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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만족 못 하는 한국인들, 정의에 갈증 느끼고 있다”

중앙일보 2010.08.21 00:24 종합 28면 지면보기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는 “민주주의와 다수결주의(majoritarianism)는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마이클 샌델 교수는 히마티온(옛 그리스인의 겉옷)만 두르면 딱 고대 철학자처럼 보일 것 같았다. 서양인치곤 호리호리한 체구에 목소리는 작고 조곤조곤했다. 그의 얼굴엔 평생에 걸친 사색과 명상의 흔적이 담담하게 배어 있었다. 그의 강의가 하버드대생들을 열광케 하는 건 아무래도 ‘지혜의 힘’ 때문인 것 같았다.


[기획 인터뷰]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인터뷰는 그의 숙소인 조선호텔에서 20일 오전에 이뤄졌다. 그는 사흘간의 살인적 일정에 파김치가 돼 있었지만 한국에서의 지적 탐험이 즐거운 듯했다.





- 하버드대에서 당신 강의는 매 학기 1000명 이상의 학생이 수강한다고 들었다. 우리가 정의에 대해 더 많이 논의할수록 정의로운 삶에 좀 더 가까워지는 것인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의를 공부하고, 그에 대한 책을 읽어도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건 아니다. 나는 책에서 다양한 사례를 들었다. 독자들 스스로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다. 정의를 말한 철학자들의 주장에 도전하게 하기 위해서다. ”



- 당신 책이 한국에서 30만 부 넘게 팔린 건 혹시 한국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는 방증이 아닐까. 사회가 부정의 하니까 정의를 더 갈망하는 게 아닌가.



“(웃으며) 나는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철학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곤 꿈도 안 꿨다. 한국 사회가 부정의해 내 책이 많이 팔렸다는 생각은 안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정의에 대한 갈증과 갈망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치에 대한 불만과 좌절감이 존재한다. 또 시장의 영향력이 강력해지면서 보다 근본적인 도덕적 논쟁과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에 대한 갈증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 왜 유독 한국인들만 갈증이 큰가.



“그 대답은 여러분이 나한테 해 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에 대한 의미 있는 토론을 하려는 열망이 많다는 건 좋은 것이다. 건강한 자극이다.”



- 한국의 교육열은 유명하다. 그런데 교육을 많이 받으면 더 정의롭게 살 수 있는 건가. 아니면 교육보다는 인간의 품성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가.



“품성이다. 교육 수준이 높다고 더 정의롭게 산다는 보장은 없다.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는지가 핵심이다. 과학과 기술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 해 정의감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철학과 예술, 역사, 인문학 등을 배워야 한다. 사회 지도자가 될 학생들은 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도덕적 도전들에 대해 질문하고 배워야 한다.”



- 그게 당신이 정의론을 강의하는 이유인가.



“그렇다. 하버드대의 내 강의는 온라인을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다. 무료다. 유튜브나 하버드대와 PBS(미국 공영방송) 웹사이트, 아이튠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맘대로 퍼갈 수 있다. 하버드대의 한국 학생들이 한글 자막을 넣겠다고 하더라. 중국어로도 번역됐다.”



-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30년 전과 지금 학생들은 많이 다른가.



“개인적이고 시장 중심적인 생각이 더 강해졌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미국 평균보다는 진보적이다. 그래서 정확히 알긴 힘들지만 바뀐 건 사실이다.”



- 당신은 정의가 공정하고(fair) 좋은 것(good)이라고 했다. 공정함은 소득과 권력, 기회의 공평한 분배와 관련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분배가 잘된다고 좋은 사회는 아닌 것 같다. 분배를 강조한 공산주의는 좋은 사회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의에 있어서는 좋은 것(goodness)이 공정함(fairness)보다 우선하는가.



“좋은 지적이다. 사실 공산주의는 공정하지도 않았다. 또 공정한 사회가 좋은 사회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좋은 사회는 공정함과 배분의 문제를 뛰어넘어 일정한 가치와 도덕적 규범이 실행되는 사회다. 교육, 건강, 시민정신, 환경, 예술, 우리가 서로를 대할 때 더 나은 것을 지향하는 태도를 갖는 것 등이 좋은 삶의 특징이다. 나는 좋은 삶이 뭔지 모르면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가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 당신의 주장은 24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주장과 비슷하다.



“그렇다. 그 부분에선 그가 맞았던 것 같다.”



- 전쟁터에서 살기 위해 적군을 쏴 죽인 병사를 비난하긴 어렵다. 결국 정의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 아닌가.



“전쟁터에서도 정의의 문제가 생겨난다. 군인이 적을 죽이는 것과 민간인을 죽이는 건 다르다. 정의롭다는 건 적절한 수단이 비례의 원칙에 따라 그에 합당하게 행해졌느냐는 문제다.”



- 내가 궁금한 건 시간과 공간, 상황을 초월하는 보편적인(universal) 정의의 원칙이란 게 있느냐는 것이다.



“아주 일반적인 원칙 수준에서 답하자면 그렇다.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히 돌아갈 정당한 몫을 주는 것이다. 그게 정의의 원칙이다. 문제는 각자의 몫이 얼마만큼이냐는 것이다. 철학자들도 정의의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에 들어가면 논쟁이 생긴다. 구체적인 상황, 시간과 공간에 따른 갭(gap)은 우리가 채워 가야 한다. 정의의 의미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철학자가 통치하는 사회가 가장 정의롭다는 플라톤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철학자들이 좋은 왕이 될 것 같지는 않다(웃음). 철학자 대부분은 비실용적이고 공공 영역(public affairs)에 관한 지식도 없다. 혼란스럽고 편견이 있어도 정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도전했다. 그게 철학의 역할이다.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게 해야 한다.”



-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민중의 이름으로,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됐다. 민주주의는 쉽게 오도(misled)될 수 있다. 어떤 정치 시스템이 최선인가.



“ 민주주의와 다수결주의(majoritarianism)를 구별해야 한다. 무조건 다수의 주장에 따르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건 공포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공동선과 정의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이다. 선동 정치가나 폭군을 지지하는 다수는 민주시민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고 논쟁하고 추론하고 숙고하지 않는 다수는 군중(mob)일 뿐이다. 그래서 교육과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투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다수결주의인데 착각이다. 시민적 삶(civic life)과 대중적 심사숙고(public deliberation), 시민 교육(civic education)의 질에 모든 게 달려 있다.”



-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국가들 중에서 가장 정의로웠던 국가는 어디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지금 그걸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김종혁 문화스포츠에디터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마이클 샌델(57교수) 1980년 27세의 나이에 하버드대 교수가 됐다. 전공은 정치철학. 그의 ‘정의’ 강의는 20여 년 동안 이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 그는 극장식 강의실을 가득 메운 1000여 명의 학생에게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여러 도덕적 딜레마를 소재로 강의한다. ‘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섯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그걸 실행하는 게 옳은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같이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강연 동영상을 웹사이트(justiceharvard.org)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강의 내용을 책으로 묶어 『정의란 무엇인가』를 펴냈다. 이 책은 국내 출간 석달 만에 30만부 이상 팔렸다.



1975년 미국 브랜다이스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82년 미국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1971년)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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