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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고종의 후손들 어떻게 사나

중앙일보 2010.09.04 00:00 주말섹션 2면 지면보기
2005년 황세손 이구의 타계 후 이원(49)씨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 의해 황사손(皇嗣孫·황실의 대를 잇는 후손)으로 추대됐다. 그는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9남 이충길(황실명 이갑)씨의 장자다. <고종 가계도 참조>


이승만, 황실 재산 국가에 귀속시켜 … 대부분 궁핍한 생활

종약원이 고종-순종-영친왕-이구로 이어지는 왕실 적통을 잇기 위해 영친왕의 이복 형인 의친왕의 손자 이원씨를 이구씨의 봉사손으로 들인 것이다. 영친왕의 아들인 이구씨가 후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원씨는 황사손으로 추대되는 동시에 대동종약원의 3대 총재로도 이름을 올렸다. 대동종약원의 1대 총재는 의친왕, 2대 총재는 황세손 이구였다.
이원씨는 5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샐러리맨에 불과했다. CJ홈쇼핑 부장으로 있다 하루아침에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적 대통을 잇게 된 것이다. 2005년 7월 24일 이구 황세손의 영결식 이후 27개월 동안 이구 황세손의 상청이 있는 창덕궁 낙선재에 가서 3년상을 치른 그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상주로서 부인을 대동하고 직접 제례를 올리기도 했다. 이씨는 서울에서 상문고를 졸업한 후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NYIT(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방송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마치고 미국 케이블회사인 HBO에서 PD로 일하던 그는 6년 만에 귀국해 광고회사인 금강기획에서 5년 동안 광고 제작 업무를 했었다. 결혼 관련 케이블 채널인 뷰티 TV의 설립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고, 댄스그룹 H.O.T가 한창 인기 있을 때는 관련 캐릭터사업을 벌이는 등 늘 트렌드의 최첨단에서 살았던 그다. 지금은 황실의 5대 제향(조경단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건원릉기신친향례·환구단제)의 초헌관(제사 지낼 때 첫 잔을 올리는 사람)과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에 대한 왕릉 제사를 맡고 있다.



광복 직후 왕조의 복귀를 꺼렸던 이승만 대통령은 고종 직계(순종·의친왕·영친왕) 왕족의 재산을 모두 국가에 귀속했다. 고종의 후손들이 어려운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크게 사업으로 성공하거나 재산을 모은 후손은 찾아보기 힘들다. 만년에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살던 창덕궁 낙선재 쪽에서는 늘 생계비 부족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살아 있는 고종 직계 황손으로는 이구 황세손이 사망한 이후 의친왕 계열만 남았다. 이들 대부분은 몰락한 왕조의 ‘황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의친왕은 생전에 12남9녀를 남겼고, 이 가운데 생존 아들로는 10남 이석(67)씨와 이갑·이환·이정씨가 있다. 이 중 이석씨만 한국에 거주하고 나머지 세 아들은 미국에 살고 있다.



이석씨는 창경초등학교와 경동 중·고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 서반어학과를 졸업했다. 샌디에이고 김병묵 한인회장의 초청으로 1979년 도미했다가 1989년 귀국했다. 2004년 10월부터 전주시에서 만들어 준 150평짜리 한옥 ‘승광재’에서 전주황실문화재단을 만들어 황실 살리기 운동과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을 하고 있다.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로 대중에게 익숙한 이석씨는 2008년 8월 ‘아! 숭례문’이라는 타이틀의 음반을 내기도 했다. 이미 사망한 의친왕의 큰아들 이건은 1947년 10월 일본인 모모야마 겐이치로 귀화해 한국과 인연을 끊었다. 1991년 숨진 그는 자녀를 3명 남겼으나 소식이 끊긴 상태다.



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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