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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의 슈바이처’ 고 이태석 신부를 아십니까

중앙일보 2010.09.02 00:01 종합 31면 지면보기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의 한 극장에서 영화 시사회가 열렸다. 객석에는 가톨릭 신부와 수녀들도 꽤 보였다. 영화 제목은 ‘울지마 톤즈’. 내전 중이던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 선교를 하다가 숨진 고(故) 이태석(1962~2010) 신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추모 다큐 영화 ‘울지마 톤즈’

시사회에 앞서 이금희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우리는 한 사람을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그를 ‘유난히 미소가 밝았던 사람’ ‘유난히 눈물이 뜨거웠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이 자리에 오지 못했습니다.”



고 이태석 신부가 수단의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다. 수단의 아이들은 좀체 울지 않는다. 우는 걸 불명예로 여긴다. 그러나 이 신부의 선종 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마운틴픽쳐스 제공]
이씨는 ‘울지마 톤즈’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영화를 제작한 구수환(KBS 책임프로듀서) 감독도 “이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울었다. 25년간 방송 생활하면서 이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었다. 각박한 시대에 따스함을 주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는 가수 심수봉의 노래 ‘그때 그 사람’으로 시작했다. 생전의 이 신부가 색소폰으로 그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그랬다. 영화 속 사람들도, 영화 밖 사람들도 그 선율을 따라가며 그때 그 사람, 이태석 신부를 그리워했다.



이 신부는 2001년 로마 교황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자청해서 아프리카 수단으로 갔다. 내전 중인 남수단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지역이었다. 그곳을 자원하는 성직자는 거의 없었다. 거기서 이 신부는 헐벗고, 굶주리고, 다치고, 병에 걸리고, 희망을 상실한 주민들에게 의술과 예술, 따뜻한 가슴을 베풀었다. 그리고 올해 1월 14일 대장암으로 선종했다. 48세의 젊은 나이였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이국 땅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다 숨을 거두었으니 붙여준 형식적인 수식어가 아니다. 영화에는 이태석 신부가 톤즈의 배고픈 아이들, 밤낮 사흘간 걸어서 찾아온 환자들, 수단인조차 외면하는 한센인을 바라보는 선한 시선과 해맑은 미소가 장면마다 배어난다.



이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워낙 가난하니까 여러 가지 계획을 많이 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같이 있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을 저버리지 않고 함께 있어주고 싶었다.” ‘진정한 선교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묵상케 하는 대목이다.



이 신부의 고향은 부산이다. 어머니는 자갈치 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10남매를 키웠다. 어릴 적, 집 근처의 성당은 그에게 놀이터였다. 거기서 벨기에 출신인 다미안(1840~1889) 신부에 대한 영화를 봤다.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근처 몰로카섬에서 한센인을 돌보다가 자신도 한센병에 걸려 49세에 숨을 거둔 인물이다. 지난해 교황 베네딕토16세는 그를 성인 반열에 올렸다. 이 신부는 그 영화를 본 뒤 사제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인제 의대를 졸업한 그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그는 어머니께 “사제가 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신부가 된 형도, 수녀가 된 누이도 있었다. 어머니는 눈물로 반대했다. “남의 아들은 (신부로) 가면 다 훌륭하고 거룩해 보이던데…, 왜 내 자식은 몇 명이나 데려가시냐?”고 반문했다. 그는 “어머니께 효도 못 하고, 벌어주지도 못 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하느님께 자꾸 끌리는 걸 어떡하느냐?”고 울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뒤늦게 신학대에 진학했다.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다. 그러나 내전으로 인해 모든 게 황폐해졌다. 특히 남수단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말라리아와 콜레라 등으로 약도, 치료도 없이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 신부는 남수단의 톤즈란 곳으로 갔다. 그는 톤즈에서 유일한 의사였다. 하루에 300명의 환자가 찾아왔다. 100㎞를 걸어서 밤에 문을 두드리는 환자도 있었다. “그곳에 가면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톤즈에 퍼졌다.



공간이 모자랐다. 이 신부는 손수 벽돌을 구워서 병원을 지었다. 전기도 없었다. 지붕에 태양열 집열기를 설치해 냉장고를 돌렸다. 더운 날씨에 상하기 쉬운 백신을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이 신부는 학교도 지었다. 초·중·고 11년 과정을 꾸렸다. 손수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다. 케냐에서 교사도 데려왔다. 톤즈의 아이들은 거기서 미래를 찾았다. 다큐멘터리 속의 이 신부는 자신에게 묻고, 답했다.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를 먼저 지었을 것 같다.”



톤즈 사람들은 그를 “쫄리 신부”라고 불렀다. ‘존 리(John Lee)’라는 세례명을 그렇게 발음했다. 많은 사람이 이 신부에게 물었다. 왜 굳이 신부가 됐느냐고, 의사로서도 소외된 이웃을 도울 수 있다고, 왜 굳이 아프리카까지 갔느냐고,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그 모든 물음에 이 신부는 이렇게 답했다.



“예수님께선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화를 보던 관객은 눈물을 흘렸다. 그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메시지 앞에서 솟는 눈물이기도 했다. ‘울지마 톤즈’는 9일 서울의 CGV 압구정·대학로·명동, CGV 동수원·대전·서면(부산) 등에서 개봉된다. 올 4월 KBS 부활절 특집으로 방영됐던 휴먼 다큐멘터리를 극장용으로 재편집했다.



묵상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고 이태석 신부가 고3 때 작사·작곡한 성가 ‘묵상’ 중에서)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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