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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입체 영상’으로 살 길 찾는 미국 성인 영화 제작자들

중앙일보 2010.08.21 00:08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3D 포르노 아바타의 포스터.
로스앤젤레스(LA) 북쪽에는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가 있다. 그 서쪽은 샌퍼낸도 밸리다. 미국에서 제작되는 포르노 영화의 90%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그곳을 ‘포르노 밸리’ ‘샌포르낸도 밸리’라고 부른다. 포르노 배우들이 가슴 성형 수술에 넣는 실리콘을 빗대 ‘실리콘 밸리’라는 별칭도 붙었다. 밸리에는 한인도 많이 산다. 영화 촬영이 주택가까지 파고들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대형 스튜디오들은 대부분 채츠워스, 밴나이스, 캐노가 파크 등 상업지에 몰려 있다. 불경기로 잔뜩 위축된 포르노 밸리에는 요즘 ‘3D’ 기술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퍼지고 있다. 마침 포르노 영화의 메이저 제작사인 허슬러가 처음으로 3D 포르노를 촬영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 7월 어느 날 오후 4시. 밸리 캐노가 파크에 위치한 허슬러 스튜디오. 5피트6인치의 체격에 비해 가슴이 유난히 큰 여배우 니키 헌터가 분장실에 앉아 있다. 올해 30세가 된 그녀의 직업은 포르노 배우다. 촬영장 안내를 맡은 허슬러의 언론담당 맬리사 보라그노가 주의를 줬다.“옷을 벗고 다니는 배우들을 봐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아바타를 3D 포르노로 … “캐머런도 모를걸요”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여배우가 들어섰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위도, 아래도. 기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노이즈 마케팅



분장실 다른 한쪽으로 남자 주인공역을 맡은 에릭 스미스가 걸어갔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하체를 가리고 있던 속옷을 벗었다. 경기침체는 포르노 업계도 피해가지 못했다. 통상 주연 배우들은 하루 촬영에 1000달러를 벌었지만 지금은 700달러에도 기꺼이 옷을 벗는다. 보조 배우들은 일당 400달러, 그나마 남자 배우들은 100달러 정도 수입이 적다.



허슬러의 제작감독인 롭 스미스
분장사가 주요 부위를 제외한 온몸에 파란 스프레이를 뿌렸다. ‘아바타’로 분장하기 위해서다. 허슬러의 첫 3D 포르노 영화로 기록될 이번 작품은 3D 돌풍을 가져 온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를 패러디한 포르노다. 패러디는 원작의 엄숙함을 조롱한다. 영화 아바타 결말의 20년 후. 나비족은 더 이상 평화를 사랑하는 부족이 아니다. 성적 욕망을 지속하기 위해 비아그라-태니움이라는 푸른 광석을 캐고 인간은 나비족의 성 노예로 전락했다는 스토리다. 기자가 물었다. “제임스 캐머런은 알고 있나요. 자신의 작품이 포르노로 제작되고 있는데요.” 허슬러의 제작감독인 롭 스미스(사진)가 나섰다. “모를 겁니다. 하지만 미국의 패러디 법을 세심하게 검토했어요. 물론 캐머런이 소송을 할 수도 있지요.” 소송이라도 걸리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될 수도 있다.



#차별화로 승부



일반 영화에 비해 3D 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든다. 포르노 영화라고 예외는 아니다. 일반 포르노의 편당 제작비는 2만5000달러 수준. 3D 촬영은 장비 대여료가 비싸 제작비가 2배 이상 든다. 허슬러는 ‘모험’을 택했다. 이번 촬영엔 배우가 12명, 엑스트라가 10명이나 동원된다. 그야말로 대작 포르노다. 허슬러가 승부를 거는 이유가 있다. 인터넷이 문제다. 인터넷에는 무료 성인물이 범람하고 있다. 처음 인터넷이 등장할 때 포르노 산업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무료 콘텐트의 홍수 속에 포르노 업계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롭 스미스 제작감독이 말했다. “포르노도 콘텐트 차별화가 필요합니다. 배우 2명이 소파에서 찍는 무료 영상과 무언가 달라야 돈 내고 보지요. 3D 영상이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깊이를 느껴야



배우들의 ‘아바타’ 분장이 늦어지면서 촬영이 오후 8시를 넘겨서야 시작됐다.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한 장면을 찍는 데 1시간을 허비했다.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배우의 동선도 일반 촬영과 다르다. 숲을 거니는 연기도 한 명은 앞에, 다른 한 명은 멀리 뒤로 떨어져 자리를 잡는다. 그래야 3D 영상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새벽 1시. 감독과 배우들이 JVC에서 만든 46인치 3D TV 앞에 모여 연기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3D 화면을 보려면 특수안경을 껴야 한다. 기자도 안경을 쓰고 3D TV를 들여다봤다. 입체감은 있지만 생동감이 크게 떨어졌다. 영상이 눈앞으로 튀어나오기보다는 유리상자 속에서 벌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자를 자극했던 말초신경들도 무뎌졌다.



#3D의 현재와 미래



사람의 눈은 왼쪽과 오른쪽이 보는 영상이 다르다. 그래서 사물을 3D로 본다. 이번 촬영에 사용된 3D 카메라도 렌즈가 두 개다. 사람의 두 눈 사이 간격만큼 각각의 렌즈를 떨어뜨려 영상을 분리해 촬영한다. 하지만 아직 약점이 있다. 근접 촬영이 안 된다. 카메라가 피사체 1m 이내로 들어가면 초점이 흐려져 버린다. 클로즈업으로 바짝 당겨 생생한 표정을 담아야 하는 포르노 촬영에는 보완이 필요하다.



또 기존의 3D 카메라는 부피가 크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배우들의 다양한 장면을 역동적으로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창작감독 드류 로젠펠브가 업계의 희망을 전했다.“파나소닉에서 저가의 소형 3D 캠코더가 나온다고 합니다. 출시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판도라, 상자를 열다



분장실과 붙은 촬영장은 캐머런의 원작 아바타의 무대인 ‘판도라’ 행성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이다. 그녀는 상자를 열어보지 말라는 제우스 신의 경고를 무시한다. 열린 상자 속에서 질병, 고통과 같은 각종 재앙이 쏟아져 나왔고 마지막에 나온 것이 희망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인간의 호기심이 가져오는 불행과 희망을 상징한다. 비평가들은 캐머런 감독이 ‘3D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평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콘텐트가 계속 나오지 않으면 3D TV는 성공하기 힘들다. 오히려 저가의 가정용 3D 캠코더가 나오면 3D TV가 잘 팔릴 수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찍은 걸 보고 싶어할 테니까. 이용자가 콘텐트를 만드는 세상이다. 애플의 아이폰은 그렇게 성공했다.



LA중앙일보=김기정·진성철 기자






j 칵테일 >> 할리우드의 사생아



포르노 산업의 매출 규모는 연간 130억 달러로 추산된다. 전 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970억 달

러다. 폭스방송의 보수 독설가 글렌 벡의 표현을 빌리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이베

이, 야후, 애플 등의 매출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밸리는 1970년대부터 포르노 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경기 침체 전인 2007년에는 한 해 6000편이 이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정식 등

록된 포르노 배우만 1200여 명에 달한다.



기자가 물었다. “왜 밸리일까요. 왜 밸리에서 포르노 영화 산업이 성행하는 걸까요.” 이번 촬영의 창작감독을 맡은 허슬러의 드류 로젠펠브

가 답했다. “할리우드 때문입니다. 사람도 장비도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영화업계에서

는 포르노 밸리를 할리우드의 마이너리그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옆동네 할리우드가 낳은 사생

아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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