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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자 꿈같은 곳,빙하가 창조한 협곡엔 지구의 역사가 차곡차곡

중앙선데이 2010.08.21 01:12 180호 8면 지면보기
1 험준한 피레네 바위산 위에 토를라 교회와 주택이 우뚝 서 있다. 피레네 몽 페르뒤 복합유산지역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유럽 자연사 박물관
피레네 몽 페르뒤는 유럽 자연생태계를 대변한다. 1500종이 넘는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중 50여 종에 달하는 식물은 오직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멸종되었지만 2000년 초까지만 해도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아이벡스란 야생염소가 살기도 했다. 프랑스 복합문화지역의 거점은 오트피레네 주의 작은 마을 가바르니다. 가바르니 권곡(圈谷·빙하 침식지형)을 중심으로 타일리옹·카스크·마르보르 산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피레네 서부 국립공원은 거대한 야외 식물원이다. 나지막한 구릉과 산록에 조성된 너도밤나무·유럽소나무·떡갈나무와 고산지대에 핀 야생화는 유럽 최대 수종을 자랑한다.

사진작가 이형준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 복합유산을 찾아서 <4> 피레네 몽 페르뒤


2 스페인 오르데사 계곡을 따라 흐르는 계단식 폭포. 약 2㎞에 이르는 구간에 10개가 넘는 폭포가 있다.
스페인 구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오르데사 국립공원의 관문인 토를라 마을에서 아니스클로 골짜기로 이어지는 풍광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지구의 변천사를 담고 있는 빙하 침식으로 조성된 U자형 협곡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계곡과 이곳에 살고 있는 동식물 덕분에 ‘유럽을 대표하는 자연사박물관’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유럽을 총망라해 유일하게 다섯 계층의 식물 분포대가 걸쳐 있다. 고도에 따라 아지중해·구릉지대·저산대·아고산대·고산대식물 등 다섯 개 층에 떡갈나무·가문비나무·너도밤나무·전나무 등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숲은 파충류·양서류·맹금류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스페인과 프랑스, 두 나라에 걸쳐 있어
1997년 유네스코 지정 복합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면적이 306㎢. 99년 일부 권역이 추가로 지정되며 더 넓어졌다. 그 때문에 이곳을 다 둘러보려면 엄청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따라서 치밀한 기획이 요구된다. 나의 경우 인근 하카에 거주했던 동생 부부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둘러보았지만, 혹여나 방향을 잘못 잡기라도 하면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내 경험으로는 프랑스와 스페인 지역 중 한 곳을 먼저 둘러본 후 시간이 남으면 나머지 구역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나와 매제는 빅토르 위고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프랑스 피레네 국립공원을 먼저 찾았다. 이곳으로 들어가는 관문 가바르니 마을은 아담했다. 마을을 벗어나 등산로에 접어들자 들판과 구릉에 핀 야생화들이 여행자를 유혹한다. 프랑스 국립공원 자료에 의하면 이곳엔 160여 종에 달하는 야생화와 독특한 식물이 자생한단다. 어떤 식물이 얼마나 서식하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피레네로즈와 에델바이스는 해발 2200여m 지점까지 이어져 있었다. 야생화와 수목이 시선에서 멀어지는 지점에는 거대한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협곡이 있다. 빙하가 깎아낸 암석층은 피레네와 유럽의 형성과정을 담고 있다.

산간 문화와 자연을 둘러볼 수 있는 등산로
피레네 몽 페르뒤는 입구까지만 자동차 운행이 허용된다. 복합유산 지역을 둘러보려면 걷는 것 외 뾰족한 방법이 없다. 프랑스 복합유산지역에는 350㎞에 달하는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다. 각자 능력에 따라 원하는 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완비된 탐방로는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장기간 복합유산지역을 둘러보고자 하는 방문객을 위해 주요 지점마다 숙박시설을 갖춰 놓았다.어떤 코스를 선택하건 어렵지 않게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피레네 자락에 터를 잡은 마을은 모두 규모가 작다. 마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과 석회를 이용해 마을을 조성해 놓았다. 농가건 공공건물이건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어쩌다 마주한 교회도 소박한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 정도가 고작이다.

3 피레네 몽 페르뒤 지역에서 방목되고 있는 양떼. 대부분 농가에서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양을 치고 있다. 4 토를라 마을 주택에 마련된 아름다운 조각 장식. 5 토를라 마을 대부분의 주택은 이렇게 돌로 만들어져 있다.
주민 중에는 관광 안내원과 숙박업에 종사하는 이도 있지만 아직 미비하다. 주민들은 조상대대로 이어온 양 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은 선조처럼 넓은 피레네 지역을 농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농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400~500마리씩 양을 치고 농사일을 병행하며 살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오르데사 국립공원
피레네 몽 페르뒤 구역을 다 둘러보진 못했지만, 내게 최고의 명소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스페인 오르데사 국립공원을 선택할 것이다. 가파르게 깎인 바위산, 독특한 모양과 크기를 간직한 계곡과 폭포, 울창한 숲, 정감이 넘치는 마을까지. 오르데사 국립공원으로 접근하려면 토를라 마을에 차를 두고 걸어야 한다. 마을에서 공원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여섯 곳에 이른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간직한 만큼 어떤 코스가 특별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르데사 국립공원의 주요 포인트를 둘러보려면 최소 16㎞를 걸어야 하는데, 이 경우 국립공원 안에 자리한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방문객들이 선호하는 코스는 마을에서 콜라 데 카바오로 이어지는 북쪽 코스다. 왕복 7㎞에 달하는 코스는 프랑스 구역에서는 접할 수 없는 비경을 대면할 수 있다. 빙하가 만들어 낸 계곡과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 거대한 석회암석 등이다. 이 모든 광경이 끝나고 막다른 지점에 이르면 콜라 데 카비오로 폭포가 나온다. ‘말꼬리’라는 의미를 간직한 이 폭포는 길이가 70m에 이르는 큰 폭포다. 그렇다고 나이애가라와 이과수 같은 폭포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콜라 데 카비오로라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 폭포 물줄기는 마치 말꼬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가늘다.

험준한 바위산 비탈에 세워진 주민들의 터전
오르데사 지역에도 피레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이 있다. 토를라처럼 일정 규모를 갖춘 마을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산기슭과 들판에서 달랑 터를 잡고 있는 앙증스러운 농가가 방문객을 맞는다. 이곳 주민들도 하나같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양을 기르며 생활한다. 오르데사 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구조물은 돌을 이용해 지었다. 어떤 자재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돌이란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용도와 크기를 떠나 하나같이 돌을 이용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건물을 세운 이유는 겨울에 내리는 엄청난 눈으로부터 가족과 가축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곳 건물은 큰 돌로 벽을 쌓은 후 얇은 돌을 이용해 지붕과 굴뚝을 완성해 놓은 것이 우리네 너와집과 비슷하다. 이 같은 독특한 건축은 수백 년 동안 지속돼 왔다. 이런 구조는 험준한 바위산과 산비탈 위에 우뚝 서 있는 교회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웅장한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과 척박한 환경은 지난 수세기 동안 급변하는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피레네 몽 페르뒤를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대로 살아온 자연과 전통을 지키려는 피레네 사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피레네 몽 페르뒤를 둘러보는 동안 낯선 이방인에게 미소와 함께 “푸에도 아유다를레(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말문을 연 촌로의 손을 꼭 붙들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라시아스!(정말 고맙습니다)”
* 다음 호는 중국 황산을 찾아갑니다.


여행 메모
피레네 몽 페르뒤로 가려면 인천 → 마드리드, 인천 → 파리행 항공기를 이용한 후 국내선으로 항공기와 기차를 타고 거점 도시인 스페인 사라고사 혹은 프랑스 둘루즈까지 이동한다. 이후엔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토를라와 가바르니 마을은 작지만 연중 방문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주요 등산로에서도 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비자 없이 3개월간 여행이 가능하다.


사진작가이자 여행작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20여 년 동안 130여 개 나라, 1500여 곳의 도시와 유적지를 다니며 문화와 자연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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