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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황세손 이구 - 유위진 회장이 주고받은 90여 통 편지

중앙일보 2010.09.04 00:03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마지막 황세손 이구와 유위진 회장의 애틋한 로맨스는 ‘연서(戀書)’에 절절히 녹아 있었

다. 둘이 주고받은 90여 통의 편지와 엽서를 가 찾아 처음 공개한다. 그들에게 ‘시공(時

마흔 살 황세손에게 찾아온 사랑 … 편지 말미엔‘LOVE 玖(구)’‘LOVE K

空)의 벽’이란 건 없었다. ‘구(玖)’와 ‘진(珍)’이란 필명으로 오간 편지들. 구는 터키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보스포러스 야경 앞에서도 오로지 먼 타국에 있는 진을 사무치듯 그리워했다. 진은 재회의 날을 손꼽으며 ‘죽음의 장소라도 찾아가겠다’고 갈구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김준술 기자 olive@joongang.co.kr



편지 1. 유위진 회장이 황세손 이구에게 1980년 2월 1일 보낸 편지의 일부.
편지 1.(좌측 사진)



『사랑하는 구.



얼마 전 오랜만에 당신 꿈을 꿨어요. 역시 당신도 나를 그리워하는구나 싶었어요. 사랑하면서도 서로 떨어져 모든 감정을 누르고 일에 열중하는 당신을 보면서 2월 15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꾹 참고 방해를 하지 말아야죠. 그래도 2월 16일에는 당신께 갈 거예요. (중략)



나는 당신을 믿고 지구 끝까지 따라갈 거예요. 그런데도 요즘은 가끔씩 불안하고 짜증도 나고. 우리가 이렇게 떨어져 있어도 되는 건가 하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어요. 당신도 짜증나는 것 아니에요? 당신은 수양을 쌓은 분이니까 인내심이 강한 걸까요. 나는 못 참겠어요. 구. 진을 살려주세요.



당신 없는 세상에서 진은 살아갈 수 없답니다. 구, 부탁이에요. 편지 써주세요.



80년 2월 1일, Love 진』





편지 2. 황세손 이구가 유위진 회장에게 보낸 편지. 연도 미상.
편지2.(우측 사진)



『(중략) 어제 아파트 계약을 마쳐 마음이 편해요. 실내에 고칠 곳이 있어서, 카펫은 진이 올 때까지는 집에 넣어둘 생각입니다.



방이 많은데, 진도 자기 방이 있는 게 좋다 싶어요. 만약 손님이 오더라도 이틀 정도는 재워줄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방이 매우 넓어요. 40평이고, 그중 약 20평이 객실·식당·부엌이 있는 정도예요. 벽지는 진이 와서 마음에 드는 걸로 다시 칠해도 될 것 같고, 침실 벽지는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써야 할 것 같아요. 어제 가까운 이탈리아 요리집에 가봤는데, 내가 만든 링귀니가 더 맛이 있네요. 그래도 가게 실내 인테리어는 좋았어요. 미국인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 미인이 있더라고요. 엄청 많이 파인 드레스를 입고 있었어요. 알몸은 어떨까 상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요.



8월 18일(연도 미상) Saran Hae(‘사랑해’를 영어로 표기한 것) 구』



사랑에 빠진 황세손은 아기자기했다. 편지 말미엔 꼭 ‘LOVE 玖(구)’ 와 ‘LOVE K’ 같은 이니셜을 넣었다. 소년 같은 천진한 모습도 보였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 보낸 엽서엔 직접 빨간색 펜으로 ‘하트 문양’을 그려넣어 마음을 전했다.



유위진 회장의 편지는 더 간절했다. 1980년 2월에 보낸 편지의 일부다. “오늘 아침 5시, 당신 꿈을 꾸고 잠에서 깼어요. 당신의 행복, 불행이 나의 것이며, 당신이 계신 곳에 내가 가길 원합니다. 나는 그곳이 죽음의 장소라도 당신을 찾아갈 거예요.” 같은 달에 보낸 다른 연서도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났다. “이런 토요일 밤이 되면 너무나 당신이 보고 싶어서. 정신이 없어져요. 오늘 밤도 흰 눈이 내리고 있어요. 하루빨리 만나고 싶어요. 외로운 밤엔 몇 시가 되건 당신이 보내준 편지를 반복해 읽으면서 잠이 들어요.”



결혼과 관련된 대목도 눈에 띈다. 황세손은 한 편지에서 “(아내) 줄리아와는 10월까지는 헤어질 것 같아. 하지만 결혼은 올해가 아니야! 진이 내가 있는 테헤란으로 올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둘이 조금 외국에서 방황해 볼까”라고 썼다. 낙선재 문양이 찍힌 종이에 생년월일을 적고 곤명·건명이라고 쓴 메모도 있었다. 곤명·건명은 보통 궁합과 사주팔자 등을 볼 때 쓰는 용어다.



황세손은 낯선 타국에 일하러 가는 연인의 일을 꼼꼼히 챙겨주는 ‘기사도(騎士道)’를 발휘하기도 했다. 77년 6월 10일 호주의 한국대사관에 보낸 편지에선 “좋은 친구인 미스 유위진씨가 한국 현대미술품 전시를 위해 멜버른을 방문한다”며 대사에게 배려해 달라는 취지의 글을 보냈다.



둘의 소통 도구는 일본어였다. 적당히 흘려 쓴 황세손의 필치는 유려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한글에 서툴렀다. 그러나 사랑 고백만은 ‘고국 말’로 하길 원했던 것 같다. 이란 체류 때로 추정되는 연도가 알려지지 않는 어느 8월의 편지. 그는 “진에겐 한국어로 ‘사랑해’ 하고 말하는 게 가장 느낌이 와 닿을 것’이라며 한글로 또박또박 ‘보고 싶어. 정말 당신이 정말 보고 싶어요’라고 썼다. 그 한 문장을 위해 많은 연습을 했을 것이다. 다른 편지에선 한글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세손과 여인은 그렇게 열렬한 사랑을 나눴다.






j 칵테일 >> 유위진 회장 … 황세손이 설계한 내 집, 한 곳도 손대지 말라



[사진=박종근 기자]
서울 청운동 89의 107번지, 고(故) 유위진 회장이 30년을 살다 떠난 빨간 대문 2층 양옥집은 황세손이 직접 설계한 사랑의 보금자리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혼신을 기울여 설계한 황세손의 진심이 느껴져서일까.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집 구조가 요즘 건축물에 뒤지지 않는다. 집주인이 하늘나라로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고인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나는 실내 모습이 소박하면서도 정겹다. 황세손과 국제전화를 나누었을 구식 전화기, 함께 보고 이야기했을 일본어판 화집, 작은 탁자 위에 놓인 해묵은 화장품 모두 오래전 두 사람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는 일종의 유물이다. 황세손의 설계를 존중했던 유 회장은 생전에 집 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작은 모서리 하나 고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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