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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롤모델 없는 사회

중앙일보 2010.08.21 00:16 종합 31면 지면보기
서양에선 닮고 싶은 사람을 ‘워너비(wannabe)’라고 한다. ‘want to be’를 이어 발음한 것이다. 대중스타에 대한 동경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롤모델(role model)은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점에선 워너비와 비슷하지만,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타의 모범이 될 만한 덕목과 사회적 성취도가 확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란 유명한 공자 말씀은 어디서건 롤모델을 찾으란 얘기로 해석 가능하다. 특히 성장기엔 롤모델을 빨리 찾을수록 성취가 빠르다.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부지런히 읽히는 이유다.



열세 살에 군주가 된 조선조 성종도 일찌감치 역할모델을 찾았다. 늘 ‘세종처럼!’을 염두에 뒀다. 그는 장서보관소에 불과하던 홍문관을 옛 집현전을 대신할 학문연구기관으로 육성했다. 선비들이 집에서 쉬며 공부할 기회를 주는 제도인 사가독서제도 부활시켰다. 사가독서제는 세종이 만든 걸 세조가 없앤 것이다. 심지어 자식 많이 둔 것도 닮았다. 세종은 6명의 부인으로부터 18남14녀를, 성종은 12명의 부인에게서 16남12녀를 뒀다. 설마 이런 것까지 본보기로 삼으려 했으랴마는.



이 시대의 유행어 ‘엄친아’도 출발을 따지면 롤모델 개념과 무관치 않다. ‘내 자식이 친구 아들처럼만 했으면’ 하는 부모의 염원이 담겼다. 하지만 쏟아지는 기대는 지나치고, 부딪히는 현실은 가혹하니 듣는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단어가 됐다. 소위 ‘88만원 세대’는 엄친아를 롤모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 ‘부럽지만 난 될 수 없는 존재’로 치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세대에게 롤모델에 대한 갈증이 없을 거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존경과 추앙의 대상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어느 시대에나 강렬했다.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레닌과 마르크스, 로자 룩셈부르크를 꿈꿨던 것처럼. 지금 한국 사회에선 역할의 이상형을 찾기란 참 어렵다. 본지 8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근 2년여간 인터넷 세상에서 정치인과 경제인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한다. 롤모델이 되긴커녕 말이다. 하긴 어제 시작된 인사청문회에서 각종 의혹을 해명하기 바쁜 고위 공직자 후보들을 보니 그러게도 생겼다. 아이에겐 부모가 제일 좋은 롤모델이듯 젊은 세대에겐 사회지도층이 그럴 터다. 본받고 싶은 사람 없는 사회를 사는 젊은이들의 절망과 갈증을 그들은 언제까지 외면할까.



기선민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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