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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봤습니다] 박정식 기자의 자율고 탐방 … 경북 김천고

중앙일보 2010.08.18 00:22 Week& 7면 지면보기
지방 고교들이 지난해부터 자율형 사립고(자율고)로 속속 전환하면서 명문고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전국에서 우수 학생을 모집할 수 있고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어 대학 진학에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중 환골탈태를 거듭하고 있는 경북 김천고(학교법인 송설당교육재단)를 찾아갔다.


수준별 교육, 동문 멘토링, 주말 강좌 … 3→6월 학력평가 성적 43% 올라

글=박정식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경북 김천고가 ‘학생은 고객이다’를 기치로 내걸고 자율고 전환을 계기로 명문고로 부활하고 있다. 김천고 도서관 모습. [최명헌 기자]
명문고 부활 꿈꾸며 학교, 시·도, 동문 하나 돼



‘장학금을 올해 말까지 200명에게 2억3000만원을 지급하고 2012년까지 5억3000만원으로 확대, 100억원 시설 투자, 우수 신입생 1인당 최대 1000만원 제공, 대구·경북 유일의 해외 유학반 운영, 민족사관고 출신 나병률 교장 영입’.



지난해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한 경북 김천고가 벌이고 있는 교육실험들이다. 80년 역사 이래 첫 대규모 투자다. 학생들이 이를 찾아 인천·충북·경주·구미 등 전국 14개 시·군에서 몰려들었다. 경북외고에서 김천고로 진로를 바꾼 박성찬(김천고 1·경북 구미)군은 “나 스스로 학습을 설계하고 공부할 수 있는 점”을 학교 매력으로 꼽았다. “기숙생활 프로그램이 독립심과 학업의지를 북돋우고 선후배 사이를 끈끈히 맺어 준다”고 자랑했다.



김천고의 변신은 학교와 동문의 결속, 김천시와 경상북도의 지원이 함께 이뤄 낸 작품이다. 김천고는 자산을 매각해 210억원의 재원을 마련 중이다. 재경 동창회가 20억원을 내놓는 등 동문들도 장학금 100억원을 모으고 있다. 동문 선배들은 재학생들과 일대일 진로 멘토링을 맺고 학습 동기를 심어 주며 장학금을 건네고 있다. 사법연수원 박윤해 부장검사와 멘토링 e-메일을 주고받는 황하리(김천고 1)군은 “선배의 세심한 조언이 진로 탐색과 학습 방향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시·도 지원은 김천고의 숨은 역량을 발휘하는 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 김천시가 학력 신장에 1억6000만원을, 경상북도는 경시대회와 학습캠프 운영에 4억4350만원을 해마다 투자하고 있다. 이종복 교사는 “그 결과 신입생들의 6월 학력평가 언어·수리·외국어 성적이 3월보다 43% 이상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중하위권 학생들의 상승 폭이 가장 크다”라고 덧붙였다.



일정신의 역사와 전통이 민족 얼 일깨워



김천고는 한때 전국에서 손꼽히는 인재사관학교 중 하나였다. 대학 진학과 사회지도자 배출 실적이 지역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정해창 전 법무부 장관, 김종호 전 해군참모총장 등 전국 고교 국가 인재 배출 조사에서 29위를 차지할 정도.



이런 명성은 1931년 개교 때 시작됐다. 일제 치하에서 영친왕(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의 보모였던 최송설당 여사가 전 재산을 희사해 세운 민족학교다. 당시 좌우 이념 대립의 대표인 여운형과 송진우가 개교 행사에서 축사를 했을 정도다. 재학생들은 그를 기리는 역사자료와 역대 선배들의 행적으로 가득한 송설역사관을 찾으며 민족정신을 다진다. 지금까지도 졸업생 기수가 ‘송설OO회’로 매겨진다. 항일정신을 보여 주기 위해 시작한 당시 김천고 학생들의 한겨울 ‘내한 마라톤’도 해마다 열린다.



백승환 교사는 “김천고는 지역 인구 감소, 우수 학생들의 타 지역 유출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다”며 “그러나 지난해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되면서 지역민과 함께 도약 불씨를 지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 등 혁신도시 공공기관들의 김천 이전 계획도 분위기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한의사를 꿈꾸는 김도황(김천고 1)군은 “학교의 전폭적 지원으로 명문고 부활의 도전을 시작한 우리들의 어깨가 무겁다”며 “후배들이 교훈으로 삼을 발자취를 남기겠다”고 다짐했다.










[인터뷰] “학생 만족시키지 못하는 교사는 떠나라 했어요”



김천고 나병률 교장
“학생은 교사의 고객입니다.” 김천고 나병률(58·사진)교장은 올해 초 취임하고부터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학교가 변하려면 구성원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먼저 교사들에게 변화를 촉구했다. “교사가 군림하고 학생이 따라가는 건 낡은 생각”이라며 교사들에게 제자들의 수업만족도 향상을 지상과제로 부여했다. 이를 위해 수업 교안과 교수학습법을 다시 짜고, 교과연구발표회와 공개설명회를 여는 등 수업준비체계를 재정비토록 했다. “‘교사는 수업으로 이야기하라. 학생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학교를 떠나라’고까지 했어요.”



등교 모습도 바꿨다. 교사들이 교문에서 ‘어서오세요’ ‘환영합니다’라며 학생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는 “예절과 효도를 가르치려면 교사가 본을 보여야 한다”며 주객이 바뀌었다는 주변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객이 된 학생들에겐 ‘주인의식’을 당부하며 자율·경쟁·책임을 강조했다. 지방 학생들에게 스스로 학습능력을 키우는 태도를 길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선배동문과 멘토·멘티를 맺어 동기를 불어넣고, 지·덕·체를 기르는 삼품인증제를 만들어 목표의식을 심어줬죠.” 학부모의 교육 참여도 유도하고 있다. 자녀의 학교생활 평가를 매달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 보게 하고, 학부모를 위한 특강을 열어 자녀교육의 눈을 높이도록 돕고 있다.



그는 민족사관고 부교장을 박차고 급여를 줄이면서까지 이곳을 찾아왔다. 학창시절 밤 늦게까지 제자들과 함께하며 꿈을 북돋워준 스승(전장억)을 떠올리며 “3년 뒤 모교의 명문고 부활을 재현하겠다”며 열정을 불태웠다.  



김천고 나병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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