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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이문열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1-5

중앙일보 2010.08.21 00:03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나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어린 여동생이라도 되찾은 기분으로 혜련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가 금발로 기억했던 머리칼은 황갈색으로 짙고 탁해져 있었지만 얼굴에는 어딘가 내 ‘금발의 제니’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때도 또래 아이들보다 한 뼘은 더 커 보였던 혜련의 키 또한 그 사이 훌쩍 자라 한국에서는 남자 축에서도 큰 편인 나와 어깨 높이가 거의 같아 보였다.



비록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지방도시의 작은 극단이고, 유료공연 레퍼토리는 아직 열 개를 채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극단은 유급 배우까지 끼인 여남은 명의 단원과 어엿한 사무실까지 갖춘 전문 공연극단이었다. 그리고 나는 총무 겸 소품담당까지 하고 있었지만, 또한 조연출로 극단 쪽으로 봐서는 간부급이었다. 그런 위치에서 스태프로 참여를 원하는 신규 가입 지원자의 이력서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도 잊고 내가 불쑥 물었다.



일러스트: 백두리 baekduri@naver.com




“김혜련씨는 혹시 어렸을 적 남부민동 쪽에 살지 않았어요?”



“녜. 거기 산복도로 쪽에서 내려오는 골목 끄트머리에 난 공터 뒷집. 그런데 총무님은 그걸 어떻게 아세요?”



혜련이 그렇게 대답하면서 그러잖아도 커 보이는 두 눈을 더욱 둥그렇게 떴다. 나는 대답 대신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그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 줄 아는데. 그 여름, 그러니까 75년도 8월쯤 되나. 그 공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싸우고 집으로 들어간 뒤에…. 그런데 그새 다시 돌아와 여기서 자란 모양이네. 말도 완전히 여기 사투리고, 친구도 여기 친구를 그대로 사귀고 있는 걸 보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때 영영 미국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삼 년 만에 다시 돌아와 서면 쪽에 집을 장만하시고, 그해부터는 우리 남매도 방학은 한국서 보내게 되었으니까요. 쟤들 다시 만나니 3년쯤 못 봐 단절된 것들 금방 이어지던데요. 그런데 총무님은 어떻게 옛날 저를 아세요? 틀림없이 저를 잘 아시는 것 같은데….”



그제야 나도 약간 멋쩍은 느낌이 들어 얼버무리듯 8년 전 여름 어느 날 내가 본 일을 띄엄띄엄 들려주었다. 혜련도 내 말을 받아 그때의 정황을 간추려 들려주더니 문득 함께 온 아가씨를 가리키며 일러바치듯 말했다.



“저 가스나가 바로 그때 그 가스나예요. 다른 애들하고 같이 날더러 미국 년이니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한 고 암팡진 계집애 말예요. 삼 년 뒤 방학에 돌아와 가장 먼저 찾아보고 화해는 했지만, 그때 일 생각하면 지금도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니까요.”



그러고 보니 함께 온 아가씨의 얼굴에서도 어릴 때의 가무잡잡함은 화장기로 가려져 있었지만 야무져 뵈는 표정은 아직도 엷은 입술과 오똑한 콧날 언저리에 남아 있었다. 내가 자기를 쳐다보자 그 아가씨도 배시시 웃으며 받았다.



“저 가스나 한국말은 참말로 알아주어야 해요. 지난 10년 한국에는 1년에 두어 달밖에 안 있었는데도 우리보다 더 한국말을 잘한다니까요. 사투리뿐만 아니라 표준말도 하려고 들면 서울 사람 뺨칠 정도예요.”



“그건 아버지가 서울 사람이고, 저희 남매는 먼저 그런 아버지와 그분의 말을 배운 어머니 밑에서 우리말을 배웠으니까요.”



그때 우리 극단의 단장이자 연출을 맡고 있던 선배가 극단 사무실로 들어와 사담으로 흐르던 우리 대화는 사무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실내로 들어온 선배가 혜련의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그랬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를 보고 물었다.



“이 아가씨 외국 사람 같은데 어찌 된 일이야? 문밖에서 듣기에는 한국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잖아? 무슨 일로 왔어?”



“음악 파트 지원자예요. 지금 이력서를 읽어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자 선배는 내가 들고 있던 혜련의 이력서를 뺏어 들고 훑어보았다.



“흠, 국적은 한국이군. 어머니가 미국이고, 아버지가 한국…. 그런데 중·고등학교는 미국에서 했네. 헌팅턴 하이스쿨이라….”



“녜. 뉴욕 북쪽의 작은 시티에 있는 사립학교예요.”



“그리고 호이그스트 음악학교라, 이건 또 뭐야? 줄리아드니 버클리니 하는 음대는 들어봤어도 이런 음악학교는 처음이네.”



“역시 뉴욕주에 있는 2년제 칼리지예요. 클래식 기악 중심이고요.”



“흠, 그래. 그런데 연극 음악은 경험이 있고?”



“학교 연극에서 몇 번 음악을 맡아본 적이 있답디다.”



그 말에 내가 아는 척 혜련에게서 들은 대로 대답하며 끼어들었다. 그런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선배가 다시 혜련에게 물었다.



“학교 연극이라면 어디야? 어떤 학교에서 어떤 연극에 음악을 맡아보았어?”



“하이스쿨 때 연극반이었어요. 체호프의 <갈매기>….”



그러자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말투가 삐딱해지던 선배가 비로소 제대로 된 시빗거리를 찾았다는 듯 정색을 하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뭐? 고등학교 연극반? 이봐요. 헬렌 킴. 아무리 미국이 뭐든지 최고라지만 고등학교 연극반 경력을 가지고 우리 극단의 음악 연출을 하겠다면 그건 무리지. 우리 극단이 이래도 천하의 부산하고도 광복동에서 뿌리내린 지 벌써 십 년이 다 돼가는 전문 극단이야. 더구나 이번 <리투아니아 남자들>은 우리 극단 자체 각색의 국내 초연(初演) 레퍼토리란 말이오.”



그 무렵이 마침 미국 유학파들이나 재미교포들의 거드름을 비꼬는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가 한창 인기를 끌 때였다. 그런 쪽으로 남달리 괴팍스러운 편인 그 선배도 혜련이 대단찮은 학교의 졸업장이나 미국에서의 경력을 내세워 우리 극단을 무시하는 걸로 여겼는지 자신의 악의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곁에서 듣는 내가 민망스러울 지경이었으나 그것도 단련 덕분인지 혜련은 별로 움츠러드는 기색이 없었다.



“그래도 브로드웨이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사람들이 모교 창립 백주년 기념 공연을 빛내주기 위해 특별지도를 해준 공연이었어요. 하지만 그 경력 말고도 제가 이번 연극 음악 연출을 지원한 이유는 또 있어요.”



“그래? 그게 뭔데?”



선배가 아직도 악의를 거두려 들지 않고 빈정거리듯 그렇게 물었다. 혜련도 정색한 얼굴이 되어 또박또박 대답했다.



“리투아니아요. 그리고 리투아니아 음악요. 리투아니아는 우리 어머니가 태어난 나라고, 또 미국에 건너와 세계 민속음악을 전공한 어머니가 가장 밝은 것은 리투아니아 음악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리투아니아와 리투아니아 음악에 대해 좀 알아요.”



그러자 그만의 일 욕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는지 꼬여 있던 선배의 말투가 알아듣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흐음, 어머니가 미국 사람이 아니고 리투아니아 사람이란 말이지. 어머니 전공까지 리투아니아 민속음악이고…. 거기다가 헬렌 킴도 어쨌거나 음악 전공으로 칼리지를 마쳤다….”



“9월 학기부터 서울의 대학교에서 국악을 다시 공부하게 될 거예요. 그때까지 여유 있는 시간으로 <리투아니아 남자들> 음악 부분을 거들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적어도 이번 작품의 음악은 특색 있는 걸로 기대해볼 만하겠군. 좋아요. 그렇다면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참 그런데, 김혜련씨는 우리 작품 각본이나 구해 읽어보고 오셨던가….”



선배가 완연히 풀어진 목소리로 혜련의 말을 받으면서 바로 실무적인 검토로 넘어갔다.



이후 일은 잘 풀려 혜련은 그해 가을 이름 있는 서울의 음악대학 국악과로 진학할 때까지 우리 극단에서 함께 일했다. <리투아니아 남자들>은 그해 사월 무대에 올랐는데, 선배의 기대와는 달리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한 달 공연은 그럭저럭 버텼지만 유료관객은 객석의 절반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선배는 그 공연을 성공으로 자평했는데, 그 성공에 혜련의 음악이 얼마나 보탬이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솔직히 그때의 무대음악이 얼마나 리투아니아적인 정서를 담아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리투아니아 민속음악이 활용되었는지도 전혀 기억에 없다.



그녀 때문에 특별해진 리투아니아란 나라도 곧 이전 기억 속 그대로의 크기로 줄어들어 제자리로 돌아갔다. 소련 제국주의 팽창정책에 희생되어 점령당한 발트3국 중의 하나.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그런데 그해 8월 어느 날 우연히 혜련과 같이하게 된 바닷가의 하루가 그 리투아니아를 다시 특별한 나라로 만들고, 그 땅에 오래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한 가족의 비극적인 이산의 역사가 오래오래 애조 띤 기억으로 남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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