹 세력을 통해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인도·중앙아시아 국가들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싸움에 휘말려 들고 있다. 원래 아프간의 전쟁은 소련의 ‘붉은 군대’와 맞선 해방 운동이었다. 그러다 내전으로 변하면서 90년대 중반부터 파키스탄이 아프간의 탈레반과 전략적으로 깊숙한 관계를 추구하면서 인도·파키스탄 분쟁과도 관련을 맺게 됐다. 이어 2001년의 9·11 테러로 아프간은 글로벌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앞으론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까. 지역 분쟁과 이슬람 테러가 끝없이 되풀이될 것인가. 아니면 예기치 못한 반전이 나타날 것인가.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아프간에서 진퇴양난에 처하고 말았다. 확고하게 남는다고 할 수도 없고, 떠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종종 잊혀지는 사실이 있는데 미국이 89년 소련의 퇴각 이후 한때 아프간에서 사실상 발을 뺐다는 것이다. 12년이 지나 9·11 테러가 터졌다.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은 다시 아프간으로 돌아와 알카에다·탈레반과 싸움을 벌였고, 이 나라를 이슬람 테러리즘의 번식지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90년대가 주는 교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무시하기엔 너무 중요한 교훈이다. 그런데도 서방 당국자들은 이를 무시하려 한다. 유럽에선 하루라도 빨리 발을 빼려 하고, 미국도 따르려 한다.



미국이 아프간의 정체 확립을 위한 적절한 전략을 갖지 못한 채 군사적 수단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었다. 올 초 런던의 회의에서 합의된 아프간 자립화 계획은 자체 보안군을 육성한다는 것인데 현지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과 유럽의 철수 계획에 맞춰 이뤄진 프로그램이었다. 미국과 나토가 최소한의 안보 장치를 구축해 놓지 못하고 빠질 경우 위험한 이슬람주의자들이 다시 득세할 것이고, 이는 90년대보다 더할 것이다. 서방은 아프간 철수를 원하고 분명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아이러니가 있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밀고 나가면서 서방이 새롭고 더 위험한 분쟁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이 안정되려면 근본적으로 파키스탄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 작업에 탈레반이 끼어들게 하면 안 된다. 탈레반은 파키스탄과 협상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아프간 해법의 열쇠는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 있다. 아프간의 수도 카불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파키스탄 특사로 파견한 리처드 홀브룩이 현지 사령관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장군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희망은 있다.



ⓒProject Syndicate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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