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 Focus] 위암 세계 최고 명의 노성훈 연세대 교수

중앙일보 2010.08.21 00:21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위암.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이다. 세계에서 위암 발생률이 가장 높은 나라도 한국이다. 그리고 한국인의 위암 수술을 가장 많이 집도한 의사는 바로 노성훈(56) 연세대 의대 교수다. 그는 세계에서 위암 수술을 가장 많이 한 의사로 꼽힌다. 1983년 전문의가 된 이후 27년간 약 8000명을 수술했다. 6월 대한암학회 이사장으로 선출된 그를 17일 연세대 연구실과 세브란스병원 수술실을 오가며 탐구해 봤다.


“교과서를 벗어나라 … 의사에게도 도전이 필요하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명의의 진기록



● 위암 수술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셨다고요.



“1년에 600명 정도 수술합니다. 개인이 하는 것으로 가장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위암 발병이 많은 일본의 국립암센터 같은 큰 병원에서는 의사 4~5명이 1년에 600명쯤 수술합니다.”



● 치료 성적은 어떻습니까.



“개인별로 집계하지 않고 병원 단위로 나옵니다. 국제학회지에 공인된 수치를 비교하는데, 우리 병원의 위암 수술은 일본 국립암센터나 미국의 MD앤더슨 등 해외 유명 병원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나옵니다.”



● 좋은 성적이 가능한 이유는 뭔가요.



“오랜 전통이 있어서 의료진의 팀워크가 좋고, 수술 건수가 많아 경험이 풍부한 덕도 있지요. 합병증을 줄이기 위한 고민과 도전이 무엇보다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 어떤 도전인가요.



“어떻게 하면 출혈을 줄이고 수술 시간을 단축할까 고민했어요. 어두운 배 속에 있던 장기가 밖에 장시간 노출되면 그만큼 해롭거든요.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서 피가 나면 지져서 피를 멈추게 하는 전기소작기를 썼어요. 이걸 위암 수술에 도입해, 조직을 자르고 피를 멎게 하는 데 제가 처음 썼습니다. 4시간가량이던 수술 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어요. 1995년 수술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해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이후 일본·중국·미국에서 한 해 100명의 의사들이 수술법을 배우러 옵니다.”



사람을 앞세운 의술



● 혁신을 염두에 두시는 것 같습니다.



“의학 교과서에는 증명된 이론들이 실려있지요. 그렇다고 교과서에 있는 것만이 진리는 아닙니다. 내가 교과서를 새로 쓸 수도 있는 겁니다. 진정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되려면 현재 지식과 그간 정립된 것을 답습하지 않고,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합니다. 환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 보입니다. 기업이 소비자의 눈으로 보듯, 의사는 환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지요.”



● 위암 치료·수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뭔가요.



“병의 완치 못지않게 중요한 게 수술 후 환자의 삶의 질이에요. 위암 수술 후 가장 불편하고 스트레스 받는 게 무엇인지 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어요. 첫째로 콧줄, 둘째로 심지를 꼽았어요. 이 둘이 사실 굉장히 고통을 줘요. 과연 환자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를 연구했지요.”(※콧줄은 환자의 코에서 위까지 연결되는 줄인데, 개복 수술 후 장 운동이 회복될 때까지 가스나 분비액을 빼내는 용도로 쓰인다. 심지는 수술 부위의 출혈이나 염증, 장 내용물의 배출을 확인하기 위해 배에 꽂아두는 관이다.)



● 그래서, 없앴나요.



“환자의 동의를 받아 무작위로 콧줄과 심지를 넣은 그룹과 넣지 않은 그룹으로 나눠 비교했더니 효과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통계적으로 수술 후 회복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외국 학술잡지에 보고했지요. 처음엔 환자에게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이의 제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2005년 위암학회에서 조사해보니 외과의사의 30%가 콧줄과 심지를 안 넣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 이 또한 새로운 도전의 결과네요.



“콧줄은 100년 전에 쓰던 방식입니다. 아무도 빼려는 시도를 안 해본 것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도전’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고, 발전을 이뤄내는 게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혁신을 통해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고, 완치율을 높이고, 고통을 줄이기 위한 도전을 하지 않으면 항상 같은 교과서이지 않겠습니까.”



● 힘든 적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80년대 말에만 해도 암이 많이 퍼진 경우는 수술을 안 했어요. 배를 열었다가도 복막 전이가 너무 심하면 그대로 닫았지요. 이런 환자가 전체의 10%쯤 됐는데, 이 환자들을 포기해야 하는가 고민이 쌓여갈 때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연수할 기회를 얻었어요. 거기서 복막 전이가 된 암을 수술하고 항암치료 하는 법을 배워왔어요. 국내에서도 말기 암 환자 수술을 시도했는데, 처음엔 ‘미친 놈’ 소리도 듣고, ‘자기 만족을 위해 수술한다’ ‘왜 그런 수술을 하느냐’며 비난 일색이었어요. 합병증이나 사망률이 다른 병원과 비교해 더 나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고, 지금은 이런 시술을 하는 병원들이 국내에 몇 곳 있습니다.”



명의로 산다는 것



● 하루 일과는.



“오전 6시30분에 병원에 도착합니다. e-메일을 확인하고, 외과 부장으로서 해야 할 행정업무를 합니다. 최신 논문도 읽고요. 8시30분부터 10시까지 첫 수술을 한 뒤 입원 환자 회진하고, 두 번째 수술을 합니다. 오후엔 요일에 따라 외래 환자를 보거나 세 번째 수술을 합니다. 일주일에 12~13명쯤 수술해요.”



● 매일, 선생님께 목숨을 맡기는 환자들을 수술하는 건 상당한 스트레스일 것 같습니다.



“젊을 때는 수술할 때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수술이 제 일상이 됐습니다. 수술할 때는 온 힘을 다해 집중하지만, 스트레스는 받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음악도 틀어놓고, 간호사·전공의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합니다. 가끔 농담도 해요.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경직되지 않아 실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화 내고 무섭게 몰아치는 의사들은 스스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것이죠. 그건 스태프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봐요.”



● 개인적인 시련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5년 전 백내장이 왔어요. 양쪽 눈 모두 뿌옇게…. 미국에서 4개월간 안식년을 하며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데 갑자기 눈에 들어오질 않는 거예요. 수술 받는 게 두렵고 걱정되어서 2개월을 끌었어요. 결국 수술을 했는데, 한쪽씩 번갈아 수술 받으며 그 사이에 위암 수술도 집도했어요.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려 노력해요. ‘이걸 극복하고 나면 앞으로 이 정도 어려움은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거야, 한 단계 발전하는 거야’라고 스스로 되뇌죠.”



● 한때는 말술이었다고 들었는데요.



“지금은 안 합니다.”



● 끊은 건가요.



“음 … 끊진 못하지. 음식이니까. 하하. 예전에는 일주일에 대엿새는 마셨는데, 지금은 약한 술을 조금 마십니다. 와인이나 청하·백세주 이런 걸 한두 병 하죠. 담배는 99년 끊었고요.”



의사의 길



● 의사가 된 계기가 있나요.



“엔지니어로 직장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가 의사를 권했어요. 자유로워 보이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것이라면서요. 예과 때는 공부는 않고 잘 놀았죠. 낙제 안 하고 졸업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어요. 본과에서 시체 해부 실습을 하는데, 신경과 혈관 찾는 걸 배우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칼을 든 외과 의사가 ‘진짜 의사’ 같아 보여 외과를 택했습니다.”



● 30년 전에는 외과 경쟁률이 치열했지요.



“당시에는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가 인기가 많았어요. 외과도 성적이 아주 좋아야 갈 수 있었습니다.”



● 요즘은요.



“미달이죠. 하하.”



● 안타까우시겠어요.



“힘들고 어려운 일을 열심히 하는 데 대한 대우, 그런 직업을 존경하는 사회적 풍토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은 환자를 살린다는 사명의식보다는 개인 생활이 보장되고, 수입도 괜찮은 것을 선호해서 외과가 비인기 과목으로 전락했지요. 모든 과가 중요하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과목은 미달되고, 덜 우수한 자원이 온다는 것은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다른 나라도 비슷하겠지요.



“세계 공통된 추세이긴 하지만 한국이 특히 심한 것 같아요. 기자재·인력·자질 면에서 의료 수준은 최고인데, 미국·일본 같은 선진국에 비해 의료수가가 너무 낮은 게 문제로 꼽히죠.”



● 후배들, 제자들에게 뭘 강조합니까.



“늘 ‘의사는 절대로 우월한 사람이 아니다’ ‘환자 앞에서 잘난 척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환자가 없으면 의사는 존재 가치가 없다’고 말해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명의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는 기술인이 아니에요. 혼이 들어가야 합니다. 목공도 하물며 무생물인 나무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데, 대상이 생명체이며 인간이라면 더욱 혼신의 힘을 다해야지요. 아들이든 어머니이든, 모든 환자는 그 가족의 중심이잖아요.”



● 마음에 새기는 글귀가 있습니까.



“초심을 잃지 말라는 의미에서 ‘처음처럼’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전공의들에게는 말합니다. 외과를 처음 지망할 때의 각오와 생각을 항상 잊지 말라고. 후배 교수들에게는 처음 교수가 됐을 때의 기분, 어떤 교수가 되리라는 다짐을 잃지 말라고 해요.”






j 칵테일 >> ‘수술대’에서 노성훈 교수 안 만나려면 …



노성훈 교수에게 위암 예방 수칙을 물었다.



● 수술대에 누워 선생님을 만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담배는 끊어야 합니다. 담배가 폐암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잘못 됐습니다. 담배는 모든 암의 원인으로 400여 가지 발암 물질이 폐를 통해 흡수 된 뒤 혈액을 통해 온 몸으로 퍼지기 때문입니다.”



● 짜게 먹는 게 안 좋은가요.



“위암 발병은 유전적인 요인이 적고, 식습관이 가장 중요합니다. 소금에 절이거나 짠 음식, 불에 탄 음식은 위암 발병률을 높입니다. 소금은 그 자체가 발암 물질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과다 섭취하면 위염을 유발하고 위 점막을 손상시켜 발암물질의 작용을 돕는 보조 발암작용을 합니다. 소금의 일부는 단백질과 결합해 강력한 발암물질을 만들기도 합니다.”



● 무엇을 먹어야 좋은가요.



"신선한 야채와 과일, 우유, 콩 제품은 위 건강에 좋아요. 식습관은 고치기가 참 어렵죠. 그래서 어려서부터 입맛을 잘 들이려면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위암은 조기 발견하면 대부분 완치할 수 있습니다. 30대 이상은 연 1회 위 검사를 받으세요. ”



● 혹시 숨겨두고 먹는 건강식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녹차(사진)에 얼음을 넣어 차게 해 놓고 수시로 마십니다. 두부, 비지, 청국장 같은 콩 제품을 유독 좋아해 늘 먹습니다. 아침식사는 우유 한 잔으로 해요. 점심은 일주일 내내 수술방에서 먹어요. 식판에 담아와 5분이면 먹지요. 위 건강을 위해서 식사는 사실 천천히 해야 하는데 거 참.”






수술실에선 김수희·심수봉 뽕짝도 틀지요



17일 오후 서울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본관 5층 수술실.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가수 이동원이 부른 ‘이별노래’가 울려 퍼졌다. 배가 이미 열려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환자 앞에 노성훈 교수가 섰다. 이날의 세 번째 위암 수술이다. 오전에는 위의 60%를 제거하는 수술 2건을 했다.



“71세 남성, 위 상부에 생긴 진행성 위암으로 위를 100%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노 교수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보조의사와 간호사와의 호흡은 마치 기계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진행됐다. 기자의 눈이 따라가지 못할 속도의 손동작 사이로 간간이 “OK” 소리가 들렸다. 노 교수가 환자의 위를 잘라 초록색 수술포 위에 올렸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생긴 위를 가위로 갈라 평평하게 펼쳤다. “(유독 붉은 부위를 가리키며) 여기 암 보이지? (절단면까지의 거리를 가리키며) 간격 충분하지?” 사다리 위에서 수술 장면을 지켜보던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눈을 크게 뜨고 바짝 다가섰다. 식도와 소장을 잇는 작업을 마치자 수술이 끝났다. “생각보다 안정됐죠? 수술이라면 응급 상황을 상상하는 분들이 많은데, 위암 수술은 ‘응급 수술’이 아닌 ‘선택 수술’이기 때문에 정해진 순서에 따라 차분하게 이뤄집니다.”



수술실 한 켠 테이블엔 ‘노성훈 선생님용’이라는 라벨이 붙은 클래식 음반과 1970~80년대 가요를 담은 CD가 놓여있었다. “오전엔 클래식 음악을 주로 듣고 오후엔 김정호, 송창식 같은 7080 옛 가요를 들어요. 아, 김수희, 심수봉의 ‘뽕짝’도 자주 틀어요.”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