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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쎈 영화’가 세련된 영화인가

중앙일보 2010.08.18 00:35 종합 23면 지면보기
한여름 극장가가 피로 물들었다. 원빈의 ‘아저씨’에 이어 최민식·이병헌의 ‘악마를 보았다’가 가세했다. 둘 다 잔혹 복수극이다. 흥행성적은 나쁘지 않다. ‘아저씨’는 전국 관객 200만 명을 넘어섰다. ‘악마를 보았다’는 개봉 첫 주 64만 명을 모았다. 몇 년 전까지 여름 특수를 누렸던 호러물들을, 난도질 피칠갑 복수극이 대체하는 느낌이다.



개봉 전 제한상영등급 판정 위기에 처했던 ‘악마를 보았다’에는 극단적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평단이나 관객이나 양 극단의 반응을 쏟아낸다. 잔혹함 외에는 별 줄거리 없이, 잔혹을 위한 잔혹영화라는 평가와 함께, 김지운 영화답게 장르 매니어들을 사로잡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영화의 잔혹코드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의 박찬욱이 지평을 열었고, 그가 해외영화제에서 거푸 수상하면서 한국영화의 대표적 색깔이 됐다. 김기덕 감독도 마찬가지다. 지금 해외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가장 지배적인 이미지는 ‘세고 독한 영화’다. 박 감독은 “해외에서 내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을 만나면 무서운 분들이 많아 놀랄 때가 있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핏빛 잔혹코드가 극단·매니어 취향을 넘어 어느덧 대중 상업영화의 주된 코드로 유행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올해에만도 ‘파괴된 사나이’‘용서는 없다’‘죽이고 싶은’ 등이 이어졌다. ‘악마를 보았다’는 슬래셔 무비에 가깝다. 보통 외국에서라면 소수취향, B급무비들이 충무로에서는 스타감독과 톱배우, 블럭버스터급 제작비가 붙는 주류영화로 속속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심리적 배경이 있다. 영화 못지 않게 끔찍한 현실에 대한 반영, 현실 속 억압에 대한 대리해소라는 분석이다. 공권력에 대한 반감도 읽힌다. ‘아저씨’나 ‘악마를 보았다’ 모두, 사법제도에 기대기보다 사적 처단에 나서는 주체가 공권력의 수호자인 국정원 요원이다(공권력의 자기부정!).



문제는 한국영화계에 언젠가부터 자리잡은 ‘세거나 극단적인 스타일=영화적 세련미’라는 태도가, 영화적 상상력의 대부분을 잔혹표현에 바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스토리텔링의 정밀함보다 극단적 충격효과에 사활을 거는 경향이다. (여기서 폭력의 개연성을 따지는 것은 ‘영화적으로 후진 태도’, 폭력에 대해 면역력이 낮은 관객들은 ‘영화적 문외한’쯤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유머나 판타지 없이 2시간 넘게 두 악마들이 극사실적으로 난도질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폭력성이나 악마성에 대한 별 통찰을 얻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폭력을 유희화·대상화한 것일 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 감독은 “한 남자의 슬프고 지독한 복수극, 순애보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순애보로 이 영화를 소비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 같다. 또 잔혹의 극단을 전시하면서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영화적 실험도, 서구영화계에서는 이미 해볼 만큼 해본 것이다.



“배우들은 자기경력에 초조해지기 시작하면 ‘센 역할’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참인가? 그런데 그건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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