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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초월한 전문성이 한국 언론의 살길”

중앙일보 2010.09.02 00:25 종합 35면 지면보기
“원래 꿈은 기자가 되고 훗날 좋은 소설을 쓰는 거였는데, 1960년대 학생운동을 하고 정학처분을 받는 바람에 공부로 방향을 바꿨죠. 이제는 평생의 꿈이었던 문학청년의 길로 가렵니다. ‘문노’라는 말이 없으니 이 나이에도 ‘문청’이네요.” (웃음)


30년 언론학자 인생 마감한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학자인 김민환(65·사진)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30년 언론학자의 인생을 마감했다. 지난 달 31일 서울 광화문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60여 명의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년퇴임 기념식이 열렸다. 임상원 전 고려대 교수, 차배근 전 서울대 교수,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최장집 전 고려대 교수, 민주노동당 천영세 전 의원, 영화감독 임권택, 배우 배종옥 등이 참석했다. 후배 교수들이 헌정논문집 발표 등의 행사를 마련했으나 번거롭다며 일체 고사한 그다. 대신 그간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묶은 『김민환의 언론 문화 시평-민주주의와 언론』(나남)을 펴냈다.



김 교수는 근대 한국 언론의 도입과 역사를 정리한 대표적 언론사학자다. 『민족일보 연구』『한국언론사』 등 언론학계의 교과서들을 남겼다. 특히 신문의 사회사상 연구가 전공이다.



“한국의 신문은 개화기 이후 압축적 성장과정에서 근대와 모더니티 정신을 불어넣으며 크게 기여했습니다. 지금도 그 수준은 세계적이에요. 다만 최근 당파성에 치중하면서 불편부당, 사실보도 등 기본 궤도를 이탈한 점은 무척 안타깝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에게 한국 언론의 길이 있다고 봅니다. 전문성을 쌓으면 결국 일체의 정파와 편향을 초월하게 되는 거지요. 그가 쓴 국제기사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전세계 누구에게도 설득력이 있으며 공론이 됩니다. 매체환경의 변화를 염려하지만 결국 언론이 살 길도 그런 전문성에 있다고 봅니다.”



명예교수 직함을 유지하지만 그는 언론학과의 인연을 사실상 끊고 시나리오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구상하고 있다. 전남 보길도에 지은 서재 ‘남은재(南垠齋)’에서 한 달에 3주 가량 머무르며 집필에 전념할 계획이다. 엄청난 책들도 역사·문화 쪽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소문난 영화광인 그는 박사논문을 지도한 제자 배종옥 등과 영화모임을 꾸리고 있다. 거장 임권택 감독과는 30년 가까운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 고구려 화가 담징을 소재로 쓴 시나리오에 임 감독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그간의 단상들을 임 감독과 얘기해왔는데 이번에는 참 아름답다고 해서, 시나리오로 완성해 넘겼습니다. 과연 인간이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뤘죠. 아직 영화화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첫 습작치고는 괜찮다는 평을 받았어요.”



“제 처가 최근에 점을 봤는데 70대에 글로 전성기가 온다고 했대요. 하하. 사실 결과는 알 수 없죠. 그러나 글에 대한 제 오랜 꿈만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역사에는 노벨상을 100번쯤 탈만한 소재와 주제가 많아요. 이런 것을 고증하고 취재를 덧붙인 논픽션물에 관심이 많습니다. 앞으로 제가 임 감독의 조수로 살려 하지만, 임 감독이 예전에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다녀 제 제자이기도 해요. 절 만만하게는 못 볼 걸요. 하하”



그는 7월 말 중앙일보 다산연구소 대표직도 맡았다. “제도권 안에서 실현 가능한 타협점을 찾았던 실용주의자 다산의 정신을 승계하는 일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글=양성희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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