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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모형 세상의 중심에서 환경을 외치다

중앙선데이 2010.08.21 01:17 180호 7면 지면보기
‘걸프만의 노예 Slaves in the Gulf’(2010), Diorama, Mixed media, Glass case 236×110×105㎝
스물아홉의 일리아 레핀(1844~1930)을 일약 러시아 화단의 기린아로 만든 작품은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1870~73)이었다.그는 항만시설이 미비했던 네바강 입구에서 직접 배를 뭍으로 끌어올려야 했던 인부들의 모습에서 ‘북유럽의 베네치아’라 불리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어두운 얼굴을 발견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고단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러시아 민중의 모습을 그림 속 인부들의 표정을 통해 고스란히 살려냈다.

‘EARTH REPORT’ 진기종전, 8월 19일~9월 19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16번지’, 문의 02-722-3503

올해 스물아홉인 설치작가 진기종의 ‘걸프만의 노예’(2010)는 디오라마(diorama·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해 한 장면을 만든 것)를 통해 일리아 레핀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그가 만든 세상은 여전히 요지경이다. 거대한 선박은 거대 석유회사 ‘셸(Shell)’의 유조차로 바뀌었다. 유조차를 끌어올리기 위해 몸에 밧줄을 휘감은 노예들.
그런데 맨 앞줄 노예들의 얼굴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 자세히 보니 오사마 빈 라덴과 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다.

이들은 노트북에 떠있는 유가변동 그래프를 보고, 휴대전화로 유가를 확인하면서 힘겹게 유조차를 끌고 있다. “걸프만의 석유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던 세 사람(빈 라덴, 부시, 후세인)이 마치 현대판 노예 같다고 생각했어요. 레핀의 그림을 차용한 것은 원래 레핀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림 속 배를 유조차로 바꾸면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비디오 작업을 주로 해왔던 작가는 자신의 두 번째 개인전에서 디오라마 방식으로 ‘환경 보고서’를 작성했다. ‘HOLLY WOOD’라는 입간판으로 유명한 LA의 할리우드 산은 해수면 상승으로 섬이 돼버렸고, 거대한 숲은 바리캉으로 밀어낸 듯 누런 속살을 드러냈다. 그의 상상력의 발현은 예언적 미래라는 가능성 때문에 놀랍고 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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