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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女論] “목 짧은 여자 보면 화나” … 80년 전 벌어진 ‘루저’ 논란

중앙일보 2010.09.02 19:33 종합 33면 지면보기
나운규의 ‘아리랑’에서 주연을 맡았던 신일선은 당대 최고 미녀로 손꼽히던 여배우였다. 1934년도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에 출연한 신일선(가운데).
“키가 조금 큰 듯하고 목선이 긴 여자가 좋다. 제아무리 얼굴이 예쁘장하고 몸맵시가 어울려도 키가 땅에 기는 듯하고 목덜미가 달라붙은 여자는 보기만 해도 화증이 난다”(‘미인, 내가 좋게 생각하는 여자’, 『별건곤』, 1929.2). 이것은 소설가 현진건이 한 말이다. 요즘 저렇게 말한 남자연예인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의 ‘루저’ 논란들에서처럼 그의 소속사 사이트, 팬카페, 블로그는 항의하는 글들로 넘쳐날 것이다. 그는 급기야 눈물로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열어야 할지 모른다. 당분간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고, 다시 복귀한다 해도 언제나 그의 기사 밑엔 저 발언에 대한 증오의 댓글이 달려 있곤 할 것이다. 한마디로, 저런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한순간에 ‘매장’된다.



이것은 그만큼 현대사회가 ‘루키즘(Lookism·외모지상주의)’에 갇혀 있음을 역으로 증명한다. 루키즘으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말 한마디에 크게 상처받고 분노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외모지상주의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전이었던 1920~30년대에는 위와 같은 말을 ‘겁도 없이’ 떠벌렸다.



당시 신문·잡지를 보면 이런 주제의 글이 넘쳐난다. 예를 들면 이광수는 “체격이 팔다리나 몸통이 자로 잰 듯,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바로 맞고, 몸 쓰는 것, 걷는 것 등의 모든 동작이 날씬하여”야 한다고 말했다(‘미인’, 『삼천리』, 1933.9). 김동인은 키가 커야 미인이라며 여배우 신일선에 대해 “얼굴은 흠잡을 것이 없다 할지라도 키가 작아서 안타깝다”고 평했다(‘예술가의 미인관’, 『삼천리』, 1932.5).



그땐 어떻게 저런 ‘폭력적인’ 발언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문명’ ‘지식’의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그 시대의 어여쁜 여자를 보아 그 시대의 문명의 형편을 짐작”한다고 믿었기 때문에(‘현대문명이 요구하는 미인’, 『부인』, 1922.11), 문명화된 사회라면 미인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 조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지식이 충분히 보급되지 못해서 미에 대한 상식이 그만큼 박약”하다는 데 대한 열등감과도 관련되어 있었다(‘생활개선의 중요한 한 가지’, 『신여성』, 1925.2). 조선이 문명화되고, 지식이 보급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남성 지식인들은 그렇게 너도나도 ‘미인 만들기’에 동참했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외모지상주의가 뿌리내렸고, 현대사회는 미남미녀 과잉 상태가 되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과도한 미인 선호가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과 같은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만든 것이다.



◆이영아=서울대 국문학과 졸, 동 대학원 박사.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규장각 전임연구원 거쳐 현재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저서 『육체의 탄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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