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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 꿈 키워준 음악감상실 주인 보은의 무대 초대받아 ‘고향 찬가’

중앙일보 2010.09.04 00:08 종합 32면 지면보기
“기회를 주니 정말 고맙지. 잘해야 할 텐데….”


국내 1호 음악감상실 녹향
65년째 운영하는 이창수씨

지난달 31일 대구시 화전동에 있는 음악감상실 녹향에서 이창수(왼쪽)씨가 박영호 대구시립합창단 예술감독의 반주에 맞춰 ‘대구시민의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대구의 음악감상실인 ‘녹향’의 주인 이창수(88·대구시 화전동)씨는 설레는 표정이었다. 최근 찾은 음악감상실에서 그는 혼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팔공산 줄기마다 힘이 맺히고…’‘ 대구시민의 노래’다. 그는 요즘 하루 10여 차례씩 이 노래를 연습한다. 음악회가 멀지 않아서다.



이씨는 4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2010 대구음악제’ 무대에 선다. 그가 출연하는 행사는 ‘코러스 인 대구’라는 주제의 합창제다. 이씨는 독창으로 대구시민의 노래 1절을 부른다. 2절은 20명의 어린이합창단과, 3절은 300명의 대구연합합창단 단원과 함께 부를 예정이다. 반주는 50명으로 구성된 대구 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맡는다. 올해 29회째인 이 행사는 대구의 대표적인 음악축제다. 그를 무대로 불러낸 사람은 박영호(51) 대구시립합창단 예술감독이다. 박 감독은 얼마 전 음악감상실에서 이씨가 ‘대구시민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목격했다. 이씨는 “참 좋은 노래인데 불리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마침 합창제를 준비하던 박 감독은 이씨에게 출연을 제의했다. 대한민국 제1호 클래식 음악감상실 주인이라는 점이 초청 이유다.



이씨가 녹향의 문을 연 것은 1946년 10월이다. 이곳은 6·25전쟁이 나면서 명소가 됐다. 화가 이중섭(1916∼56)과 시인 유치환(1908∼67)·조지훈(1920∼68)·박목월(1916∼78) 등 피란 문인과 예술인들이 찾았다. 그 뒤에는 예술을 추구하는 학생들이 드나들었다.



박 감독은 “나를 비롯한 많은 음악인이 학창시절 녹향에서 꿈을 키웠다”며 “한평생 ‘문화의 텃밭’을 지켜온 그에게 예술인으로서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해방 전 대구역 앞에서 악기사 점원으로 일하면서 클래식에 빠져 들었다. 혼자 노래 연습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도 고려했다는 게 박 감독의 설명이다. 그가 무대에 서면 많은 사람이 힘과 용기를 얻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이씨는 나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맑은 목소리에 고음처리도 능숙하다. 웬만한 젊은이 못지 않게 호흡도 긴 편이다. 이날 음악회에는 1000여 명의 관객이 찾을 예정이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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