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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한국인 직원, 채 1%도 안 되죠 … 국제기구서 일하려면 글 잘 써야 해요”

중앙일보 2010.09.04 00:03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하는 신수경(63·사진)씨는 직함이 두 개다. 본업은 정보기술 선임 팀장(Senior Information Technology Officer). 1971년 IMF에 입사한 뒤 30년 이상 줄곧 IT분야에서 일해 왔다.


신수경 국제통화기금 의전관 / 신병현 전 부총리의 딸

둘째 임무는 IMF 및 세계은행 연차 총회의 의전관(Social Protocol Officer)이다.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참석하는 총회의 각종 부대 행사를 책임진다. 각국 정상,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의 오찬·만찬과 부대 행사 및 배우자를 위한 문화·사회 프로그램을 짜는 일이다. 의전관을 겸직한 지는 20년이 넘었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 덕에 그는 대통령이나 국왕 등 국가원수급 VIP가 참석하는 행사의 국제 의전 전문가이자 IT전문가로 꼽힌다. 지난달 30일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대회가 열린 부산에서 그를 만났다.



● 의전관은 어떻게 맡게 됐습니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표단 참가 등록을 일일이 손으로 했지요. 그러다 참가 등록을 자동화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어요. 85년 한국이 연차 총회를 개최하게 됐는데, 한국 정부와 IMF 간의 통역을 맡으면서 총회 업무를 알게 됐습니다. 의전관은 보통 겸직을 하는데, 88년부터 제가 맡았어요. 전임자 두 명 모두 각각 25년씩 이 일을 했고, 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 남다른 애정이 있었나 봅니다.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1955년 터키에서 열린 연차 총회에 아버지(고 신병현 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가 초대 한국 대표단으로 참석했어요. 제가 초등학생이었는데, IMF가 뭔지는 몰라도 아버지가 보여줬던 이국적인 분위기의 사진들이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것 같습니다.”



● 의전의 성공은 어떻게 판가름합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여기서 통해요. 총회가 끝나고 각국 담당자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으면 행사가 성공했다는 뜻이에요. 그 나라 장관이나 은행 총재가 불편을 겪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컴플레인이 들어옵니다.”



● 컴플레인을 받은 적도 있겠네요.



“94년 스페인 총회 때로 기억해요. 각국 장관들이 부부 동반으로 문화공연을 보는 일정이었어요. VIP를 모시고 30분 전에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다른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현지 담당자와의 소통에 착오가 있었던 거예요. VIP들을 밖에 세워놓고 한참이 흘렀고 결국 일부는 뒷길, 옆길로 안내해 겨우 들어갔어요. 각국에서 컴플레인 편지가 왔습니다.”



● 에피소드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부 동반 만찬에 장관 부인이 갑자기 못 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특히 헤드 테이블은 홀수가 되면 분위기가 깨지기 십상이에요. 그럴 때면 제가 장관 부인 자리를 대신 메웠어요. 화제의 흐름을 잘 타면서 매끄럽게 만찬을 마치면 그제야 안도했어요.”



그는 중학교 2학년 때인 1961년 아버지가 주미 대사관으로 발령이 나면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메릴랜드대에서 회계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71년 프로그래머로 IMF에 입사했다. IMF는 가족이 근무하고 있으면 다른 가족은 입사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친족이나 혈연을 우대하는 네포티즘(연고주의)을 막기 위한 제도인데, 당시 언니가 IMF에서 일해서 전 다른 길을 가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언니가 한국으로 시집오면서 그만두게 돼 제가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IMF에서 인생의 반려자도 만났다. 그리스계 미국인인 그의 남편은 IMF 유럽지역 부문에서 일했고, 그리스 대표를 마지막으로 4년 전 은퇴했다. 슬하에 3남1녀를 뒀다. 신씨를 유난히 아꼈던 아버지는 딸이 외국인과 결혼한다고 하자 처음엔 무조건 반대했다.



● 아버지를 설득했나요.



“사람은 좋은데, 여성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그 나라 문화나 사고방식을 잘 모르니, 불안해서 결혼시킬 수 없다고 아버지가 그래요. 그래서 제가 따졌어요. 아버지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가르쳐 놓고 이제 와서 차별하느냐고. 결국 부모님 허락을 얻어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리스 문화나 가족제도가 한국과 비슷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 어떤 점에서요.



“남편은 제가 집에서 애 보길 원했어요. 시어머니가 육아에만 전념했듯, 엄마가 직접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믿었죠. 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이들에게 쏟느냐보다 ‘퀄리티 타임’이 더 중요하다고 맞섰어요. 아이들에겐 우울한 엄마보다 즐거운 엄마가 더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고 설득했더니 제 말을 들어줬어요.”



● 일과 가정의 균형을 어떻게 맞췄나요.



“회사가 유연하게 근무여건을 조정해 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아이들이 건강한 것도 큰 도움이 됐고, 다른 엄마들처럼 숙제를 봐주지 못했지만 공부를 알아서 잘해 준 게 고마워요. IMF에서 일한 39년간 모두 세 번 휴직하고, 1년은 파트타임으로 근무했어요.”



● 일하는 여성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아직도 남자의 세상이기 때문에 여성이 자기 능력을 입증해 보이려면 남자보다 일을 조금씩 더 해야 해요. 물론 일부러 잘난 체하면 안 좋게 보이겠지요. 하지만 팀으로 일할 때 ‘메인 플레이어’로 앞장서서 일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해요. 필요에 따라서 아량을 베풀 줄도 알아야 합니다.”



● 국제기구에서 일하길 원하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능력 있는 분들이 국제기구에 더 많이 도전하면 좋겠어요. 한국의 경제규모에 비해 국제기구 직원은 아직 소수입니다. IMF의 정규직원 2500명 가운데 한국인은 20명이 채 안 돼요. 그중 여성은 3명이고요.”



● 한국인들이 보완해야 할 점은요.



“요즘 젊은 분들 워낙 똑소리 나잖아요. 특별히 부족하달 건 아니지만, 글쓰기 능력은 좀 키워야 할 것 같아요. 국제기구에서 일하려면 글을 잘 써야 합니다. 매사에 리포트를 써야 하는데,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글로 표현하는 게 부족하면 능력을 드러내기 어려워요. 예를 들어 한국인보다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데도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언어 문제가 없으니까 제대로 대접받는 측면도 있습니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신수경 IMF 선임 IT팀장



●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감



● 70년 메릴랜드대 졸업(회계학·경제학 전공)



● 71년 IMF 입사



● 76년~ 선임 IT팀장



● 88년~ 총회 의전관 겸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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